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Deutschlandlied (문단 편집) == 역사 == || [youtube(mBmCcSz6HWw)] || || [[요제프 하이든]] 현악4중주 제62번 "황제" 2악장 || 원곡은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프란츠 2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성된 송시에 붙인 일종의 [[황제 찬가]]였고, 제목도 [[영국]] 국가와 비슷하게 '[[야훼|하느님]], 프란츠 황제를 보호하소서(Gott erhalte Franz den Kaiser)'였다. 참고로 이 곡도 시대에 따라서 가사가 몇 번 개정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에서의 이 곡의 쓰임은 '오스트리아에서의 사용' 문단으로. 이곡은 1797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의 황실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찬가이자 국가로 사용되었다. 당시 독일은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고,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신성 로마 제국 제위를 세습했기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의 국가 역시 같은 음악이 사용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의 압력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이 무너졌고, 나폴레옹 전쟁 직후 신성 로마 제국을 대신하여 [[독일 연방]](Deutscher Bund, German Confederation)이 창설되었다. 독일 연방의 수장은 오스트리아 황제가 다시 맡게 되었고, 국가 역시 똑같이 이 음악이 계속 사용되었다. 1841년 독일의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호프만 폰 팔러슬레벤(August Heinrich Hoffmann von Fallersleben)이 이곡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독일인의 노래(Das Lied der Deutschen)"라 제목을 붙였다. 한창 [[독일 통일]]이 거론되던 시점에 오스트리아 황제를 찬양하는 가사 대신 독일 통일의 열망을 담은 가사를 지어 붙인 것이다. 이후 독일의 통일 운동이 거세지며 이곡 또한 민중 사이에서 애창되었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보오전쟁]] 이후 [[프로이센 왕국]] 주도로 [[북독일 연방]]이 결성되면서 독일 연방은 사실상 해체되었고, 하이든의 이 곡 역시 전(全) 독일 국가로서의 역할이 끝났다. 1866년 이후 독일은 개별 왕국 및 공국의 국가가 각기 별도로 사용되었고, 이 곡은 오스트리아에서만 국가(황실 찬가)로서 계속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라,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지막 황태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장례 미사|장례 미사]]에서도 제창되었다.] 1871년 프로이센 주도로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독일 제국]]이 세워졌다. 이 시절에도 공식 국가는 아니었지만 영국 국가 가사를 [[독일어]]로 번안하고 일부 수정한 가사를 붙인 '그대에게 승리의 왕관을([[Heil dir im Siegerkranz]])'라는 제목의 황실 찬가로서 주로 제창되었다. 그래서 [[독일 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이 곡이 등장한다. 아울러 독일 대중들 사이에서는 기존의 폰 팔러슬레벤 가사에 의한 '독일인의 노래'로서 여전히 널리 애창되었다. 즉 당시 독일에서 일종의 [[애국가요]](Patriotic Song)였던 셈. [[대한민국]]의 [[아리랑]]같은 제 2의 [[국가(노래)|국가]] 수준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대놓고 국가라고 하는 건 고증오류. 영화 [[북경의 55일]]에 독일 제국 국가를 연주한답시고 독일의 노래를 연주하는 부분이 있다. 사실은 [[Heil dir im Siegerkranz]]를 불러야 고증에 맞으며 독일의 노래는 오스트리아 국가의 선율이었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 국가를 연주할 때 [[산의 나라, 강의 나라]]를 연주해야 하는 셈이다(...).] 다만 독일인의 노래가 독일제국의 공식 의전에서 쓰여지기 시작한것은 1890년 헬골란트-잔지바르 조약 이후의 일부터였는데 헬골틴트 섬에서 이 독일인의 노래를 부르는것이 적절해보인다고 해서 이때부터 불러졌고, 1차 세계대전때에도 독일제국군에서 널리 애창되던 노래 중 하나였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패망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자, 오스트리아 공화국 정부는 황실을 찬양하는 가사를 가진 이 곡 대신 다른 곡으로 국가를 바꾸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도 제정이 무너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는데,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는 오스트리아가 기존 국가를 다른 곡으로 바꾸자 오스트리아 정부의 양해를 구하고 하이든의 곡을 바탕으로 한 "독일의 노래(Deutschlandlied)"를 공식 국가로 채택했다. 이후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며 [[일당 독재]] 체제가 되었는데, 나치는 기존 국가인 '독일의 노래' 1절을 먼저 제창한 후 이어 나치당가였던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부르도록 하면서 공동 국가화했다.[* 두 곡이 워낙 달라 자연스럽다는 느낌은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패망 후 독일이 동쪽 영토를 대거 상실하게 되면서 '독일의 노래' 1절 가사 내용의 상당수가 독일 영토가 아니게 되었다. 때문에 [[연합군 점령하 독일|연합군 군정 기간]] 동안에는 독일 민요를 바탕으로 한 '[[나는 헌신했도다]](Ich hab' mich ergeben)'[* 한국에서는 '어여쁜 장미'라는 독일 민요로, [[개신교]]인에게는 찬송가 57장(새찬송가에서는 43장) '즐겁게 안식할 날'로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 19세기에 이 곡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우리들은 새 교사를 세웠다(Wir hatten gebauet ein stattliches Haus)'라는 학도가로 개사되어 당시 대학생들에게 애창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요하네스 브람스|브람스]]의 대학 축전 서곡에서도 여타 학생가들과 함께 인용되었다. 현재 이 곡의 멜로디는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국가에서도 사용되고 있다.]라는 노래를 임시 국가로 쓰기도 했다. 한편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다시 독일에서 분리 독립하면서 유서 깊은 하이든 곡의 국가를 포기하고 1946년 모차르트 등의 선율을 이용한 [[산의 나라, 강의 나라|새로운 국가]]를 채택했다. 서독 정부와 독일인들은 하이든이 작곡한 기존 곡을 계속 국가로 사용하고 싶어했으나, 시대에 맞지 않게 된 1, 2절 가사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일단 독일이 양차 세계 대전에 계속 패배하면서 영토를 많이 잃게 되어 1절 가사의 지명 상당수가 현재는 [[프랑스]]나 [[폴란드]] 등 타국의 영토가 되어 버렸다. 2절 또한 현대 기준으로 보면 남성 우월주의적 요소가 있는데데가, 와인을 대놓고 권하는 권주적인 내용도 들어가있다보니 [[카니발]]이면 몰라도 공식석상에서 써먹기에는 품위가 없었다. 이 가사 문제로 한동안 채택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가 1952년 1, 2절을 아예 없애고 문제의 소지가 없는 3절만을 가지고 공식 국가로 재지정하게 되었다.[* 2차대전 후 독일 국가의 연주는 예전보다 더 템포(빠르기)를 느리게 하고, 원곡(G)보다 2키를 낮춰 연주(E♭)해 장엄함을 더한다.] 따라서 독일 국가행사나 FIFA 월드컵 같은 국제행사에서는 공식적으로 지정된 3절만 부른다. 반면 [[동독]]은 1949년 아예 새로운 국가를 작사, 작곡하여 [[폐허에서 부활하여]]를 국가로 썼다.[* 이 노래도 현재 부를 일이 있을 때는 '인민의 적' 운운하는 지라 논란의 소지가 있는 2절을 빼고 부른다.] || [youtube(Gu6-jlHchP4)] || || 1990년 10월 3일 새벽 베를린 국가의사당(Reichstag)에서 거행된 [[독일 재통일]] 기념식에서 제창된 '독일의 노래' || 1990년 동서독이 통일한 뒤 새로운 국가지정에 관한 논란이 오가기도 했지만, 결국 흡수통일의 주체였던 서독이 사용하던 '독일인의 노래'가 국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독일인의 노래'야말로 19세기부터 널리 사용된 독일의 역사적인 노래이자 국가였기 때문에 동독 시민들도 대체로 별다른 불만이나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