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38 (문단 편집) == 파생형 == 당시 전술기 수준으로는 높은 외부 탑재능력을 가졌다. 쌍발기라는 특성상 엔진 출력도 좋고, 특유 트윈붐 형태라 조종석과 엔진 사이 날개에는 다른 전술기 보다 크고 무거운 폭탄이나 대형 연료탱크들을 장착할수 있었으며, 또 기수에는 대형, 대량의 장비를 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전투기형 이외의 파생형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파생형은 정찰기형이다. 기수의 무장을 철거하고 고성능 카메라를 여럿 탑재한 비무장 정찰기형인 F-4, F-5[* P-38 대신에 아예 이 명칭으로 바뀐 것. 현대의 [[F-4 팬텀 II|F-4]], [[F-5]]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지금과는 달리 2차대전 당시 미육군 항공대에서 항공 사진 정찰기를 뜻하는 영문자는 F였다. 그러나 이건 육군 항공대의 경우고 해군은 전투기의 약자로 F를 썼다. 종전 후 3군 무기 명칭이 통합되면서 지금처럼 전투기가 F로 통일되었다.]는 연합군의 중요한 정보 수집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문학가이자 조종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비행을 함께 했던 기체로도 유명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생택쥐페리는 자유프랑스 공군의 일원으로서 정찰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마지막 비행 당시 탑승기는 F-5.] 이 정찰기형은 그 활용도 만큼이나 손실률이 매우 높았다.[* 생텍쥐페리 역시 정찰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실종되었다.] 이 비무장 정찰형들은 단독 저공비행이 주요한 임무패턴이었다. 그러나, 본문에 나왔다시피 유럽전선에서 P-38의 비행속도는 썩 빠른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추축군 전투기와 만나면 이를 따돌리기가 어려웠고, 저공에서 작전하기 때문에 지상의 대공포화에도 여지없이 노출되었다. 반격수단은 당연히 없었고, 자신을 보호해 줄 동료기를 대동하지 않는 단독 비행이란 점도 피해를 가중시켰다. 결국, 유럽전선에서의 전투기 개조 정찰기 전력은 무장을 제거하지 않고 전투능력을 그대로 가진 기종들이 주력을 이루게 되면서 전쟁 말기에는 주력 정찰기의 자리를 내어준다. P-38들은 유럽전선 전쟁 말기에 이르면 높은 무장 탑재능력을 활용하여 폭격기처럼 편대를 짜서 폭격임무에도 투입되었는데, 이 폭격 편대의 선두기 역할을 위해 무장을 철거하고 기수를 유리로 바꿔서 노던 폭격조준기와 폭격수 자리를 설치한 드룹스누트형이나, 또 H2X라는 폭격 조준용 대형 레이더를 설치한 패스파인더형으로 개조된 기체들도 있다. 태평양 전선에서는 일선 부대에서 레이더를 장착한 야간전투기로 개조한 기체들이 야간전투에 투입되었다. 나이트 라이트닝이라 불린 이 P-38M형은 L형을 개수하여 AN/APS-6 레이더를 기수 아래에다 장착하였으며, 소염기와 검정 무광 페인트를 칠하였고 조종석 뒤편에 레이더 조작수 자리를 마련했다. 다만 이 후방 조종석은 머리 공간이 상당히 작아서 키가 작은 레이더 조작수가 필요하였으며 이는 나중에 미군에서 제대로된 [[P-61|야간 전투기]]를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파생형까진 아니지만 초기형 P-38들은 본토에서 공수부대용 CG-4A 와코 글라이더를 시험 견인하는데도 사용이 되었다고 하며 최대 3기 까지 견인할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론 글라이더를 견인하는데 전투기를 투입하는건 좀 낭비라고 생각했는지 실전에선 [[C-47]]이 그 임무를 맡게 된다. [* 여담으로 영국의 헤밀카 글라이더를 견인하는것도 연구되었었는데, 이 [[미스텔|글라이더 위에다 P-38을 붙여버린]] 형태였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소량의 인원,화물 수송 임무에도 활용되었고, 각종 실험기로도 활용되었다. 실험기중 하나는 붐에 있는 터보 슈퍼차처를 제거하고 [[F-82|이곳에 조종석을 탑재하여]] 비대칭 조종석이 어떤 조종 특성을 보여주는지 연구하거나 훈련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소드피시라 불렷던 또 다른 한대는 탠덤 좌석 형태로 개조되고 층류익을 연구하는데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다에 이착륙까지 해가며 장거리 항해 비행을 할수 있도록 플로트가 장착된 수상기 버전도 고려된적도 있었으며, 실제로 P-38E 한대를 개조가 들어가 이륙할때 꼬리날개가 바다를 치지 않게 위로 향하게 개조까지 했지만 플로트가 장착되지는 않았었고 결국 [[F4F]]의 수상기 버전처럼 계획 자체가 취소되어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정찰기형인 F-5를 기수를 개조하여 2개의 좌석과 추가의 카메라를 장착한 형태도 존재하였는데, 나중에 이 형태는 P-38M이나 드롭 스누즈 같은 여려 형태에 이용된다. [[공중급유]]실험에도 이용되었었는데 아직까진 초창기라 폭격기에 매달린 연료탱크를 잡는 방식이였다고 하며, 다행히도 항공대는 실용성이 떨어졌다고 판단하여 채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스키방식의 랜딩기어를 장착한 실험기도 존재하였다고 한다. 전쟁 이후에는 [[MG 151]]를 역설계한 T17 시제 60구경 15.2mm 기관포를 장착하여 실험도 진행했었다고 하며, 엔진 출력이 커서 별에 별 무장들을 들고 다닐수가 있었는지 또 다른 무장 실험형은 20mm 기관포를 2문으로 늘린 형태나 슈퍼 스트레이퍼라는 별명으로 기수에 50구경 기관총 8문과 각 날개에 2문의 가관총을 장착한 실험형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날개 아래에 어뢰 2개를 장착하여 뇌격기 시험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그중에서 부상자를 수송할 목적으로 에어 엠뷸런스 컨셉으로 연구가 된적이 있었는데, 방법이란게 커다란 빈 연료탱크에다 창문과 침낭 달아두고 여기에 사람을 태워 나르는 형식이였다.[* 사실 남들도 이런 생각을 안 한건 아니여서 독일 또한 [[BF109]]와 영국도 [[스핏파이어]]에다 이런걸 달아 기지간 연락용 인원 수송용으로 연구를 했었다.] P-38이 다른 전투기에 비해 세발 자전거씩 렌딩기어와 날개 장착 위치가 높은 편에 속하여 커다란 인원 수송용 포드를 달기 용의했었고, 당시에 가장 빠른 미 육군 항공기였기에 일종의 고속 엠뷸런스로 써먹을 생각이였다. 그러나 고고도로 올라가면 포드안에 있는 사람은 추위를 견디는건 물론 산소가 희박해 어떻게 숨을 쉬냐가 문제였고, 착륙하면 엄청난 충격이 전달되는것도 문제에다 만에 하나 렌딩기어가 고장나 불시착해도 문제였다. 가장 큰 문제로는 이걸 달고 적기라도 만나면 연료탱크처럼 떨어뜨릴수 없으니(...) 전투하거나 도망가야 했었는데, 이 큰 포드를 달고 기동 하거나 최고 속력을 내는건 당연히 불가능했기에 결국엔 구상으로만 끝났다. 그래도 나름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는지 실제로 제작해서 전투기에 달아둔 사진도 존재한다. P-38을 개선해 24기통 X-1800엔진을 탑재 및 무장을 20mm 기관포 2기로 늘린 XP-49가 연구되었었다. 초기형 라이트닝인 P-38E 보다는 나은 성능을 보여줬었지만 막 양산되기 시작한 P-38G 보다는 못한 성능을 보여줘서 취소되었고, 조종석을 크게 넓혀 리모콘 포탑을 달고 레이더와 강력한 엔진을 탑재한 중 전투기형 XP-58 체인 라이트닝 또한 연구가 진행되었었지만 이 또한 원래 탑재 되기로한 엔진이 개발이 취소되는 문제와 이걸 고고도 중 전투기로 사용할지 호위기로 사용할지 공격기로 사용할지 폭격기로 사용할지 선택장애가 걸린 [[높으신 분]]들로 인해(...) 개발이 지지부진하다가 취소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인도의 한 항공사는 기수 전체를 유리로 바꾸고 고급 좌석과 편의시설을 갖춘 VIP수송기로 개조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제안형에 그친 것들로는 모델 822라고 접이식 날개와 어레스트 후크, 소염처리한 해군형 P-38로, 다만 해군은 고고도 능력과 수랭식 엔진 그리고 큰 크기 때문에 관심도 없었지만 북아프리카에서 FO-1이라는 이름으로 육군항공대의 F-5를 4대 받아 운용하였다고 하며, 그외 지상공격기형 P-38이 있었다고 하며 조종석을 대형화 시키고 그 아래에 75mm 전차포를 달은 형태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