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AS (문단 편집) === 말레이시아 정찰대(SAS) === 1950년 한국에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제21공수특전(SAS) 연대에서 1개 중대가 3개월 간의 6.25전쟁 파병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작전 소요가 없어서 대신 말레이시아 비상사태(Malayan Emergency, 1948~1960)에 파병을 가게 되었다. 당시 말레이시아에는 1945년 3월~10월까지 영국 공수특전(SAS) 여단장을 지낸 마이크 칼버트가 말레이시아 정찰대(SAS)를 창설 중이었는데, 그는 극동 주둔 영국군에서 SAS와 친디트 부대 출신 지원자를 받아 A중대를 창설하고, 영국 본토 주둔 제21SAS 연대에서 파병된 SAS 중대를 말레이시안 스카우트 B중대로 편성했다. C중대는 영국령 [[로디지아]]에서 영국인 지원자를 받아 창설했다. 로디지아 출신 지원자들이 3년 계약이 끝나 귀국한 다음에는 뉴질랜드에서 새로 지원자를 뽑았다. 1956년에는 D중대와 육군 낙하산 연대에서 파병된 낙하산 중대를 포함하여 5개 중대로 구성되었다. 현역 공수특전(SAS) 부대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1952년 현역 제22공수특전(SAS) 연대가 영국에서 창설되었다. 1959년에는 MI9의 뒤를 잇는 도피 및 탈출 전문 부대인 상근예비역 수색대(the Reserve Reconnaissance Unit)를 제23공수특전(SAS) 연대로 개칭하여 세 번째 공수특전(SAS) 연대를 창설했다. 친공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이 반외세를 외치며 [[말레이시아]]의 [[공산당]]을 지원하며 벌어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전쟁에서도 공산 게릴라로 가장한 인도네시아 정규군과 싸웠다. 최종적으로 정부를 지키고 민심을 돌리는데 성공하며 이는 성공적인 대(對)게릴라전의 대명사로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훗날 [[베트남 전쟁|베트남전]]에서 미군이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소모하고도 결국 베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해 패배한 것에 비해 큰 교훈이 되었다. SAS는 이 작전에서 [[FN FAL]]과 같은 고위력 [[전투소총]]이 특수임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후에 영국군 최초로 [[M16 소총|M16]]을 도입했다. 이후 M16은 영국군 내에서 [[아말라이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SAS의 상징이 되었다.[* 다만 이때의 M16은 대부분 인도네시아군으로부터 노획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이후에는 정식으로 들여오게 되었다.] 현재도 SAS의 주력 화기는 M4의 캐나다 먼허생산판인 [[콜트 캐나다 C8#s-3.5.1|L119A2]]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