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MODEL (문단 편집) === P-MODEL의 전신 맨드레이크(1973 ~ 1978) === [[파일:맨드레이크히라사와.jpg]] 맨드레이크 시절의 히라사와 1973년 [[히라사와 스스무]]와 아베 후미야스, 그리고 그의 섭외로 온 타나카 야스미, 타이나카 사다토시가 모임으로서 하드 /헤비메탈 록 밴드 맨드레이크가 결성되었다. 결성 당시엔 타이나카를 제외한 전원이 [[일렉기타|기타]]를 원해 기타 연주배틀을 통해 포지션을 결정했다고 한다. 결성 초기엔 [[블랙 사바스(밴드)|블랙 사바스]]의 곡들을 커버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춘 하드 록 밴드였으나 나중에 아베 후미야스가 [[바이올린]]을 가지고 오면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전향하고 '''착란의 문(錯乱の扉)'''[* 이후 초반부를 재작업하여 [[IN A MODEL ROOM]]에 偉大なる頭脳라는 이름으로 수록된다.]을 시작으로 오리지널 곡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베 후미야스가 갑자기 잠수를 타 공석이 생겨버린 탓에 히라사와 스스무가 억지로 보컬을 맡게 되었고, 타나카 야스미가 키보드를, 공석이 된 베이시스트는 히라사와의 절친이었던 세키 히로미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이후 적극적으로 라이브를 해왔지만 대부분 다른 밴드와 같이 공연을 한 경우였고 단독 공연을 열 땐 관객이 3명 남짓 오는 등 인지도가 한참 부족했다. 당시의 어려움을 대표하는 사건으로 모 대학 캠퍼스에서 착란의 문을 연주하니까 어떤 구경꾼이 "[[Smoke On The Water]]나 불러!" 라고 소리치며 쓰레기통을 내다던진 사건이 있었다. 이 시기 가장 적극적으로 공연에 따라다니며 호응해준 관객이 '''아키야마 카츠히코'''였다. 세키 히로미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 니가타로 내려갔고, 리허설이나 라이브 때마다 돌아오긴 했지만 나중엔 탈퇴한다. 세키의 후임으로 프로그레시브 밴드 破天荒의 베이스였고 新●月의 멤버들과도 친분이 있었던 아쿠츠 토오루가 들어온다. 히라사와 스스무의 형 히라사와 유이치(平沢裕一)는 맨드레이크의 연출팀 '''디바이스・맨드라고라'''를 이끌며 비싼 연주장비를 싼 값에 구해오는 등 수완이 좋아 맨드레이크가 돈이 많은 밴드처럼 보이게 해줬다고 한다. 1978년경부터 히라사와는 여러 사람과 인연을 쌓았는데, [[신디사이저]] 세션 알바에 응모를 한 날에 카미오 메이로(神尾明朗)[* 후일 히라사와 솔로 앨범 수록곡인 QUIT, UNDOをどうぞ에서 늙은 노인의 나레이션으로 참여하게 된다.]를 알게 되었고, 그의 권유로 주간 플레이보이의 신디사이저 다중녹음 콘테스트에 『필요한 벌의 유혹(いりよう蜂の誘惑)』을 출품하여 심사위원 [[토미타 이사오]]의 호평을 받아 입상하게 되었다. 이 대회의 수상작들은 앨범 「SYNTHETIC SPACE 무서운 두뇌집단」에 수록되었다. [[https://youtu.be/i-ldbpwke_w|#]] 같은 시기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에서 강사를 하면서 나중에 P-MODEL의 베이시스트가 되는 키쿠치 타츠야, 나중에 히라사와가 처음으로 프로듀서를 맡게 되는 밴드 Shampoo의 멤버인 오리모 마사미(折茂昌美)[* 2013년과 15년에 히라사와 솔로 공연에 목소리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와 만나게 되고 옆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미우라 슌이치와도 아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멤버들은 [[섹스 피스톨즈]]를 위시로 한 펑크록 붐을 바라보면서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고 기존의 대작주의에서 벗어난, 이후 P-MODEL로 완전히 자리잡는 [[뉴웨이브]]와 [[펑크 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후일 히라사와는 인터뷰에서 전자기기의 보급으로 인하여 삶의 속도가 빨라지는 세상을 보고 프록이 갖는 서정성과 대곡지향성에서 위화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때마침 서양에서 태동하던 뉴웨이브를 받아들여 전자기기에서 날법한 짧은 전자음과 심플하고 빠른 템포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https://kyrynyu.tumblr.com/post/144251002085/가-본적-없는-곳에-모든-가능성이-있다-히라사와-스스무-인터뷰-2007|#]] 결국 78년 맨드레이크는 해체를 맞았다. 마지막 라이브에서는 초반엔 프로그레시브 음악 위주로 후반엔 뉴웨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새로 결성될 밴드의 스타일을 암시하는 세트리스트를 짰고 맨드레이크의 오랜 팬이었던 아키야마도 참가했다. 그 후 프로그레시브 록에 미련이 남아있던 아쿠츠 토오루가 떠나고 아키야마 카츠히코를 새 멤버로 맞아 1979년 1월 1일 '''P-MODEL'''이 결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