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HD현대중공업 (문단 편집) == 역사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70's HHI.jpg|width=100%]]}}}|| ||<-2> '''{{{#fff 70년대 당시 선박 건조 중인 현대중공업 전경[* 現 1안벽]}}}''' || [[1968년]] 제2차 경제개발계획 기간 동안 [[박정희 정부]]는 제철, 기계, 화학, 조선을 4대 국책사업으로 설정하고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1970년]] [[현대건설]] 조선사업부가 발족된 후 [[1971년]]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이 처음에는 우방인 [[미국]]에 자금을 빌리러 갔으나 거절당했고 [[일본]] 역시 [[한국]]에서는 시장이 크게 성장치 못할 것이라며 거절당했다. 하지만 [[스페인]], [[프랑스]], [[영국]], [[서독]],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에서 돈을 빌려서 조선소를 건설할 수 있었으며, [[영국]] 애플도어 및 스코트리스고우 조선소와 기술/판매협조를 맺었다. [[1972년]]에 [[그리스]] 리바노스 사와 26만톤짜리 초대형 원유운반선 건조계약을 맺었고, 어촌 마을 경남 울산 미포만에서 첫 삽을 뜬 후 이듬해 선각공장을 준공하여 '현대조선중공업'으로 분사했으며, [[현대조선폭동사건]]이 일어난 [[1974년]]에 울산조선소 1, 2도크를 세워 리바노스사에 원유운반선 1호선을 인도하였다.[[https://youtu.be/gT3vSBJIfbM|당시 명명식을 다룬 대한뉴스]][* 이 1호 선박은 막상 인도시기가 다가오자 오일 쇼크가 발생하여 환율이 불리하게 되었고, 선박을 인도하지 않다가 고소를 당해 사건명 'The Atlantic Baron'으로 영국 법원에 기록되어 있다.][* 그 1호 선박은 이름을 2번 바꿨다가 1991년 [[앙골라]]에서 폭발, 침몰하였다.][* [[정주영]]의 자서전 등을 통해 전해진 무용담은 적당히 걸러들어야 한다. 일단 당시 울산이 작은 어촌마을 이라는건 틀린 이야기이다.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역으로 지정되고, 이후 유공이 설립되었고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이 1968년에 완공되는 등 울산의 공업단지화가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며,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방어진항과 장생포항이 일본의 어업포경기지로서 발전해 있었고 방어진철공조선소 등 기초적인 인프라는 구축되어 있었다. 기술자도 부산 영도의 일제시절부터 있었던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조선중공업을 통해 수급하였다. 최초의 유조선 수주도 정부의 보증이 있었다.] [[1975년]] 철구사업부를 신설한 후 처음으로 비조선 사업을 시작했고, 선박수리 담당업체 [[현대미포조선]]소도 세웠다. [[1977년]] 중전기사업부와 기관차사업부를 신설 후 엔진공장도 세우고, 이듬해 현대중공업으로 사명으로 개칭하고 기관차와 엔진, 중전기사업을 '현대차량[* 現 [[현대로템]]]', '현대엔진[* 現 엔진기계사업부]', '현대중전기[* 現 현대일렉트릭]'로 분사시켰다. 1980년 플랜트사업본부에서 원자력사업본부를 분리,발족하고 한국형 구축함 'FF-951 울산함'을 진수했으며, 국내 최초로 자동차운반선을 건조했다. 1981년 현대특수화학을 비롯해 1985년 현대해양개발, 1986년 현대종합제철, 1989년 현대엔진공업 등 관련 기업들을 각각 합병해 규모를 넓혔고, 1982년 정주영 그룹회장의 6남 정몽준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2세 경영을 시작했다. 1983년에 화공사업부를 빼내 방계기업 한국내화로 넘겼고, 1986년에 미국 드레서와 로자 등과 기술제휴를 맺어 이듬해 건설장비사업부를 발족했다. 1991년 잠수함 전문화업체로 선정된 후 1993년에 현대중전기, 현대중장비산업, 현대로보트산업, 현대철탑산업 등 4개사를 또 합병했고 1994년 장외시장에 등록되었다. 1995년 한국 제조업계 최초로 베트남에 가스파이프라인을 준공한 뒤 1996년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고 8,9도크가 속해있는 제2야드를 본격 가동해 선박 생산량을 늘렸고, 1998년 울산 현대 호랑이 프로축구단을 현대자동차로부터 넘겨받고 '현대예술관'을 세웠다. 1999년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기고 2000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을 계기로 2002년에 현대미포조선 등을 끌고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하여 정몽준을 중심으로 한 [[HD현대|현대중공업그룹]] 출범을 주도했다. 이후 조선업황의 호황으로 사세가 크게 확장됨에 따라 2005년 포항 블록공장[* 現 현대힘스 포항공장], 2006년 울산 용연공장[* 現 현대미포조선 용연공장], 2010년 군산조선소, 2011년 울산 온산공장[* 2018년 에쓰오일에 매각됨] 등의 사외 공장들이 가동되었다. 그러나 이 호황이 지나고 불황이 찾아왔고, 그룹 지배구조개편 작업에 들어감에 따라 2016년 비조선 사업부문 일부가 현대중공업 그린에너지, 현대중공업 MOS, 현대중공업 터보기계, 현대글로벌서비스 등으로 분사되는 것을 시작으로 2017년에는 1993년 이전처럼 조선(현대중공업), 로봇(현대로보틱스), 전기전자(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중장비(현대건설기계)로 사업부문이 분할되었다. 2018년 현대중공업지주가 설립되면서 그룹사 컨트롤타워가 변경되었고 2019년에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합병하기 위해 조선 사업부문의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이 설립되면서 현대중공업의 그룹 내 위상은 그룹의 중심에서 계열사로 격하되는 아픔을 겪는다. 2022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룹의 명칭에 HD가 들어감에 따라 현대중공업도 2023년 3월 '''HD현대중공업'''으로 변경되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767853?sid=10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