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G4M (문단 편집) === 전성기 === 개발사의 의도는 아주 잘 맞아떨어져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여느 연합군 전투기보다 더 높은 고도를 날 수 있는 기체였다. 그래서 요격이 어려웠으며, 일본 해군의 요구에 따라 초기 생산형은 4,000km의 항속거리, 후기 생산형은 6,000km에 달할 정도의 정신나간 항속거리로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란 곳까지 나타나 공격을 하면서 연합군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전임자 [[G3M]]과 함께 [[말레이 해전]]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으며, 실제로 미 항모전단도 몇번이나 뜬금없이 나타난 베티들에게 공격당한 적 있었다.[*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 역시 42년 2월에 베티 편대의 공격을 받았으나 다행히 전부 피하는 데 성공하고 되려 베티 1기를 격추하는 데 성공한 기록이 있고,(정보 출저 'Battle 360') [[렉싱턴급 항공모함|렉싱턴]]은 베티 편대에게 공격당했으나 역관광하고 미 해군 최초의 에이스를 만든 바 있다. 하지만 모든 함선이 그런 것은 아니라서 [[랭글리(항공모함)|랭글리]] 같은 경우엔 이 베티들에게 격침당하고 말았다.] 또한 숙련병들이 모는 베티가 지닌 정확한 뇌격능력으로 인해 연합군 선단의 피해가 막심했으며, 그 때문에 태평양에서 활동하는 연합군 선단에는 "베티를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가 있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베티의 활약에 노이로제가 걸린 연합군이 대규모 선단을 동원한 탈출 작전을 포기하면서 바탄 반도에 고립된 [[미군]]과 [[필리핀]]군은 결국 일본군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바탄 죽음의 행진]]을 비롯한 각종 학대에 시달리며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육상에서도 연합군의 주요 거점에 폭격을 가하며 [[육군]]의 진격을 도운 까닭에 초창기 동남아시아에서 [[일본군]]이 선전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하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