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G42 (문단 편집) === 역사 === 독일은 [[기관총#s-3.3|다목적 기관총]]인 [[MG34]]를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MG34는 성능은 좋았어도 과도기적 모델이라 무겁고 부품이 많이 드는 데다 절삭가공으로 제작되어 단가가 비쌌고, 또한 원래 항공기용 기총으로 설계된 총을 개량한 물건이라 오염에 약한 면이 있었고 총열 교환 방식 상 엎드린 채 총열을 교환하기는 매우 불편했다. 이러한 MG34를 전쟁 중에 개량하여 나온 것이 MG42이다. MG34가 150인시(人時)에 327 라이히스마르크가 든 반면 MG42는 75인시에 250 라이히스마르크가 들었고, 무게도 가벼운 편이었다. 완성품은 좋은 평가를 받고 바로 [[독일 국방군|독일군]]에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1942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름도 MG42가 되었다. 이 때 개머리판과 손잡이 그립은 초기에는 열경화성의 초기형 [[플라스틱]]인 검은색의 [[베이클라이트]]를 사용했다. 그러나 1943년 이후에 전시물자들이 귀해지자 개머리판 제작에 목재 제품이 사용되었다. 개머리판 아랫쪽의 돌기는 엎드려 사격시에 왼손으로 개머리판을 잡고 사격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MG42의 완성도가 워낙 높았기에 전후에도 독일군은 사용탄을 [[7.62×51mm NATO]]탄으로 바꾸고 연사력을 낮춘 [[MG3]]를 사용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kFza-dZ02aw)]}}} || || Forgotten Weapons의 T24 리뷰 영상 || 미군은 수랭식 기관총을 단순화시킨 땜빵일 뿐이었던 자국 30구경 기관총의 여러 문제점 때문에 신형 기관총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꼈으나 MG42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전술에 제약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험삼아 노획한 MG42를 본국에 가져와서 T24란 명칭을 주고 대충 카피를 시도해보긴 했으나 실패했다. 업체선정에 얼마나 성의가 없었는지 브라우닝 기관총을 납품하던 회사 중 아무데나 맡겨 프레스 가공로 생산하는 총기를 '우린 프레스기 쓸 일이 없는데요'하는 셰기노우 사가 역설계했다. 전쟁 전엔 제너럴 모터스에 스티어링 기어나 납품하던 부서였다. 개량하라는 요구도 아니고 미군 사용탄약에 맞게만 복사-개조하는 작업임에도 불구, 셰기노우가 작업을 질질 끄는 통에 보다 못한 스프링필드 병기창에서 빼앗아다가 마무리를 지어 결과물을 내놓았지만 결과물은 어찌나 섬세한지 먼지가 조금만 들어가면 고장나고 발사속도는 제멋대로 왔다갔다하는 등 신뢰성은 0에 가까운 물건.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고, 해결해도 여러 문제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프로젝트는 폐지되었다. 농담삼아 애초에 기술이 없는 셰기노우이다보니 제대로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놔도 자기 쪽에 생산물량이 떨어질 리가 없어 처음부터 [[사보타주]] 성으로 대충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비슷한 사례가 [[SA80]] 개발 과정에서도 있었다. 마가렛 대처 행정부는 SA80 개발을 담당하던 왕실 조병창에 대한 민영화를 강행해 직원 다수를 해고하고, 종국에는 회사 자체를 민간 회사인 [[BAE 시스템스]]에 팔아넘기기에 이른다. 결국 SA80은 후려치는 단가를 맞추기 위해 저질 부품 사용을 강요당하고, 이전부터 총기를 개발/제작해 왔던 경력 있는 직원들 상당 수가 해고당한 데다, 남은 직원들도 어차피 곧 팔아넘겨질 회사라 의욕을 상실했다는 3중고 하에 개발되었고, 지금 우리가 알다시피 똥총의 대명사가 되고 만다. 큰 돈을 들여 개발한 이 똥총을 대처가 물러난 뒤에도 또 큰 돈을 들여 개량해야 했다. 그래서 현재의 SA80은 나름 수준급의 총이 되었다.] 속설에 의하면, [[국제단위계|미터법]]으로 규격을 재서 만드는 원판 부품에 [[미국 단위계|인치법]]을 들이대고 그대로 부품을 찍어냈기에 이 꼴이 났다고도 한다.[* 독일은 일찍부터 미터법을 썼지만, 미국은 여전히 인치법을 쓴다. 묘하게도 인치법이 주로 사용되는 미국에서도 포탄 규격만큼은 아직도 미터 단위를 사용하는데, 이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전했던 미군이 포병 장비가 없어 프랑스군의 포를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 처음으로 현대식 포병을 구성하게 되다 보니 지금까지도 포 규격만 미터법을 쓴다. 다만 함포는 인치법을 사용해 왔는데, [[줌왈트급 구축함]]에서 육군 야포와의 호환성을 고려해 155mm 함포를 채택하면서 함포 규격에도 미터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비슷한 일을 1918년에도 겪었는데, 1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프랑스 측에 [[쇼샤]]를 자국 스프링필드 탄에 맞게 개조해서 공급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단위계 변환 문제로 약실 규격이 .30-06 스프링필드 탄에 딱 맞지 않게 제조되어 심각한 결함품이 되고 말았다. 1차 대전 때 미국 내에서 생산한 P-14나 제정 러시아에 수출할 모신나강 역시 단위계와 하청업체의 품질관리 노하우 부족으로 원판에 비해 개판이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미국의 사용탄약이 독일 탄약보다 길이가 좀 더 길기 때문에 당연히 약실도 더 길어야 하는데, 이걸 섀기노우사에서 대범하게 무시해 버리고 그냥 대충 만들었다고도 한다. 사실 단위차이로 생긴 심각한 문제가 미국에서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다. [[야드파운드법]]을 고수하는 바람에 화성 탐사선을 날려먹은 적도 있다. [* 다른 데는 전부 미터법으로 통일해가는데 미국만 인치법을 애지중지하다보니 NATO 창설 이전에 쓰던 미국제 탄환들은 모두 인치 구경, NATO 창설 이후에 나온 NATO 규격탄들은 미터 구경이다. NATO 창설 이전에 나온 .50 BMG도 NATO 규격이 되면서 "12.7×99mm NATO"로 개명했지만, 그 와중에도 NATO 규격탄이 아닌 .45 ACP는 여전히 인치다(참고로 .45 ACP 탄의 치수는 11.43×23mm이다).] 사실 흔히들 "그냥 보고 베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원본만 가지고 [[역설계]]하기가 근본적으로 어렵다. 대략적인 형상은 베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품공차나 강도, 경도, 표면처리, 도장 등 어디서 어떻게 구르고 어떻게 관리받았는지 모를 몇 개의 샘플을 눈만 가지고는 확인이 힘든 여러가지 요소들이 잔뜩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단기간에 제대로 베끼려면 단순히 노획된 총기 몇 정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설계도들과 시방서를 입수해야 하는데 그것을 적국에게서 간단히 입수할 수 있을 리가 없고, 동맹국에 비슷하게 만들어진 총기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역설계하려면 축적된 기술이 충분한 회사의 연구개발팀이 전쟁통 속 바쁜 와중에 더 중요한 프로젝트를 내팽개치고 말이 역설계지 오랜 기간을 거쳐 처음부터 재창조해야 한다. 통상적인 역설계 순서는 측정(측정 샘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 → 스케치도 작성 → 부품도 제도 → 조립도 제도 순이다. 순전히 시간과의 싸움.[*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면 일본은 [[Vz.26]]의 존재를 1931년 [[만주사변]] 때 알게 되었지만, 이것을 바탕으로 개발한 [[96식 경기관총]]의 개발 완료 시점은 1936년이다. 만주사변 종결 직후에 개발을 시작했다면 96식 경기관총을 4년에 걸쳐 개발한 셈인데, 노획 총기를 기반으로 새 총을 역설계하려면 제대로 설계할 경우 수 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때의 일본은 전시 상태도 아니었고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시간을 들여 제대로 설계하는 게 가능했고 작동방식 자체는 기존 일본 기관총과 기본적으로 같았으니(가스 피스톤에 틸팅 볼트) 복제 난이도도 낮았지만, 2차대전 당시의 미국이 전쟁 중에 자국 기관총과 상당히 다른 구조를 가진 노획 총기를 급히 복제하는 게 쉽게 가능할 리 없었다.] 전후 MG42 도면을 입수했다 하더라도 미터로 표기된 도면을 인치로 변환하는 것은 당시에는 쉽지가 않았다. 우선 미터법과 야드파운드법 사이의 변환 자체가 어려웠다. 흔히 1 in = 25.4mm라는 환산공식이 알려져 있는데 이건 1959년에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하는 국가들간의 협의를 통해 야드파운드 단위를 미터법을 기반으로 재정의하면서 성립된 것으로, 그 이전에는 미터법과 야드파운드법 사이의 정확한 환산 자체가 불가능했다. 당장에 야드파운드 단위가 재정의된 이후에도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무한소수]]가 되기 십상이라 근사값이 되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하면 그런 환산 기준조차 없던 이전에는 아무래도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것. 거기다 지금이야 [[CAD]] 프로그램에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미터가 인치로 변환되지만 불과 50년전만 해도 전자 계산기는 커녕 [[계산자]]라는 물건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유효 숫자가 4자리에 불과했으며 덧셈/뺄셈은 여전히 사람 손으로 해야 했다. 컴퓨터라는 물건도 전후인 1945년 이후에야 일반 계산 용도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결국 수백장의 도면에 기입된 수천, 수만개의 미터법 치수들을 사람이 달라 붙어 일일이 손으로 계산해 인치로 옮겨 적어야 하는데 사람이 하다보니 실수가 없을 리 만무하다. 단위계 변환 실수는 흔한 일이어서 오늘날까지 [[에어 캐나다 143편 불시착 사건|항공기]]나 [[화성 기후 궤도선|우주탐사선]]을 날려먹기도 한다. 전후 [[FG42]]에 더 관심을 가져 이를 기반으로 신형 기관총인 [[M60 기관총]]을 만들긴 했는데, 월남전의 열악한 전장환경과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신뢰성때문에 소대 공용화기는 M240으로 대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