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IS-2 (문단 편집) == 상세 == '''IS-2'''는 [[KV-1]] 시리즈의 후계 전차로, 1943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다. IS-2는 1944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전선돌파라는 측면에서 IS-2는 독일군에게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중갑으로 무장하고 달려드는 IS-2는 독일 보병사단 예하 대전차포 대대의 주력 대전차포였던 [[7,5cm PaK 40]]으로도 저지하기 쉽지 않았고, 저지에 실패할 경우 122mm 고폭탄의 위력은 독일군의 웬만한 야전 방어 구조물에도 구멍을 내기에 충분했으니 소련 특유의 물량으로 전선 각지에서 [[T-34-85]] 떼거지에 섞여서 몰려들어오는 IS-2 무리를 상대하는 독일군 보병 입장에선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물론 초기형 IS-2는 성과가 영 좋지 못했는데... 자세한 이유는 후술. 적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는 곳을 돌파한다는 중전차였으면서도 초기형 IS-2는 차체 전면에 약점이 있었다. 바로 조종수의 시야 확보를 위해 조종석 전면을 경사가 심하지 않게 하고 이 부분에 직시형 조종수 관측창을 설치한 것인데 이는 KV의 그것을 답습한 것이었다. 그 부위의 장갑이 얇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독일군은 그 두께도 관통할 수 있고 명중률 역시 뛰어난 강력한 대전차포인 7,5cm PaK 40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이용해서 그 부분을 정확하게 노릴 수 있는 경험 있는 대전차화기 운용병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러다 보니 IS-2는 2km 밖에서 56구경장 [[8,8cm FlaK]] [[대공포]]나 티거의 56구경장 [[8,8cm KwK 36]] 전차포에 상술한 약점을 맞아서 격파되는 사례도 많았다. 물론 그 당시의 부족한 광학 장비와 주포 수준에서 2km 이상에서 약점을 맞춘 것은 매우 운이 좋은 사례이며 가장 숙련된 전차병들 역시 2km에서 약점을 맞추는 것은 운이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대전차전에서는 특히 성과가 나빴는데, 대부분의 독일 전차보다 화력과 방어력이 우세함에도 연사력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독일의 [[5호 전차 판터|판터]]나 [[6호 전차 티거|티거]]에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독일 측은 방어자로서 은엄폐하고 유리한 타이밍에 공격하는 이점이 있었던 데다가, IS-2에게 대전차전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임무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할베 포위망에서 탈출에 성공해 살아남은 독일군 판터 전차의 승무원은 운 좋게 아군 전차와, [[판처파우스트]]를 가진 아군 보병들을 만나 피해 없이 IS-2 전차 3대를 격파한 기록이 있다.] 추가로, 소련군의 중전차의 손실율은 50%로 소련군의 중형전차나 경전차 손실률인 80% 비해 매우 낮았다.[* 1944년 소련군의 전차 및 자주포 완전손실 총계는 23,700~24,400대 정도로 추산되는데 같은 시기 독일군이 동서남북 전 전선에서 상실한 전차 및 자주포 완전손실 총계는 11,979~12,079대 정도로 추산된다.] IS-2는 나름대로 개량도 했던 만큼 상황에 따라서는 활약을 벌이기도 했다. IS-2의 활약이 유명한 전투 중 하나가 1944년 8월 산도미에쉬 인근 비스와 강의 교두보 확보 전투다. 여기서 IS-2는 티거 2와 전투를 벌였는데 8월 13일 제71근위독립중전차연대의 IS-2M 11량이 제105중전차연대 소속 티거 2 14량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4량의 티거 2가 격파되는 동안 소련군은 3량의 IS-2M을 잃었다. 이 밖에도 극소수의 몇몇 사례가 존재하긴 하지만 단점들이 그렇게 큰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던 방어전에서는 소련군이 IS-2M을 가지고 그럭저럭 괜찮은 교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대전 후기의 주력 중전차로 꽤 많은 물량이 나타나 독일군 측에 위력적인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 상당한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초기형의 경우 차체 앞의 수직 형태의 관측창이 가장 약점으로 작용하여 스탈린 전차보다 체급이 아래인 [[4호 전차]]한테도 이 부분을 맞고 격파당한 일도 있었다.[* 심지어 장갑차들에게 측면 공격을 허용해 격파당한 기록도 있었다.] 상대인 판터나 티거도 초창기 [[쿠르스크 전투]] 등에 투입될때는 체급이 낮은 T-34나 심지어 경전차에게 격파당한 사례가 많았던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펙이나 단점을 제치고서라도 이것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독일군 입장에서는 점점 버거운 상대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전술했듯이 IS-2의 역할 자체가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라서 방어력을 최대한 증강하는 방향으로 개량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마침내 IS-2 후기형에 이르러서는 독일군의 주력 대전차포였던 48구경장 7,5cm PaK 40 대전차포나 [[4호 전차]]의 [[7,5cm KwK 40]] 전차포로는 IS-2 후기형의 전면 장갑을 아예 뚫지도 못하고, 8,8cm FlaK 대공포나 36 티거 1의 56구경장 8,8cm KwK 36 전차포는 물론 판터에 주로 실린 70구경장 [[7,5cm KwK 42]] 전차포 계통으로도 IS-2 후기형의 포탑이나 차체 하단을 맞춰야만 정면에서 격파가 가능했으며, [[티거 II]]의 71구경장 [[8,8cm PaK 43|8,8cm KwK 43]] 전차포 계통 같은 괴물같은 대전차포들을 데려와야만 IS-2를 정면에서 쉽게 관통할 수 있었는데 당시 독일군에는 IS-2 후기형을 뚫을 만한 포를 탑재한 차량들의 생산량도 부족한데다 적지 않은 숫자의 해당 차량들이 서방 연합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서부전선으로 끌려가는 판이라[* 히틀러는 주력들을 서부로 보내 서방 연합군의 진격을 저지한 다음 전력을 다시 동부로 보내서 막는 사이에 서방과 강화할 시간이라도 벌려고 했고 그 결과 [[벌지 전투]]가 일어나게 되는데, 너무나 터무니없는 작전이라 벌지 전투는 독일군의 목표 달성 실패로 끝났고 독일군 전력을 더 빠르게 소모시켜 소련군의 베를린 진격 속도만 더 빨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동부전선의 지휘관들 입장에선 '''그냥 막을 방법이라는 게 없어지게 되었다.''' 후기형에 이르러서는 동부전선의 전황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셈이다. >0900시에 적이 신형 초중전차를 앞세워 공격해오자 티거가 소방수로 나섰다. ...(중략)... 티거는 스탈린 전차를 향해 먼저 선공을 가해 차체 전면에 정확하게 명중시켰으나 포탄은 튕겨나갔다. 우린 이전까지 8,8cm 포탄을 튕겨내는 차량을 본 적이 없었고 다들 당황했다. 적도 공격을 가해왔으나 사격은 부정확했고 포탄은 멀리 다른곳에 떨어졌다. 티거는 적 전차의 궤도를 향해 2탄을 날렸고 스탈린 전차의 궤도와 보기륜을 부쉈다. 움직임을 멈춘 전차의 전차병들이 해치를 열고 달아났다. (출저 : Operation Bagration 1944) >전차의 포수가 전방 1500m 거리에서 다가오는 적 전차 2대를 발견했다. 숲에 매복한 아군 4호 전차가 약 1200m 거리에서 초탄을 날렸다. 그 차량 2대는 152mm 돌격포[* SU-152 또는 ISU-152로 추정된다.]와 스탈린 초중전차였다. 돌격포는 금세 화염을 내뿜으며 주저앉았지만[* 경사각이 매우 얕은 75mm(SU-152)~90mm(ISU-152)의 전면 장갑을 가진 중돌격포라 4호 전차의 통상 사격에도 충분히 근거리에서 전면 격파를 당할 수 있었다.] 적의 초중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놈이 후진하는 것을 본 전차병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출저 Panzer IV 1939~1945 이러한 수기를 보면, 독일군은 IS-2를 중전차가 아닌, KV-1 중전차와 구분하기 위해 '''"[[초중전차]]"'''라고 호칭했던 모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