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POP/역사 (문단 편집) == 1980년대 == 이 시기의 대한민국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추적인 변화 중 하나는 한국형 블루스라고 볼 수 있는 소위 한국형 [[발라드]]를 완성했다는 점에 있다. 이런 한국형 발라드의 틀을 완성한 두 인물로 [[이문세]]의 히트곡을 많이 작사/작곡한 [[이영훈(음악가)|이영훈]]과 가수 [[유재하]]가 거론되며 그들의 영향력은 지금까지 미치고 있다. 이때 국제적인 슈퍼스타인 [[마이클 잭슨]]부터 [[뉴 키즈 온 더 블록]]으로 이어지는 [[대중음악|영미팝]]의 영향이 여전히 지대하게 존재하였으나 이 시기 이후 대한민국에서 대중음악계의 인기는 역전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외국 음악이 No.1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록 음악을 기반으로 하던 [[조용필]]을[* 조용필의 경우 록과 트로트가 많이 섞였다고 해야 하겠지만.] 선두로 [[송골매(밴드)|송골매]], [[부활(밴드)|부활]], [[시나위(밴드)|시나위]], [[들국화(밴드)|들국화]], [[백두산(밴드)|백두산]] 같은 밴드들이 대한민국 록 음악 장르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다만 조용필이나 들국화, 송골매가 록 위주이면서도 1970년대 선배 뮤지션들의 영향으로 포크나 여타 장르의 성격을 띄기도 하는 다양한 형식의 밴드 음악을 했다면,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부활, 시나위, 백두산은 [[신대철]], [[김태원(음악인)|김태원]], [[김도균(1965)|김도균]]등 소위 3대 기타리스트라고 불리던 이들이 만든 밴드로, 영국의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등의 하드 록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부활은 웅장한 밴드사운드와 발라드를 접목, 시나위나 백두산은 직접 헤비메탈을 연주하며 한국 록 음악의 장르 분화도 활성화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3저호황]]으로 더욱 발전한 경제에 힘입어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서 [[나이키]] 신발을 구입해서 신고, 가수들의 음반을 구입하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 [[10대]]가 새로운 소비자로 등장함으로써 이들을 겨냥한 상품이 쏟아지고 1980년대 후반 댄스 음악이 본격적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이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향후 [[한류]]로까지 발전하는 [[K-POP]]의 토대가 된다. [[전영록]], [[김완선]], [[이선희]] 등 80년대 중반 당시의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던 가수들이 그 증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변진섭]]이 89년 발매한 2집으로 180만 장을 팔면서 그 이상으로 청소년 문화의 범람과 대두가 이미 예고되었다고 할 수 있다. * [[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일지/제5공화국]]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