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HLKZ-TV (문단 편집) == 폐국 == 그렇게 TV 수상기 보급도 [[나름]]대로 늘어나고[* 그래봤자 하루에 약 3~5대 정도 판매되는 정도였지만 한국전쟁 이후 불과 10년이 지난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광고도 많아지면서 경영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는가 싶었으나...... 1959년 2월 3일 오전 1시 방송국 건물 2층 난방기에서 합선으로 인해 불이 나서 2~3층 전체를 불태웠다. 다행히 방송국이 보험에 들어서 부활(?)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으나 [[현실은 시궁창]]. 아무리 광고 수익이 있어도 아직은 빚이 많은 DBC의 임원들과 주주들이 그냥 보험금을 빚갚는데 쓰기로 한 것이다. 장기영 사장은 방송국이 재건되기를 원했지만, 어차피 텔레비전이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지라 텔레비전의 파급력이 미약했을때이니[* 참고로 1959년은 [[라디오]]가 TV 수준의 대접을 받던 시기였다.] 결국 주주의 뜻에 따랐다. 그나마 AFKN에 부탁해서 7시부터 30분동안 임시방송했는데 무광고로 내보냈으니 돈이 될리는 없었고, 결국 1961년 10월 15일 DBC 사장의 인사와 문화명화[* 문화명화라고하니까 예술 영화로 보이지만, 해당 영화는 그런 개념의 예술 영화와는 거리가 멀며 콘서트 촬영 영상이나 음악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녹화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TV가 별로 보급되지 않았던 1970년대 이전에는 국립영화제작소에서 현대의 [[예능 프로그램]] 촬영하듯이 콘서트나 재담을 촬영한 다음에 날잡아서 시골 순회 상영을 했다. 비록 TV용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TV 방송 영상이 빈약한 당대의 예능 프로그램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참고자료이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3wLInLTQ4Qg|무궁화 새로 피네]]'를 끝으로 5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운영권은 2개월 후인 1961년 12월 31일에 개국한 [[한국방송공사|국영 서울텔레비전방송국]](KBS-TV)으로 넘어갔고 본격적인 텔레비전 방송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여기에 소속된 직원들과 배우들은 새로 개국한 방송국으로 이적하였고, 일부는 KBS를 거쳐 [[동양방송]](TBC-TV)과 [[문화방송]](MBC-TV)의 개국과 함께 이적하였다. 이 방송사 출신의 방송인으로는 전술한 [[최창봉]](전 MBC 사장) 외에 김봉구 아나운서, 홍의연 PD(전 강릉MBC 사장), 오승룡[* 성우 [[오승룡]]과는 동명이인.] 엔지니어(전 KBS 시설국장), 신면식 카메라맨(전 MBC 영상미술국 영상제작위원), 배우 [[김영옥]] 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