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AT-TUN (문단 편집) === 2010년 ~ 2015년 === '''2010년''' 2월 10일 발매한 11번째 싱글 가 기세를 몰아 초동 30만을 넘겨, 총 판매량 439,736장을 기록했다. 그리고 5월, 아카니시가 '''또 다시''' 미국 활동으로 인해 그룹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솔로 콘서트 때문에 같은 시기에 진행하는 캇툰의 투어에 불참하였고 5월 12일 발매된 12번째 싱글 은 5명만 녹음하였다. 결국 7월 16일, 아카니시가 그룹을 탈퇴했는데, 그 날은 캇툰의 첫 해외 콘서트가 포함된 투어[* [[도쿄]], [[서울]], [[오사카]], [[대만]].]인 개최 첫날이기도 했다. 11월 17일 발매된 의 커플링곡인 가 VOCALOID 오리지널 곡 <[[DYE(VOCALOID 오리지널 곡)|DYE]]>와 똑같아 논란이 되었다. 논란은 쟈니스 측이 문제를 인정하며 일단락되었다. 이후 '''2013년''' 9월까진 데뷔 당시의 쾌거만큼은 아니어도 오리콘 첫 등장 1위를 이어나가는 등 나름 괜찮게 흘러가는 듯 했으나...2013년 10월 9일 다나카 코키의 탈퇴와 사무소 퇴소가 이루어졌다. 사무소에 알리지 않은 채 가게를 운영하거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당시 자신의 성기 사진을 팬과 섹스파트너들에게 보냈던 것이 공개되었다. 아이돌로서는 상당히 치명적인 사진. 덕분에 기존의 '집돌이', '순둥이' 이미지가 박살이 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팬덤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밖에도 만취한 채 문신한 엉덩이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 등 아이돌로 보기 힘든 소행 사진이 연달아 공개된다.] 등의 이유였다. 하지만 이후 캇툰은 흔들림 없이 4인 체재로 활동을 시작한다. 첫 단독 카운트다운 라이브와 첫 단독 팬미팅 공연, 칸무리 방송 이 시작되고, <소년구락부 프리미엄>의 MC를 선배 [[TOKIO]]의 고쿠분 타이치로부터 넘겨받으며 차곡차곡 그룹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간다. 이 시기에는 그룹 활동 뿐 아니라, 멤버들의 개인 활동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2010년 4월부터는 카메나시가 닛테레 의 스포츠 캐스터를 맡아 '카메나시 카즈야의 프로 야구 프로젝트'[* 일본 대표로 선발되는 등 어렸을 때부터 야구가 특기라는 것을 이용하여 여러 도전을 하기도 한다. 본인도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다보니, 팬들뿐 아니라 [[야덕]]들에게도 평판이 좋다.][* 2월 중후반이면 야구덕들이 올려주는 카메나시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야구 시즌이 되면 도쿄돔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다.]라는 개인 코너를, 나카마루는 닛테레의 일요일 아침방송인 <슈이치>에서 '마짓스카!?[* 코너 초반에 "마짓스카!?(정말요?!)"라고 말하는데 가끔 게스트가 먼저 하거나, 나카마루 본인도 까먹어서 중반쯤 되어야 처음으로 나오기도 해 매 회 언제 말할까 기대하는 것도 하나의 묘미.]'라는 개인 코너를 가지게 된다[* 두 방송은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데 생방송이다보니 멤버의 변화를 바로바로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멤버 각자 드라마, 영화, 연극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던 중, '''2015년''' 11월 24일 음악 방송 <베스트 아티스트>에서 다구치 준노스케가 2016년 봄에 그룹을 탈퇴하고 쟈니스 사무소를 퇴소하는 것을 발표했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출연하는 자리에서 발표를 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어 논란이 됐다[* 이때 우에다가 아예 인이어를 빼버리는데 그 모습이 여러모로 팬들을 울린다.]. 게다가 2016년은 캇툰의 데뷔 10주년인 기념적인 시기였는데,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하던 것들과 팬들이 기대했던 것들을 전부 백지화시킨 셈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