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CJ (문단 편집) == 역사 == [[6.25 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 호암 [[이병철]]이 [[경상남도]] [[부산광역시|부산시]] [[전포동]][* 현재의 [[부산진구]] [[전포동]]. 구제 실시는 설립 이후인 1957년에 이루어졌다.]에 제일제당을 설립하였다. 원래 공장 부지에는 논밭과 고무공장, 경찰 피복창고 등이 있었으며, 고무공장은 화재로 소실됐다. 전범성이 지은 <실록기업소설: 이병철>에 따르면 해당 부지는 이동희가 소유하고 있었다. 원 소유주 이동희는 고집이 세서 어느 누구에게 팔아주지 않았으나 이병철의 사람 됨됨이를 알아주고 매각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로써는 첨단 기술이던 철골로 만들어진 공장에 일본에서 최신식 설비들을 도입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이 공장은 2006년까지 존재했으나 공장이 경남 양산으로 이전한 이후에 완전히 철거되고 현재는 [[포스코더샵]] 센트럴스타가 들어서 있다. 공장이 철거되던 무렵에 공장 건물 뿐만 아니라 한때 이병철 회장의 집무실로 이용되던 백설관 같은 역사적 가치가 상당했던 건물도 같이 철거되면서 아쉬움을 주기도 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2&aid=0000117887|#]][[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30612.22006191901|당시의 위용]] 이 때부터 국내 최초의 [[설탕]] 가루 생산을 시도하게 되었지만, 기계에 이상이 생겼는지 설탕 가루는커녕 시커먼 액체만 추출되어서 기대하던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다가 기계의 결함이 아니라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과다하게 집어넣었다는 용접공의 말을 들은 이병철이 원료를 줄이고 다시 기계를 돌리자 그제서야 제대로 된 하얀 설탕 가루가 추출되었고 이는 한국산 설탕이 처음으로 탄생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 날이 [[1953년]] [[11월 5일]]이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병철은 1953년 11월 5일을 창립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최초의 한국산 설탕가루의 생산으로 휴전 직후였지만 오랫동안 수입설탕에 의존해 왔던 [[대한민국]]의 식생활 개선을 주도하여 높은 매출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 때 생산된 설탕의 상표가 그 유명한 [[백설#s-2]]로, 또한 이 때 설립한 제일제당 공장이 삼성이 처음 손댄 제조업 분야였다. 삼성이 굴지의 제조업체로 거듭나는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후 백설이라는 브랜드로 설탕이나 밀가루를 주력으로 했다가 1963년 조미료 '미풍'을 만드는 원형산업을 만들어 [[대상그룹|미원]][* 공교롭게도 이 회사 또한 제일제당처럼 부산에서 설립되었는데 [[부산진구]]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동래구]](현 연제구) [[거제동]]에 공장이 있었었다.]에 도전장을 냈다. 이후 '[[조미료 전쟁]]'이라 하는 오랜 싸움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이병철은 미원을 이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전부 실패로 돌아갔고, 그래서 당시 이병철 회장의 소원이 미원을 꺾는 것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이병철은 <호암자전>에서 "세상에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 3가지 있는데, 자식[* 후술되는 내용이지만 이병철은 장남 [[이맹희]], 차남 이창희와 상당한 불화를 겪게 된다.]과 골프, 미풍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후 와신상담하여 쇠고기향이 나는 조미료인 '''[[다시다]]'''를 만들어 1980년대에 천연조미료 시장에서 미원을 따라잡아 역전했다. 이후 1982년 '인터페론'을 개발해 의약품 시장에 진출했고, 1987년에 제일냉동식품을 세웠다. 반면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이 후계자를 삼남인 [[이건희]]로 지목하자 원래 후계자였던 [[이맹희]]는 대신 제일제당을 물려받게 되었다.[* 승계 과정이 조금 복잡하다. 이병철은 이재현과 그의 어머니(이맹희의 부인)에게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의 주식을 증여했고 차후 안국화재와 제일제당의 주식을 교환하면서 제일제당의 회장이 된 것이다.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이병철은 장남, 차남과 사실상 의절했으나, 이재현과 이재현의 어머니는 이재현이 장손이라는 이유로 이병철과 본가에서 계속 함께 살았고 조부인 이병철로부터 후계자 교육까지 받았다. 대부분 제일제당에서 일을 했고 제일제당을 인수하게 된 이유가 된다.] 이재현은 1983년 [[시티은행]]에 입사했다. 아버지 이맹희가 할아버지 이병철과 의절한 상태라 상속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으로 술회했다. 하지만 이병철은 이재현을 불러 "나의 장손이 남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1985년 9월 제일제당에 입사시켰다. 이 때 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이 장남 이맹희 몫으로 분리한 것으로 간주된다. 1987년에 이병철이 세상을 떠나고 2세대 경영이 본격화되자 제일제당은 1993년부터 삼성에서 정식으로 계열분리하여 결별하고 따로 살림을 차리게 된다. [[파일:1L5CHG5QPQ_7.jpg]] [[파일:2577DF3355B33AD90B.png]] 독립 후 1995년에 선훈건설을 인수해 사업다각화를 처음 시도했고, 1996년 5월 1일부로 그룹 출범과 동시에 ''''C'''HEIL'''J'''EDANG'이란 영문 대문자에 위에는 빨간색, 아래에는 청색 로고로 바꾸어 식품산업을 기반으로 바이오/생명공학 분야까지 사업분야를 확장했으며, 다른 한편 1995년 [[미국]]의 영화 및 애니메이션 제작사 [[드림웍스]] 설립 출자를 계기로 엔터테인먼트에 처음 관심을 가진 후 제일제당 산하에 영화사업본부를 신설했고, 1996년에 별도법인 '제이콤'을 세워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도했으며 홍콩 골든브릿지와 합작해 '씨제이골든브릿지'를 세웠다. 특히 해당 과업을 주도한 이미경 현 부회장은 오늘날 충무로의 큰 손이 되어 영화산업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어느 정도냐면 이미경 생일파티에 어지간한 유명인사 및 연예계 인사들이 참석할 정도.] 전국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멀티플렉스인 [[CGV]]도 CJ 계열이고, 또한 상영관 뿐만 아니라 CJ는 [[CJ ENM 영화사업본부|CJ ENM MOVIE]](C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직접 대다수 영화를 배급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연예계에 대한 영향력을 필두로 1997년 케이블TV PP업체인 [[뮤직네트워크]]를 인수해 방송, 연예사업에 진출했고, 2000년 삼구로부터 양천넷을 39쇼핑과 세트로 인수한 걸 시초로 전국의 각종 케이블망 사업은 물론 각종 케이블 방송을 대다수 인수하여 또한 수많은 방송 컨텐츠를 직접 제공하고 있다. 케이블 방송 사업에서 CJ의 유일한 대항마였던 오리온그룹의 온미디어가 CJ에 팔리고 나서는 사실상 케이블 방송에서 잘 나간다는 채널들은 거의 다 CJ 계열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 2002년 10월 17일부터 창사 50주년을 1년여 앞두고 그룹명을 "CJ"로 바꾸는데, 이는 제일제당의 영문 스펠링에서 따온 것이다. 이와 동시에 로고가 빨강, 노랑, 파랑으로 교체되었다.[* 종전 로고색인 빨강, 파랑에 노랑색이 추가되었다.] 2007년에 CJ(주)에서 식품 사업 부문을 'CJ제일제당'으로 떼내 지주회사로 전환시켰다. 더욱이 한류 열풍이 시작되자 케이블 최대 음악 방송인 [[엠넷]][* 1995년 개국하고 1997년부터 제일제당에 인수되어 본격적으로 성장하였다.]을 필두로 아예 음원 공급 시장에 투자하여 현재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대중음악 절반 정도의 저작권은 CJ에게 있다. 이러한 영향력을 필두로 MAMA(Mnet Asian Music Awards)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등 대중음악시장에서의 영향력 또한 크게 넓히고 있다. 아예 자체적으로 소속 가수를 가지기 위해 엠넷미디어를 통해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코어콘텐츠미디어]]의 계열분리를 통해 매니지먼트 사업 규모가 줄어들었다가[* 2010년 당시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이효리]]의 매니지먼트를 맡기는 했다.] 2013년 ~~[[정준영]]~~을 시작으로 [[연진]], [[로이킴]], [[다비치]], [[SG워너비]]와 계약을 했다. 또한 거대 게임회사인 넷마블을 운영하는 등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의 영향력만큼은 모기업이었던 삼성이 부럽지 않다. 2011년에는 아예 이러한 문화콘텐츠 분야 계열사들을 한데 뭉쳐 [[CJ E&M]]을 출범시켰다. 이는 실로 대한민국 문화산업계의 공룡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현(기업인)|이재현]]의 아들 [[이선호(1990)|이선호]]가 2013년에 입사해서 경영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2017년 말부터 대대적인 그룹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2017년 12월 말에는 제일제당과 대한통운(+CJ건설)의 합병을 결의하여 CJ 주식회사-제일제당-대한통운(+건설)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함과 동시에 지주사의 제일제당 지배력을 강화하였고, 그렇게 풍문으로만 나돌았던 CJ헬스케어(제약+음료)의 매각을 개시했다. 2018년 들어서는 CJ오쇼핑과 CJ E&M의 합병을 추진하고, CJ헬로의 매각도 추진했다. CJ헬로의 매각은 인수협상 대상자로 알려진 LG유플러스와 CJ오쇼핑이 서로 엇갈린 대답을 내놨지만, 결국 CJ헬로는 2019년 [[LG유플러스]]로 매각되고 만다. 2018년 11월에는 [[미국]]의 대형 식품업체인 '슈완스'를 '''2조원에 인수'''하면서 미국 전역에 걸친 식품 생산·유통 인프라 및 연구·개발(R&D)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8914252|CJ제일제당, 美 대형 식품업체 슈완스 2조원에 인수]] 한때는 인수금액 때문에 [[승자의 저주]]가 아니냐는 우려도 많았지만 현재는 2021년 1분기 CJ제일제당의 해외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슈완스가 책임지면서 그런 우려가 사라진 상황이다.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051073921|'슈완스의 저주' 푼 CJ제일제당…분기 영업이익 '역대 최대']] 2022년 8월 17일 CJ제일제당은 슈완스와 미국식품사업 법인 CJ Foods USA(이하 CJFU)를 통합 이를 통해 CJ제일제당의 슈완스 지분율을 기존 70%에서 75.5%로 확대하였다. [[https://www.bloter.net/newsView/blt202208170019|북미 사업 통합 CJ제일제당, 슈완스 지배력 70%→75.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