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ECFA (문단 편집) == 상세 == [[2008년]] [[마잉주]] [[대만 총통]]이 집권 이후 [[양안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에 [[자유무역협정]]을 제안한 것이 시초이다. 이에 중국 측이 협상에 응하여 [[2010년]] [[6월 29일]] [[충칭시]]에서, 중국과 대만 대표들이 최종 합의에 이른 [[자유무역협정]]이다. 이후 양안간 비준절차를 거쳐서 [[2011년]] [[1월]]부터 발효되었다. ECFA의 발효로 [[마잉주]] [[대만 총통]]은 Chiwan(China + Taiwan)시대가 열렸다고 [[프로파간다|선전]]하기도 했다[[http://economy.hankooki.com/lpage/worldecono/200906/e2009061217252569740.htm|기사]]. [[범람연맹|범람]]의 정체성대로라면 당연히 Chiwan이 아닌 China([[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여야 하는데, 이는 마잉주 총통이 Chiwan 드립을 치면서 [[범록연맹]] 쪽에 대한 ECFA 비준동의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뭐 범록은 끝내 반대했지만. [[파일:JCjDCl9.jpg]] [[파일:aCo3whz.jpg]] [[2010년]] [[6월 29일]] [[중국]] [[충칭시]]에서 이루어진 ECFA 서명식 모습. 양측 협상대표는 대만 해협교류기금회(약칭 해기회)의 장빙쿤 이사장(왼쪽),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약칭 해협회) 회장 천윈린(오른쪽).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양안관계]]의 특성상, 정부 당국이 아닌 명목상 민간 재단의 형태를 띈 해협회와 해기회가 정부 위임을 받아 협상을 진행했다. [[파일:ecfa2.jpg]] ECFA 찬반쟁점 (대만의 입장에서). * 1. 경제 (장점): 중국 시장 선점, 타국 기업들보다 중국 업체와의 제휴 유리, 중국과의 산업 연계 및 공조 강화,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경제 거점(허브)으로서 대만의 위상 강화 (단점): 중국 외 국가와의 FTA 확대로의 효과 보장 없음, 소수 대기업만이 직접적 혜택을 볼 우려, 저가 중국제품의 대만 유입 확대로 인한 경제적 손실(예: 실업률 증가) * 2. 정치 (장점): 중국과의 양안 교류 활성화, 정치적 평화 촉진 (단점): 대만의 주권 및 자주성 훼손,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 심화로 향후 정치, 외교 부문 협상에 취약점으로 작용할 우려 [[파일:EyxXKqG.jpg]] [[파일:5o2eCWf.jpg]] [youtube(dm8WvGnNoeg)] [[2010년]] ECFA 토론회 영상(1번). [[마잉주]] [[대만 총통]]과 [[차이잉원]] [[민진당(대만)|민진당]] [[주석(직위)|주석]]의 1:1 [[텔레비전]]토론이다. 토론이 길어져서 14개로 나누어진 버전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m8WvGnNoeg&list=PL957E0231FA9FA84E|이 링크]]로 가면 1~14번 전부 다 볼 수 있다. [[파일:WvTiQ1E.jpg]] [youtube(0HdI0IEDnvA)] [youtube(iLaC_sKZZ7s)] 이 비준과정에서 [[대만]] [[입법원]]에서 [[국회 공성전]]이 벌어지고, [[민주진보당]] [[국회의원|입법위원]]들과 [[차이잉원]] [[주석(직위)|주석]](대표) 등은 열렬하게 반대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5&aid=0000185104|한국에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2&aid=0000305973|보도됐다]]. 이 와중에 위에서처럼 [[마잉주]] [[대만 총통]]과 [[차이잉원]] [[주석(직위)|주석]] 간 1:1 [[텔레비전]] [[토론]]을 하기도 했다. ECFA를 통해 [[대만]] [[대만/경제|경제]]가 [[중국]] [[중국/경제|경제]]에 종속이 심해지고 이는 결국 중국에 대만이 먹히는 [[하나의 중국]]의 완성이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파일:PAF20100818001301008_P2.jpg]] [[파일:PAF20100818002301008_P2.jpg]] 결국 저 [[국회 공성전]]날에는 처리가 안 되고 1달 정도 있다가 --역시나-- [[기습]]적으로 강행처리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611090|기사]] [[2011년]] 발효된 ECFA는 우선 800여개 항목에서 FA(Framework Agreement)를 통해 먼저 선개방을 하고 나머지 부분은 차후 논의하는 것이다. 이에 이 ECFA가 발효된 이후에도 대만과 중국 [[양안]] [[정부]]는 계속해서 [[무역]]협정 확대를 추진하였으며, 이에 [[2013년]] ECFA를 [[상품]] 분야에서는 거의 대부분 항목으로 확대하고 [[서비스업]]과 [[노동]]시장에서도 [[양안관계]]를 개선하여 서로 더욱 개방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리하여 [[2013년]] ECFA 서비스협정이 성사됐는데... [[파일:attachment/2014032000755_1.jpg]] [[파일:2014-03-21 12.01.53.jpg]] 이 협정이 [[입법원]]에 비준동의안이 올라간 [[2014년]], [[대만]]의 [[대학생]]들이 이 조약을 반대하며 [[입법원]]을 점거하는 [[해바라기 운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양안 경제개방, 통합이 상품 부문을 넘어 서비스 부문까지 확대 적용될 경우, 중국 본토의 저가 노동력이 대만 노동시장에 직접 진출하여 대만 내부의 일자리까지 중국에게 장악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대만 청년층 내에서 광범위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https://www.posri.re.kr/issue/download_ajax/file_id/6641|링크]] 이 때문에 난리가 벌어지다가 결국 국민당에서 양안협의감동조례 초안이 완성되어 입법되기 전에는 비준을 추진하지 않기로 약속하여 비준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으며, 2016년에 정권까지 [[민주진보당]]으로 넘어간 후에는 더 이상 진척이 없는 상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