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K (문단 편집) == 역사 == {{{-1 |● '''시대별 재계 순위'''| '''1960년''' || '''1972년''' || '''1979년''' || '''1987년''' || '''1994년''' || '''2008년''' || '''2013년''' || '''2022년''' || || 삼성 || 삼성 || 현대 || 현대 || 삼성 || 삼성 || 삼성 || 삼성 || || 삼호 || 럭키 || 럭키 || 삼성 || 현대 || 현대차 || 현대차 || '''SK''' || || 개풍 || 한진 || 삼성 || 럭키 || LG || '''SK''' || '''SK''' || 현대차 || || 대한 || 신진 || 대우 || 대우 || 대우 || LG || LG || LG || || 럭키 || 쌍용 || 효성 || '''선경''' || '''선경''' || 롯데 || 롯데 || 롯데 || || 동양 || 현대 || 국제 || 쌍용 || 쌍용 || GS || 현대중공업 || 한화 || || 극동 || 대한 || 한진 || 한화 || 한진 || 현대중공업 || GS || GS || || 한국유리 || 한화 || 쌍용 || 한진 || 기아 || 금호아시아나 || 한진 || 현대중공업 || || 동립산업 || 극동해운 || 한화 || 효성 || 롯데 || 한진 || 한화 || 신세계 || || 태창방직 || 대농 || '''선경''' || 롯데 || 한화 || 한화 || 두산 || CJ || ||<-8> {{{-2 ※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재벌사〉}}}[* [[:파일:p1OXak9.jpg|원본]]]||}}} 1953년 담연 [[최종건]] 창업주가 귀속재산 '선경직물'[* 1939년 설립됐으며, 재조선 일본인 기업 '''선'''만주단('''鮮'''満綢緞)과 [[일본]] 교토의 '''교'''토직물('''京'''都織物)의 머릿글자를 합친 것이다. [[http://d.hatena.ne.jp/tobira/20090911/1252634115|일본 교토직물은 시부사와 재벌 계열사였으며 1968년 경영 악화로 파산해서 없어졌다]].]을 [[적산|귀속재산 불하]]받은 게 그룹의 시초다. 그러니까 대기업이 옷까지 만들어 파는게 아니라 SK는 원래 직물회사로 시작했다.[* 참고로 최종건 생가가 [[수원시]] [[권선구]] 평동에 위치하여 있으며, 선경직물도 위치해있었다.][* 그래서 교복팔던 회사라는 조롱이 붙곤 한다. 롯데가 [[롯데제과|껌팔던 회사]]로 불리는 거와 같은 맥락이다.] 1966년 해외통상을 인수한 후 일본 테이진 사와 합작해 '선경화섬'을 세워 아세테이트 생산을 시작했고, 1969년 선경합섬도 세워 종합 섬유사업군을 형성했다. 1973년 [[최종건]]이 사망하면서 동생 [[최종현]]이 경영권을 승계하고[* 당시 최종건의 나이가 48세로 젊었기 때문에, 장남 최윤원(후에 SK케미칼 회장)이 24세로 어렸다. 그래서 동생인 최종현이 뒤를 잇게 되었고, 이 문제는 최종현 사후 양가에서 다툼이 일어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내세우며 컨트롤타워 조직 '기획실'을 발족한 뒤, 1979년 고유 경영관리체계 'SKMS(Sunkyoung Management System)'를 정립해냈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정확히는 미국 걸프 사가 지녔던 50% 분량을 인수한 것이며, 1979년 기준 전체 매출액이 3천억을 조금 넘었던 선경그룹이, 매출 1조 원이 넘는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유공을 인수한 것을 두고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 인수대금 9,300만 달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억 달러의 차관을 들여와 해결되었으며 이후 SK는 단숨에 재계 9위에서 5위로 상승해 대기업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당시 선경이 [[삼성그룹]]을 제치고 어떻게 유공을 인수하는 것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336692|관련 뉴스]]에 따르면 당시 동력자원부 차관이었던 최동규에게 [[전두환]]이 유공을 선경에 넘긴 건 [[노태우]]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고 얘기를 했다 한다. 또한 [[유양수]] 당시 동자부 장관의 말에 따르면, 선경 회장이 그 서슬 퍼런 시절 장관 방에 와서는 유공을 내놓으라고 요구를 했다고 한다.] 주력 업종을 에너지/화학 분야로 바꾸었고, 1985년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조직해 정보통신 사업 준비에도 주력한 후 1989년 'SUPEX[* Super Excellent 수준을 이르는 단어.] 추구법'을 도입했다. [youtube(TvDoy0jrLzw)]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는 '''SKC'''가 주력 계열사 중 하나였기에 대중들에게 공테이프 등 기록매체 메이커로 유명했다. 요즘도 SK가 예전에는 테이프 만들던 회사였다는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지만 실제로 1980~90년대 카세트, 비디오 테이프를 만드는 회사 중 1위 기업이었다. 테이프 만들던 회사라고 아주 우습게 볼게 아니라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시대에는 전파로 수신되는 라디오, TV 방송을 제외하면 전부 카세트 테이프, 비디오 테이프로 음악과 영상을 감상하던 시기였다. 특히 비디오 보급이 활성화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비디오 가게가 편의점만큼 많았고, 각 가정에는 음악용, 영화용 테이프가 수십개 내지 수백개씩 있던 시절이었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려 계산대 바로 아래 진열되던 상품이 공테이프였다. SKC는 [[워너 브라더스]] 영화를 주로 비디오로 배급했으며 서륭프로덕션과 미도영화사 등과 제휴를 하는가 하면,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 등 영화 제작에도 관여했다. SK 공테이프는 TV 광고로도 자주 나왔는데, 특히 장학퀴즈 방영 시간 전에 꼭 SKC 테이프 광고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 테이프 회사인 만큼 영화 테이프를 틀면 본편이 나오기 전 광고로 꼭 SK 광고가 나왔다. 이렇게 SK는 1980~90년대에 대중들에게 매우 인지도가 높은 회사였다. 테이프 만들던 회사라고 아주 우습게 볼 정도는 아닌게 당시 테이프 제조도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첨언하자면 SK 테이프는 당시 테이프 시장에서 점유율 1위였을 뿐만아니라 프리미엄 고가 테이프는 죄다 SK 제품이었다. 당시 '크롬' 시리즈라고 해서 테이프에 크롬을 입혔다 해서 다른 공테이프보다 몇 백원이나 비쌌지만 잘 팔렸다. 게다가 90년대부터 가정용 PC가 보급되자 필수 저장매체인 [[플로피 디스크]] 제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플로피 디스크 역시 SK제품이 타사보다 비싼 편이었다. 1988년 [[최종현]]의 장남 [[최태원]]과 당시 유력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후보이던 [[노태우]]의 장녀 [[노소영]]과의 결혼[* 본인들은 [[미국]] 유학시절부터 시작하여 5년간에 걸친 자유연애 결혼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에도 위에서 언급된 유공의 인수,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을 본 사람들은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보지 않았다. 2015년 최태원의 혼외자 고백과 그에 이은 이혼 선언이 터지자 이 정략 결혼을 기억하는 호사가들은 'SKT와 SK에너지는 노소영에게 토해줘야 하는 게 맞지 않냐'는 드립까지 쳤을 정도였다.]으로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다. 이 때문에 1992년 대한텔레콤[* 유공, 한국전력공사, 대한교육보험, 미국 GTE, 영국 보다폰 등이 출자한 컨소시엄이다. 훗날 SK주식회사 C&C.]을 통해 쌍용, 동부, 동양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할 당시 주위로부터 '''정경유착'''이란 비난을 받았다[* 당시 최종현이 전경련 회장까지 맡고있던 터라 비난은 더욱 심했다.]. 그리하여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의 회유로 제2이동통신사업권을 도로 반납했다.[* 이 과정에서 생긴 제2이동통신사가 바로 [[신세기통신]]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157829|#1]]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hotissue&no=995&ismobile|#2]] 하지만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여 사세를 더욱 키워간다. 이후에도 [[SK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라이코스코리아, [[싸이월드]], 이글루스, 엠파스 등등의 IT업체들, SK텔레콤을 통해 [[신세기통신]], [[하나로텔레콤]] 등 통신업체들, [[SK에너지]]를 통해 [[인천정유]] 등등 각종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삼성그룹]], [[현대그룹]], [[LG그룹]]과 함께 단숨에 '''대한민국 4대 재벌'''로 급부상하게 된다. 1998년 현 명칭으로 바꾼 후 1999년에는 을지로입구에 있던 지상 13층짜리 사옥을 헐고[* 이 자리에 지하 6층, 지상 33층 규모의 새 건물이 지어졌고 2004년부터 [[SK텔레콤]]의 본사로 쓰여지고 있다.] [[종각역]] 인근 종로구 서린동 사옥으로 그룹 본사를 이전하였다. 2003년 구조조정본부를 없앤 후 2013년 수펙스추구협의회를 구성했다. 이런 점을 보면 SK그룹의 주요사업이 M&A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 물론, IT 계열, 특히 인터넷 사업 인수합병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정말로 규모가 큰 인수합병은 승부사적 기질과 다방면의 노력으로 성공시킨 게 SK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SK하이닉스 인수합병 건으로 최근까지 진행된 그룹 내 인수합병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SK그룹은 [[대한민국]] 경제사에 2번 큰 흔적을 남긴다. *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 사태. 일개 무역회사인 SK글로벌이 1조 5,000억이 넘는 금액을 장부에서 몰래 누락시켜 오다가 적발된 사건.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수법은 지극히 전형적이고 단순한데 수 십년 간 누적돼온 1조원 대의 외상 채무를 장부에서 누락시키고, 있지도 않은 가공자산을 계상하는 등 수법이 너무 간단해 감독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됐다면 충분히 적발해낼 수 있는 사안이었다.[* 회계감사에서 기업내부 통제 시스템과 감독은 철저하게 보아야 한다고 나온다.] 이로 인해 당시 코스피지수가 530선이 깨지는 등 여파가 상당했다.[* 당시 가입한 펀드에 SK글로벌 주식이 포함되어 있다면 증권사에서 투자자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 팔까요? 말까요?"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코스피를 뒤로 밀더니 뒤이어 일어난 사건[* 이것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와 카드업계의 연체율 상승이 만든 합작품으로 봐야한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회사채에 대한 환매가 급증하면서, [[신한카드|LG카드]]의 부실문제(연체율/연체금액의 급등)가 부각되었다. 그 결과는 카드 업계의 극한의 카오스였다. LG카드는 결국 채권단의 손을 거쳐 [[신한카드]]가 되고, LG그룹은 금융계열 회사의 운영을 포기하게 된다.(이 포기선언은 지주회사 설립 전의 이야기로, 지주회사체제 전환시 금융자회사를 둘 수 없는 현 규정을 볼 때 포기할 명분을 제공했다.)][* 참고로 당시 카드업계(전업계 카드사 위주로 설명한다.)는 살아남기 위해 국민신용카드, 우리신용카드, 외환신용카드가 각각 자금여력이 있던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외환은행]]으로 합병되었고(유상증자와 감자도 있었다.), [[삼성카드]]는 삼성캐피탈과 합병 및 유상증자 실시, [[현대카드]]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유상증자참여,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던 신한카드(LG카드 합병 이전의 (구)신한카드-조흥은행 카드도 제외)는 지주회사로부터 유상증자, [[롯데카드]]는 대주주 [[롯데쇼핑]]으로부터 백화점카드 부문 양도를 받아 살아남았다.]으로 코스피를 다시 끌어당겼다.[* 사족으로 SK는 분식회계로 유명한 [[미국]]의 '''[[엔론]]'''사와 합작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 외국 투자펀드에 의한 적대적 M&A 피인수 위협. 소버린자산운용은 자회사인 크레스트증권을 통해 SK(주)의 지분을 14.99%까지 확보하여 2대 주주로 등극한 후 SK경영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명분은 SK(주)의 투명경영으로 SK 오너인 최씨 일가와 현 경영진의 퇴진. 당시 [[최태원]]의 SK(주)지분은 1%가 채 안되는 상황이었고[* 대신 최태원이 대주주인 SK C&C 가 11%, SK(주) 자사주가 17%.], 단일 외국인이 15% 이상 지분을 취득하여 최대 주주가 되면 SK(주)는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SK(주)의 SK텔레콤 지분의 의결권이 반토막으로 제한되어 SK텔레콤의 경영권까지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팬텍|팬택]] 등 백기사들이 도와줘 표대결에서 승리해 최태원의 경영권은 지켜냈으나, 경영권 분쟁 중 주가가 엄청나게 상승하여 소버린은 1,800억원에 매입했던 지분을 1조가 넘는 가격에 매각하여 매각 차익이 7,800억원에 달했다. 그것도 세금 한 푼 안내고(자본거래는 비과세). 한 마디로 [[대한민국]] 경제계가 외국펀드에 제대로 관광당한 호구 인증 사건.[* 이 일 때문에 이 사례는 [[순환출자]] 등 여러 꼼수 경영기법의 부작용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사례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지못미]]][* 이 사건은 영화 투 빅 투 페일의 초반부에도 나온다.] 이 사건 이후 정부의 압박까지 더해져 대부분 재벌들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였다. 물론, 삼성이나 현대차처럼 완전히 순환고리를 해소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져 자금문제로 유지하고 있는 그룹도 있다.[* 그래서 [[엘리엇]]이 소버린의 대박을 노리고 순환출자 기업집단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을 공격했다. 그러나 SK그룹의 출자구조는 순환출자 중에서도 극심하게 비이성적인 구조라 소버린의 공격이 가능했던 것이고, 삼성과 현대차는 그정도로 비정상적인 구조는 아니였으며 SK와 달리 지주회사인 [[삼성물산]]과 [[현대모비스]]의 시가총액이 몇배는 거대하기에 경영권 공격이 상당히 어려웠다. 결국 삼성의 경우 본전만 치고 포기했으며 현대차는 수천억의 손실만 내고 떠났다.] 법적으로도 소급적용이 아니기 때문에 추가고리가 생기거나 고리가 강화만 되지 않으면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2022년에는 16년만에 [[재계순위]] 3위에서 2위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1, 2위를 지켜온 현대를 꺾고 2위에 오르며 충격을 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