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G42 (문단 편집) === 운용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43 - 1945 rifle platoon-01.webp|width=100%]]}}} || || 나치 독일의 분대원 무장 구성 || MG42는 독특한 운용법으로 인해 과거 독일 교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나치 독일의 분대(Gruppe)는 [[MP40|기관단총]]을 장비한 [[분대장]]과 기관총사수와 기관총부사수와 탄약수로 이루어진 기관총조, 부분대장과[* 전쟁 초기에는 기본적으로 [[Kar98k]]를 주로 사용했다. [[독소전쟁]] 개전 이후에도 독일이 [[볼트액션]] 제식 소총인 Kar98k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반자동 소총]]인 [[게베어 43#게베어 41|Gewehr 41]]이나 [[게베어 43|Gewehr 43]]의 보급이 예상만큼 잘 안되었고 미국이나 소련의 반자동 소총들에 비해 내구도가 좀 떨어졌기 때문에 부분대장들은 여전히 일반 소총수들처럼 Kar98k를 들고 적성국의 [[기관단총]]을 노획해서 부무장으로 쓰기도 하고, 적성국의 반자동 소총을 노획해서 주무장으로 아예 바꿔 쓰는 경우가 더 많았던 반면 독일 저격수들은 Kar98k보다 애용하기도 했다.] 제식 [[볼트액션]] 소총인 [[Kar98k]]에 [[게베어그라나텐게레트|시스베허]] 같은 대인 또는 대전차 총류탄 발사기를 장착한 소총수/유탄수 5명으로 이루어진 소총조로 구성되어 있었고, 소총수들이 장비한 볼트액션 제식 소총의 한계로 화력의 중추는 기관총조가 맡았다.[* 전쟁 초기일수록 독일 소총수들이 Kar98k로만 무장하는 비율이 높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Ek4Gs2UBZUs)]}}} || || [[MG34]]와 MG42의 비교 || [[MG34]]와 MG42는 설계할 때 부터 이전보다 생산성 또한 염두에 둬 나치 독일 보병 분대마다 배치하고도 남아 돌 정도로 많았으며 4배율 광학장비가 달린 삼각대의 보급률도 높았기 때문에 나치 독일군은 연합군의 보병과 장갑이 없는 차량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 MG34의 경우 결함인 오염 취약성 문제, 총열 교환 시 엎드린 채 할 수 없다는 점, 자세의 불편함에서 자유로웠다. 상부의 MG42를 이용해 적의 전투기까지 위협하길 기대했으나 항공기의 빠른 발달로 상대할 수 있는 기종과 상황이 거의 없었다.간접사격과 고지에서 간접사격을 하는 감사를 위한 조준선도 있었으나, 1차대전의 구식 교리이기에 쓸 일이 없어 후기모델에서 사라졌다. 또한 빠른 연사속도에서 나오는 청각적 효과는 익숙하지 않은 병사들 상대론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시키기에 제압효과가 탁월했다. 소련군의 [[PPSh-41]] [[기관단총]]도 마주친 적을 수월하게 제압했는데 피격시 최소 중상, 사망인 기관총이 분당 900~1500발로 MG42의 화망에 걸린 연합군 신병은 주변 지형지물에서 나는 피탄음까지 컸을테니 오죽했을까. 미 육군의 경우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에서까진 참 뭐같은 총이네 정도였다가 서유럽 데뷔전인 [[D-Day]] 때 문제가 터졌다. 악재로 전차지원 없이 보병만으로 상륙했던 지역의 병력들은 [[제1차 세계 대전]] 때 무인지대로 돌격하던거나 마찬가지였기에 대학살당했는데, 이후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선 훨씬 빈약한 수준의 화력으로도 [[우쑹 전투]]와 같이 상륙병력은 다 날아간다. 상륙과 도하 중 적의 공격을 받는 것이 괜히 무서운 게 아닌데 하필 MG42 벙커들로부터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총탄을 피하며 포화를 뒤집어 쓰는 경험을 한 것이다. 통계에서도 기뢰 및 지뢰, 포탄에 의한 사상자가 거의 대다수이긴 했으나 총상자의 비율이 적은 차이지만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수준으로 높은데, 거리와 상황 상 소총으로 맞추기 힘들어 이 경우엔 총상자가 대부분 기관총에 피탄당한 걸로 추정되어 그 화력과 명중률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오마하 해변이 엄청난 사상자와 이를 무릅쓰고 앞장서며 방어선을 돌파한 레인저들로 인해 유명해졌다. 상륙 후 정확하게 비처럼 쏟아지는 기관총 사격에 대한 경험담이 퍼지며 공포심이 확산되고 후방에서 생겨난 히틀러의 비밀병기같은 온갖 과평가와 괴소문들은 아직까지도 전세계에 퍼져있다. 전투경험이 쌓인 연합군 병사들이나 위축되지 않고 대응했지 신병들에겐 양국의 무기체계에 대한 설명에 담긴 필름을 교육자료로 활용하여 신병들이 전장에서 처음 MG42를 마주쳤을 때의 정신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쓸 정도였다. 연합군이 상륙 중 크게 데인 경험과 이에 따른 파장, 빠른 연사속도가 충족시켜주는 화력에 대한 열망, 각종 매체의 극적인 연출로 인해 마구 갈겨서 대학살을 하는 무기로 착각받는 경우가 많으나 이런 경험이 없었던 동부전선에선 주로 '멀리서도 정확히 맞추는 기관총'이란 평가였고, 그게 바로 독일이 설계한 기관총이었다. 분대지원화기로써도 야전에선 소총수들의 총격전 교전과 수류탄 및 유탄 교전 효율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부분대장이 지휘하는 소총조의 전술 행동을 지원함에 있어서도 교전거리가 적당하면 제 역할을 톡톡히 했으나 이런 저런 문제가 많아 교전 거리가 짧아질 수록 치명적이었다. 경기관총으로 운용 시 50발들이 드럼탄창을 사용하는데 장탄수는 적고, 장전은 탄띠식 기관총처럼 해야했다. 완벽한 조건과 준비 상태에서 숙련자가 해도 7초가 걸린다. 너무 빠른 연사속도는 반동이 심해 양각대만으론 감당하기 힘들어 명중률이 떨어지니 짧은 점사가 강요되어 지속적으로 사격할 수 없으니 장탄수 문제와 겹쳐 지역제압을 안정적으로 해주기 힘들었으며, 견착사격은 억지로 할 순 있지만 무게가 무겁고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는 편이라 조준을 유지하기에는 총구가 많이 흔들리고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해 잠깐밖에 하지 못하며 이 상태에서 사격 시 조준 유지는 커녕 총구가 하늘로 솟고, 자칫하면 넘어질 수도 있어 갑자기 적을 근거리에서 마주친 등의 돌발 상황에서도 허리춤에서 쐈다. 또한 무게가 무거워 전술기동 속도와 거리가 제한됐고, 무게부담을 줄이기 위해 소총수마다 탄창을 들어주는 경직적인 구조를 갖게 되고, 탄약수까지 따로 필요해 사수, 부사수와 함께 3인1조로 운용해야했다. 이런 점들은 지형지물이 복잡한의 지역에서 보병간 전투가 이루어질 때 큰 문제가 될 여지가 있었다. 기관총조는 상대의 양면 동시 공격과 후방 기습에 취약하여 소총조가 이에 대응해야 하는 역할도 맡아줘야 하는데 격렬한 전투 시 전쟁 초, 중반엔 Kar98k로 무장한 소총수의 화력이 너무 부족해 모든 상황에서 기관총조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교리상 기관총 사수에게 기본적으로 붙여두게 되는 부사수와 탄약수가 이를 커버해야 하기도 했다.[* 때문에 만성적인 기관단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단종된 기관단총의 생산분이나 권총, 권총 탄약이 호환되는 소련군으로부터 노획한 기관단총과 심지어는 사용 탄약이 제각각인 별의 별 노획 기관단총이나 권총마저 긁어모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Kar98k이 타국의 소총보다 품질이 좋다 해도 결국엔 수동노리쇠 소총끼리 비교해봤자 의미가 없으며, 반자동 소총과 자동화기의 수량이 매우 부족했다. [[M1 개런드]] [[반자동 소총]]에 비하면 택도 없다. 당시 독일군은 대부분의 무장이 수동노리쇠 소총인 관계로 분대가 기관총에 대한 의존성이 크고 화력조란 개념마저 따로 없어 기관총이 기동하거나 장전할 시 공백이 컸으며 분대기관총 치곤 무거워 분대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공격시엔 기본적으로 기관총조와 함께 타 분대를 엄호하고 사상자가 생길 때 응급조치하고 인원을 메꾸다가 자신들도 전진하는 경직적인 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다른 분대들과의 긴밀한 협응으로 MG42의 화력을 활용하기 위해 공을 들여야 할 때도 많았다. 때문에 상급 제대에도 어느 정도 제한이 가해졌다. 독일은 선진적인 [[임무형 지휘체계]]를 구축한 국가 중 하나였기에 해소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숙련된 병사들과 지휘자들이 중요했는데 전쟁 초기에는 독일군의 인적 자원들을 군 복무 적격자들로 징병했으며 독일군 특유의 충실한 훈련이 충분히 이루어졌고 많은 국가들을 점령하면서도 사상자가 많지 않아 이들이 그대로 살아남아 실전 경험까지 많이 축적했기 때문에 감당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들이 극심하게 소모되는 전쟁 중후반기부터는 극심한 인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군 복무에는 부적합한 자원들도 징병하게 되었고 이들에게 난이도 높은 무기들을 쥐어주면서 그에 맞는 고난이도의 교리를 제대로 수행할 것을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기 때문에 히틀러가 이들을 위한 발전된 개념의 새로운 제식소총인 [[StG44]] [[돌격소총]]을 양산결정 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MG42는 시가전에서는 불리했다. 돌발상황이 빈번하고 교전거리가 짧은 경우가 많은 시가전 특성상 고층건물과 반지하 등의 위치에 전술적으로 잘 설치해 구획을 봉쇄하긴 좋았으나 그 외엔 활용하기 힘들었다. 기동성이 떨어지고 거치가 필요한데다 무게와 앞으로 쏠린 무게중심으로 고층에서 아래쪽으로 큰 각도로 내려다보며 사격하기가 불가능했다. 삼각대는 너무 거추장스러워 시가전에선 활용할 위치와 상황,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와중에 독일군에게 고질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자동화기 부족으로 시가전에서 주도권을 가져가기 힘들어 연합군이 우회로, 연막탄, 폭약, 유탄 등을 이용해 기관총을 우회 공격하거나, 연막탄으로 기관총의 사격을 방해 또는 기만하며 건물과 거리를 하나씩 점거하는걸 저지하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수류탄, 각종 제식 및 노획 기관단총, [[화염방사기]]들이 훨씬 요긴했다. 이는 나치 독일의 만성적인 보급 부족 문제와 그 해결법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다른 무기체계, 특히 전차는 생산라인을 꼬아놓아 생산량이 저조하던 반면 보병은 보급편의성을 위해 소총탄을 7.92mm 마우저탄으로 통일하여 이에 따라 해당 규격 탄환을 사용하는 MG34, MG42를 다목적 기관총으로 대량생산해서 분대급까지 지급해 기관총 화력에서 압도하는 대신 나머지 인원은 볼트액션식 수동노리쇠 소총인 [[게베어 1898|Gew98]]에서 길이만 단축한 [[Kar98k]]를 제식 소총으로 채택했다. 이는 가성비와 보급의 편의 면에서는 효율적이긴 했으나 차츰씩이라도 소총수들의 화력을 끌어올려 자신들이 가진 이점을 극대화시켜야했지만 나치 독일은 독소전쟁 이전까지 별 관심을 두지 않아 반자동마저도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다음은 타국과의 교리 비교이다. 소련의 최전방을 전담했던 근위군, 충격군을 제쳐놓고[* 지형상 전차와 항공기가 보병의 전투양상에 영향이 훨씬 컸기에 단순비교가 힘들다. 또한 시가전에선 황당할 수준으로 자동화기를 보급한다. 단순한 설명을 위해 기관단총소대가 잘 언급되는데, 그걸 넘어 중대를 전원 기관단총으로 무장시킨 사례들도 있다.] 서부전선의 주축이었던 미군과 비교해 보면 육군 보병사단 편제 기준으로 12인분대에 자동화기 사수에게 BAR(브라우닝 자동 소총) 1정, 탄약수에게 BAR 탄과 M1 개런드를 지급하다 상륙 직후 분대당 2정을 지급하고, 독특하게도 현대적인 교리로 강력한 유탄수의 화력을 앞세워 타국은 사단마다 유탄수 편제가 다른 반면 미 육군은 모든 보병사단의 모든 분대마다 유탄수용 소총과 어댑터, 총류탄을[* M1903 스프링필드 소총과 M1어댑터, M1917 엔필드 소총과 M2 어댑터를 혼용하다 1943년에 개런드 소총과 M7 어댑터, M17 총류탄 및 부수기재로 통일.] 기본 1세트 지급하다 대전 말엔 3세트까지 지급했다. HQ에도 분대마다 있었을 정도.[* 이 전투방식이 더 발전해 인원소모 없이 전문화한 유탄수가 더 멀리서, 더 정확하게, 더 빨리, 더 꾸준히, 더 강력한, 더 다양한 탄을 퍼부으면 좋겠다는 판단이 명작 M79와 40mm 유탄의 탄생 및 이후의 족보까지 간다.] 나머지 인원은 반자동 소총 M1 개런드로 무장했다. 이 중 소총을 든 인원들이 상황에 따라 BAR, 톰슨 기관단총 또는 M3 기관단총, M1 카빈, 바주카, M1919 경기관총을 지급받았으며 특수한 상황에서 드물게 M1903A4 저격소총 등을 추가로 지급받다. 때문에 미군 참전 시점에는 독일군에 MP 43과 StG44등의 돌격소총이 배치되기 시작했어도 대부분이 Kar98k로 무장한데다, 야전에선 미군 소총수들은 현대 기준 8발들이 전투소총으로 무장한 셈이었기에 상식과 달리 화력이 매우 우수해 독일 기관총 총구화염이나 예광탄 보고 미군 소총수끼리 일제히 속사를 해 역으로 제압사격이 가능한 수준이었는데 흔히 행해진 기본 전술 중 하나였다. 소수 StG44가 있어봤자 당연히 딱히 문제될 게 없었고, 시가지, 숲과 같이 보병간 근거리 전투가 예상되는 지형에서 전투를 앞뒀을 땐 카빈과[* 한계점으로 느린 탄속과 둥근 탄자 때문에 200~250야드에선 유의미한 명중률 감소가 있었고 움직이는 목표는 숙련된 사수가 아니면 맞추기 힘들었으나 200야드 내에선 돌격소총에게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매우 가볍기까지 해 한국전쟁은 물론 월남전에서도 진영불문 요긴하게 썼다.] 기관단총을 다수 지급했다. 추가지급은 상황에 맞춰 많은 양이 적절히 이루어져 전투마다 실제 편제를 알기 힘들 정도다. 이런 추가 지급된 화기들을 상대론 돌격소총은 큰 우세를 점하기 힘든데다 수량도 부족했다. 자동화기 사수의 경우 BAR 사수들과 탄약수들은 독일의 기관총조가 3인 1조로 운용됨과 달리 부사수란 개념이 없고, 다루기 가벼워 2정, 3정을 지급해도 수월하게 운용이 가능했으며, MG42의 운용방식처럼 거치 후 고속사격모드로 놓고[* 저속사격, 고속사격 선택이 가능하다.] 탄약수가 탄약집을 계속 건네줘 빠르게 재장전해가며 제압사격을 계속 퍼붓는건 물론 독립적인 전투도 가능한 덕분에 탄약수도 같이 사격을 해가며 보조할 수 있었다. 또한 자동화기란 개념은 기관총과 달리 매우 가벼운 무게 덕에 신속하게 기동이 가능하면서도 거치 없이 견착만으로도 150야드 내에선 유의미한, 100야드 내에선 효과적인 자동사격이 가능했다. 분대장과 부분대장은 상황과 재량에 따라 이들을 2개조 또는 3개조로 쪼개 유연하게 운용했는데, 개개인 전부가 충분한 화력을 갖춰 분대 전체의 화력이 앞선 상태에서 각 분대의 화력조마다 통제에 따라 화력분배를 하며 끊임없이 기동하며 싸울 수 있었기에 전술성이 우수했다. 미군 눈에는 MG42가 경기관총으로선 무거워서 분대원 발목만 잡고, 오래 쏘지도 못하고, 제대로 제압도 못하고, 장전도 느린데, 2정 이상 운용할 수도 없으니 총구가 한 곳 밖에 향할 수 없는 전술성이 열악한 기관총으로 평가해 FG42의 전술적 역량을 더 눈여겨봤다. 겉이 번드르르하고 카탈로그 성능만 우수한 독일 무기와 달리 시대를 앞서나간 보병 교리를 짜고, 이에 맞춰 제 역할을 아주 확실히 하는 개인화기들을 지급하니 기동성, 균형과 보급역량의 활용을 통해 유리하게 싸운 것이다. 미적 디자인이 투박하고 목재를 사용한 총기여서 겉만 보기엔 만만해 보여도 실상은 현대의 독일군마저 미군식 교리와 무장을 열심히 따라잡을려고 발악하는 실정이다. IAR도 여기서 출발한 것으로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이 때 BAR을 운용한 경험을 토대로 현 상황에 맞게 회귀 및 발전시킨 것이다. 미군에게 늘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은 보병화기가 아닌 소대급부터 사단급까지 각종 직사화기 및 곡사화기와 탄 보급량, 전차 및 항공기 지원으로 거의 항상 미군이 독일군을 앞서 손쉽게 찍어눌렀는데, 이러한 지원은 물론 수적 우위까지도 활용할 수 없었던 보병간의 전투에서, 요새화한 독일군을 공격했던 [[휘르트겐 숲 전투]]에서도 고작 미군 1.2, 독일군 1의 비율만으로 적은 피해로 꾸준히 전진해 전술적 승리를 거듭했다.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숲을 공격하는 의미가 없었고 미군은 평소처럼 인명피해 없이 독일군을 간단히 사냥하길 원했기에 퇴각하여 전략적으로 패배했지만, 그런 악랄한 조건에서 고작 이정도 피해만으로 전술적 승리를 거듭한 것에서 미군 보병의 역량과 독일군이 소총수 화력을 등한시한 결과가 매우 큰 실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은 이런 이유로 대전 말에 [[국민척탄병]] 사단을 편성하며 새로 징집한 예비역들인 미숙하고 체력이 부족한 신병들에게는 [[독일 국방군]]이나 [[무장 친위대]]와 달리 다른 교리를 적용해 [[MP40]]과 같은 [[기관단총]]과 최초로 완성적인 [[돌격소총]]이었던 [[StG44]]를 많이 지급했다. 몇몇 국민척탄병 사단들은 어이없게도 육군 메이커 사단보다도 기관단총과 돌격소총이 많은 경우도 많았다. 비숙련병에겐 가볍고 반동 제어가 쉬운 기관단총이나 돌격소총을 다루는 것이 쉽지 수동노리쇠 조작이나 개방형 가늠자 소총은 신병들이 제대로 쓰기엔 아주 안좋다.[* 수동노리쇠는 숙련되지 않으면 장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숙련자도 한참이 걸리고, 조준선 재정렬도 느리며, 노리쇠를 당기는 중 목표에 시선을 고정안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다, 최소한의 피로로 장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다 가능해 빨리 쏠 수 있어도 피로가 사격속도에 비례해 높아져 연사속도와 명중률이 점점 떨어진다. 또한 개방형 조준기는 시야 방해 가능성은 없지만 조준이 제대로 됐는지, 안됐는지 충분한 실탄훈련이나 경험이 없으면 폐쇄형 가늠자에 비해 알기 힘들어 명중률과 조준속도가 신병들간엔 차이가 많이 크다. 폐쇄형이 훈련이 빠르고 쉬우며 투입 후의 명중률 또한 상당하다. 특히 바늘구멍 가늠자는 숙련자간 차이도 커서 지금도 많이 쓰여 거의 대부분의 제식 소총, 한국군 K2나 사격선수들의 대회용 소총에도 쓰인다.][* 여기에 더해 미숙한 병력들은 Kar98k에서 하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총류탄 발사기의 포물선 탄도에 익숙하지 않아 총류탄 발사기를 제대로 사용하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국민척탄병은 적 보병과 머리싸움을 하기도 해야 하는 볼트액션 소총을 운용하기 어렵고 무겁고 반동 제어가 어려운 다목적 기관총과의 긴밀하고 능숙한 협응과 운용을 기대할 수 없고 시가전에서 많이 싸우게 되니 자동 화기의 무장 비율을 높혔다. 대전 말에는 국방군과 친위대에서도 [[StG44]]로 제식 소총이 바뀌어 소총수 개개인의 화력 부족 및 분대의 화력 분배 문제가 해소되었음에도 자격미달인 병력이 보급과 병력 수 까지 부족해 MG42가 대활약하는 일은 없었다. 대전 후엔 사용탄종만 변경된 MG3가 계속 쓰이고 군축으로 인해 지금도 후방에선 여전히 운용되나 설계한 시대의 한계로 MG3를 쓰고 싶어서 쓰는건 아니기에[* 견착사격을 못하는 구식 설계가 매우 큰 문제다. 평균 체격이 훨씬 좋아진 지금의 독일군은 들고 쏘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효과적인 사격은 못해서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MG3를 거치하고 쏘도록 훈련한다. 옛날 방식으로 대충 퍼붓는다고 항상 완벽히 제압할 수 있는 건 아니니 웬만한 방탄장구류는 크게 손상시키거나 관통하는 30구경 이상의 경기관총으론 차라리 무게와 연사속도를 낮춰서 레일에 광학장비 달고 자유자제로 자세를 바꾸면서 견착사격도 하고 거치사격도 하며 정확하고 지속적으로 사격하는 것이 제압과 사수의 생존률에 좋다. 중기관총으로 사용 시엔 확장성과 비용을 포기하지 않아도 연사속도만 낮추면 단순한 쇠막대 삼각대에 결합해 점사해도 무반동 수준이다. 그래도 가성비를 놓고 본다면 독일이 국제적 지위만 믿고 국제사회에서 눈총받을 정도로 과하게 군축을 한 상황에선 훌륭한 선택이다. MG3가 여전히 가성비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쓰던거 쓰는게 돈 굳어서다. 그래도 MG 시리즈는 워낙에 잘 만들어서 80년이 지났어도 소대지원화기론 하자로 짚을게 없다. 독일의 지역방위사단 역할을 하는 사단들을 무장시키기에 딱이다. 미군에서 주방위군은 사용자의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M2를 굴린단 농담이 알고보니 일부 사실이였고, 지금도 개량형을 사용하는 식이다. 한국군과 비교되는 부분. 현재까지도 [[K3 경기관총]]같은 하자덩어리 분대 경기관총을 쓰고 있으며 정상적인 경기관총 보급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과 미군의 신형 [[6.8mm]] 탄 도입 문제 등으로 갈수록 늦어지고 있는 한국군 보병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다.] 러시아와 접경한 지역의 사단은 [[MG5]]로 교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