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POP/역사 (문단 편집) == 1990년대 == 1980년대의 마지막과 90년대의 시작은 변진섭이나 김완선, 신해철, 015B와 같은 80년대 후반으로부터 이어지는 젊은 가수들의 거대한 약진이 돋보였지만 한 편으로는 [[현철]]이나 [[주현미]]와 같은 트로트 가수들이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 같은 공존을 깨트린 계기가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이들이 데뷔한 [[1992년]]이 현대적인 케이팝(Modern K-pop)의 시작점으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최초의 아이돌도 아니었고, 아이돌문화나 팬문화 같은 것도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부터 등장은 하고 있었다. 한국 최초의 아이돌은 아무래도 [[소방차]]라고 해야 할 것이다. 팬 문화 같은 것도 [[이선희]], [[박남정]], [[김완선]], [[변진섭]], [[소방차(아이돌)|소방차]], [[이상은]] 등이 80년대 중반부터 이미 팬보이 팬걸들의 무리를 거느리고 다녔고 이들 사이에 다툼도 벌어지는 등 그 원형은 이미 있었다.] 이 이전에도 [[손지창]], [[안혜지(가수)|안혜지]], [[김혜림(1968)|김혜림]] 등 서태지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돌 가수들이 있었고 92년까지만 해도 [[김민종]], [[김원준]] 등 서태지 이전과 비슷한 느낌의 [[아이돌]] 가수들이 속속 데뷔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흐름이 개편된 것이다. 나이트클럽 DJ나 이태원 문나이트에서 댄스를 추던 많은 사람들이 제작자 및 작곡가 그리고 가수 등으로 뛰쳐나온 시기가 되었다. 당시 이른바 5대 작곡가로 불리던 [[김창환(작곡가)|김창환]], [[최준영(작곡가)|최준영]], [[주영훈]], [[윤일상]], [[김형석]] 중 김창환과 최준영이 대표적인 DJ 출신 작곡가였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제작한 유대영 역시 유명한 DJ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이들을 이루던 [[양현석]]과 [[이주노]]는 유명한 댄서였고, [[현진영]]과 와와도 유명한 댄서 출신 가수였다. 무엇보다도 [[현진영]]의 경우 현재 K-POP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이수만]]이 이끄는 [[SM 엔터테인먼트|SM]]의 1호 가수였다는 점에서 서서히 현재 K-POP의 원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와와의 경우도 1~2기 모두 유명한 댄스가수인 [[클론(가수)|클론]]과 [[듀스(음악그룹)|듀스]]로 성장하였다. 이렇듯 댄스가요는 1990년대 초중반을 그야말로 강타하고 있었다. 그러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6년 은퇴를 선언고 그 이후 [[H.O.T.]]가 데뷔하고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면서 소속사에서 양성, 제작된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변화를 맞이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연습생 시기 소속사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서 데뷔한다. 즉 소속사의 입맞에 맞게 조련되고, 노래뿐만이 아니라 춤이나 예능, 외국어 등 여러 분야의 훈련을 받고, 또한 활동 역시 회사의 전문적인 계획 아래 운영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팬클럽이라는 구조도 본격적으로 회사에서 관리하는 체제로 들어갔다. 즉 [[팬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했고 이 체제는 2020년대를 지나는 현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K-POP의 가수 생산 체제이기도 하다. 또한 소속사 내에서 주요 작곡가가 있어서 이른바 소속사 스타일이라는 게 처음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 당시 이렇게 트레이닝을 받고 등장한 대표적인 보이그룹으로는 [[H.O.T.]], [[젝스키스]], [[신화(아이돌)|신화]], [[god(아이돌)|god]]가 있었고, 걸그룹으로는 1997년 ~ 1998년 이후부터 등장하여 [[베이비복스]], [[S.E.S.]], [[핑클]] 등이었다. 이들을 이른바 [[1세대 아이돌]]이라 부른다. 이들은 1990년대 말까지 전성기를 누렸고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을 이어나갔다. 단지 이런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할 초창기에는 가수들의 전문성이 상당히 올라왔던 시기고 아이돌 그룹들은 처음 시작할 때라서 시행착오가 많아서 생각보다 별로 혹독한 트레이닝도 거치지 않았고, 실력이나 전문성에서 아이돌 그룹들이 상대가 안 됐다. 많은 기존 가수들은 자기자신들의 노래를 직접 제작할 실력이 있기도 했고,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등도 주요 등용문이어서 이들 역시도 상당히 걸러져서 나온 것은 마찬가지였다. 또한 업소 등의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길게 활동하다 올라온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당시 부족한 시스템에서 나온 아이돌들은 음악적인 전문성에서 기존 가수들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단지 젊음, 퍼포먼스, 외모, 팬관리 등으로 기존 가수들을 인기에서 누를 수 있었다. 1990년대는 [[혼성그룹]]도 꾸준히 등장했다. 1994년 [[룰라]], [[쿨]], [[투투(가수)|투투]], 1996년 [[UP]], 1997년 [[자우림]], 1998년 [[S#ARP|S#ARP]], [[코요태]] 등이 대표적이다. 솔로 가수도 상당한 강세였다. 여성 쪽에는 김창환이 댄스가수로 변신 시킨 [[박미경]]부터 시작해서 [[엄정화]], [[김현정]], [[백지영]],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까지 시대를 풍미하는 여성 솔로 댄스 가수가 많이 등장하였다. 남성쪽에서는 솔로 가수는 90년대 초중반 차트를 유린한 [[신승훈]]과 그의 뒤를 이어 압도적 판매량을 자랑한 [[조성모]] 등과 같이 발라드 쪽이 대세였지만 [[김건모]][* 다만 김건모는 댄스가수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가진 아티스트이다.], [[박진영]], [[김성재]], 유승준(現 [[스티브 유]]) 등의 쟁쟁한 남성 솔로 댄스 가수들도 많이 등장하였다. 록 분야에선 [[시나위(밴드)|시나위]] 출신 보컬로 솔로로 데뷔한 [[김종서(가수)|김종서]]와 '마왕' [[신해철]]과 그가 이끌던 록밴드 [[넥스트(밴드)|N.EX.T]]가 90년대 초중반(1992 ~ 1997)에 히트했으며 90년대 중반에는 [[김정민(1968)|김정민]], 후반에는 [[김경호]]가 큰 인기를 끌며 한국에서 락 발라드라고 불리우는 장르의 인기를 촉발했다. 이처럼 1990년대에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10대 ~ 20대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면서 대한민국 대중음악은 10대가 시장 전체를 장악하다시피하고 이런 현상은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1998년 한국영상음반협회(RIAK. 現 [[한국음반산업협회]])측은 음반 시장에서 10대 취향(댄스, 랩, 힙합)이 차지하는 비율을 80% 이상으로 추정했다. 20대가 15%를 차지하고 나머지 연령층이 전체 5%를 가지고 나눠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당시 10대의 음반시장은 2천8백24억 원에 이르렀다.[*월간조선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003100055|월간조선 2000년 3월호, <10대의 구매력 앞에 무릎 꿇은 대중문화 시장의 내막>]]]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