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CR.32 (문단 편집) == 기본 구조 == CR.32는 1932년에 공개된 피아트 CR.30을 설계한 '''셀레스티노 로사텔리'''가 한번 더 다듬어낸 기체였다. 중량을 줄이고 양력 중심을 더욱 합리적으로 개선한 동체가 특징이며, 구식티가 줄줄 흐르는 목제 2엽 [[프로펠러]]는 개발사인 피아트에서 생산한 600마력짜리 피아트 A.30에 의해 구동되었다. 무장은 [[엔진]] 카울링 아래에 2정의 7.7mm 또는 12.7mm [[M1919 브라우닝#브레다-사파트|브레다-SAFAT]] [[기관총]]을 장비했다. 등장 무렵만으로 따지면 이 무장은 표준이었지만 실전에서 이 [[전투기]]가 맞닥뜨린 금속제 단엽 전투기들은 이 정도 경무장으로 격추시키기란 쉽지 않아 강화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수 상단에 프로펠러와 동조되는 12.7mm 중기관총을 덧달거나, 하단 날개에 7.7mm 기총을 2정 더하는 개조가 시행되었다. [[파일:CR32.jpg]] 피아트 CR.32는 귀도니아 비행센터에서 시험 비행을 했을때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과 민첩한 기동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에 만족한 이탈리아 항공성의 심사단은 의무 테스트 기간이 끝나는 즉시 주력 전투기로 채용했고, 이탈리아 왕립 공군에는 1939년 5월까지 무장이 강화된 CR.32bis가 배치되기 시작했으며, 곧이어 더욱 개량된 CR.32tris와 CR.32quarter가 차례로 1,052대나 납품되었다. 아주 의아한 이야기지만, 그 무렵 이탈리아 조종사들 사이에서 이 복엽 전투기는 조종성이 좋은데다 기체 구조도 견고하다며 썩 좋은 평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수출 시장에서도 뜻밖에 반응이 좋아서 1933년에는 [[중화민국]]에서 16대를 주문받았고, 이 기체들은 나중에 [[중일 전쟁]]이 터지며 [[일본군]]이 침공해왔을 때 맞서 싸우게 된다. 전투 초기에는 더러 일본기를 떨구는 전과도 올렸지만, 차례로 일본 전투기들에게 격추되어 1937년 12월에 [[난징]]이 함락되었을때 CR.32는 한 대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실 이 전투기는 1930년대 기준이라면 결코 나쁜 전투기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우수한 편이었다. 1930년대는 독일도 [[He 51]], 소련도 [[I-15]] 같은 복엽기를 사용했고 Cr. 32는 이들 전투기 상대로는 밀리지 않는 편이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이탈리아군 최고 에이스인 호아킨 가르시아 모라토는 Cr. 32에 탑승해 한번도 격추되지 않고 적기를 36기나 격추하는 등 큰 활약을 했다. 오히려 스페인 내전에서 너무 활약하는 바람에 이탈리아군이 복엽기도 아직 쓸만하다는 크나큰 오판을 하게되어 차세대 전투기로 시대착오적인 [[CR. 42]]가 채택된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르헨티나]] 공군과 [[파라과이]] 공군, [[베네수엘라]] 공군도 이 늘씬한 복엽 전투기가 마음에 든다면서 거금을 주고 구입한 나라들이다. 그 외에도 우방인 [[독일]]에도 넘겨진 기체가 있었는데, [[루프트바페]]는 얼마 안가 이 기체들을 [[추축국]]인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 선심을 쓰듯 양도해주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