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B-29 (문단 편집) == 특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mfKiVg.jpg|width=100%]]}}} || || '''하늘을 날아다니는 공중요새 B-29''' 뒤에서 날아오는 꼬꼬마 전투기들은 [[호위기]]인 [[P-51 머스탱]]이다. 이 사진은 전쟁 후반기에 미군 전투기들이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해 비행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장거리 항법장치와 레이더가 없는 P-51을 [[공중조기경보기|B-29가 일본까지 유도하면]] P-51들이 [[공습|신나게 깽판을 치고]] 출격한 일본군 요격기들도 갈아버린 다음 다시 B-29와 합류해서 귀환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B-29는 각 기체마다 항법장치와 항법사가 있었기 때문에 폭격 작전 외에도 전투기들의 공습 지원, 태평양에서의 구조임무 같은 길잡이 역할도 담당했다. || 보잉 B-29 슈퍼 포트리스는 당시 기술의 정수~~와 돈의 결정체~~라고 불릴 정도의 '''최첨단 폭격기'''였다. 우선 가장 큰 특징중 하나로서 B-29는 고고도 작전을 위해 가렛 에어리서치(Garrett AiResearch)사에서 만든 '''여압이 되는 승무원실과 조종석'''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보통의 항공기들은 항공기 내부에서 승무원들이 활동하였고, 당연히 이는 밀폐된 공간이 아니였다. 유럽 전선의 [[B-17]]만 해도 전기열선 내장 내복(1940년대 이런 기술을... 천조국이 괜히 천조국이 아니다)에 두꺼운 항공 점퍼와 방탄복을 입고도 꽁꽁 얼어가면서 비행하였으며, 사수 포탑에선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었고 폭탄창을 열기만 해도 그곳으로 차가운 바람이 쌩쌩 들어왔다. 산소가 부족한 고고도에서 밀폐가 되지 않으니 승무원들은 가뜩이나 춥고 힘든데 무거운 산소 탱크까지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뭣 같았던 자리는 다름아닌 하부 포탑 자리였다. 다른곳은 그나마 공간이 어느정도 있고 활동도 가능해 조금이라도 옷을 더 껴입거나 움직일수 있었지만 하부 볼 포탑은 들어가기에도 꽉차는 자리였던지라 옷을 더 껴입는것은 생각도 못했고 심지어 자리의 절반은 방탄유리 나부랭이에 나머지반은 냉기를 뿜어대는 알류미늄 금속이었다.(금속이 내뿜는 냉기가 어떤지 일상생활에서 느끼자면 영하의 기온에 지상에 차를 세워두고 해뜨기전 새벽에 차안에 앉으면 뼈까지 전해지는 냉기에 욕이 절로 나온다. 그나마 자동차는 이런저런 내장제가 달라붙어있지만 볼포탑은 그딴거는 없다) 그러나 B-29는 보잉이 B-17의 민수형으로 승객실에 여압실을 채용했던 [[보잉 307]]을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여압실을 갖춘 항공기로 설계되었다. 여압 캐빈을 탑재한 항공기들은 보잉 307을 포함해 JU86P도 존재했지만, B-29는 처음부터 여압 캐빈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는 것이 특별한 점이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29_pressurized_parts.jpg|width=100%]]}}} || || B-29에서 여압 처리가 된 부분. || B-29에서는 항공기관사가 온도와 산소를 조절해주었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그냥 적당히 근무복 정도만 입고도 작전이 가능했다. 일본은 전쟁 말기에 이 모습을 가지고 '미국도 물자가 궁핍해서, 비행복도 안 입히고 비행기에 태운다.'는 식으로 [[북한|자국 국민들에게 선전]]했다고 한다. 물론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G_573824731.gif|width=100%]]}}} || || B-29의 콕핏.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조종석 등 뒤에 방탄 장갑판이 설치되어 있다.[* 당시엔 요격기의 기총과 대공포 등이 폭격기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했기 때문에 이런 방탄 처리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B-17]]의 경우 B-29보다 방탄판이 훨씬 많았으며 포좌 사수들은 방탄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싸웠다. 허나 B-29부터는 요격기와 대공포가 폭격기에 큰 위협을 가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B-29 기체 자체가 내탄성이 우수한데다, B-29가 매우 높이 날아다녔고(대개 3만 피트), 아주 빨랐으며(시속 570 km), 일본의 대공 방어 능력이 열악했기 때문이다(손실된 414대의 B-29 중 일본군에게 격추된 것은 147대에 불과했을 정도다. 나머지는 고장이나 사고로 손실되었다). 때문에 B-29는 설계부터 방탄판을 적게 실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그나마도 떼어내고 그만큼 폭탄을 더 싣고 이륙했다.] || 폭격기는 여객기와 다르게 동체 한가운데에 폭탄창이 있으므로 조종석과 승무원 공간[* 리모콘 포탑을 조작하는 사수들과 추가의 통신병이 이 부분에 탑승하며, 조작 부분 뒤에는 승무원들을 위한 휴식용 '''침대'''까지 달려 있었다. 다른 폭격기나 심지어 B-17조차 상상도 못할 부분.]에 여압 탱크를 따로 설치하고 그 사이에 있는 폭탄창 위로 파이프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계하였다. 이 파이프는 엔진으로부터 연결된 배관으로 산소를 데워서 공급하는 기능도 겸했고, 환풍구이자 승무원들이 조종석과 승무원 공간으로 이동할수 있는 통로 역할도 하기도 했다. 물론 통행을 하려면 이 파이프를 엎드려 가야 했었지만 폭탄창에 달려있는 좁은 통로를 두꺼운 항공 점퍼와 방탄조끼를 입고 산소탱크를 주렁주렁 달며 가는 것 보다는 그냥 편한 옷 입고 엎드려 가는게 훨씬 편한 일이었기에 문제로 지적되지는 않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G_123454729.gif|width=100%]]}}} || || 기체 중심부(주익 기부)에 위치한 폭탄창(Bomb Bay) 위로 길게 뻗은 파이프(Air Duct")가 여압 공조 덕트이자 조종석과 승무원 공간을 잇는 통로이다. 보다시피 꽤 길다. 이 통로는 안쪽은 두꺼운 보온성 섬유로 마감처리하거나 기어다니기 편하라고 수건 여러장을 덧대기도 하였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G_34564730.jpg|width=100%]]}}} || || 주익 뒷부분에 위치한 승무원실. 침대와 변기가 있다. 열악해 보이지만 당시 이렇게 환경이 좋은 폭격기는 없었다. 상부 기관포 사수좌와 양현(좌우현) 기관포 사수좌도 볼 수 있으며(둥근 방탄유리 돔으로 덮인 부분), 중앙 상부 2연장 .50구경[*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즉 포탑이 아니라 총탑이라 부를 수도 있다.] 포탑도 보인다. 이 포탑 외에도 포탑이 3개 더 있으며(상부 2, 하부 2) 후미에는 2연장 .50 기관총에 20mm 기관포까지 달린 후미 포좌가 따로 있었다. || 당연히 항공기 동체를 만들어 놓고 끝나는 다른 항공기들과 다르게 여압이 될 정도로 튼튼한 동체를 만들어야 했고 또 조종석과 승무원실 벌크헤드 2개, 이를 연결하는 파이프까지 만들어야 했기에 다른 폭격기들과 비교해서 생산과정이 복잡했다. 이런 복잡한 기술을 대량 생산되는 폭격기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넘볼수 없는 영역이였다. 이렇게 객실 여압이 되면서 3만 피트를 비행하는 대형 항공기를 몇천 대나 만들어 본 경험은 결국, 보잉의 [[보잉 707|민수용 제트 여객기 사업]]에 [[코메트 여객기 추락 사고|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다만 이런 파이프로 연결되는 여압캐빈은 [[B-36]] 이후 폭격기엔 적용이 되진 않았다. 폭격기에 기총 사수들이 없어져 후미에 승무원들을 태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 B-29가 생산되었던 워싱턴 주의 랜튼 공장은 보잉 707기에 이어 보잉 727, 737의 생산공장으로서 수만 대의 항공기를 뽑아냈고 2023년 현재까지도 [[보잉 737]]의 최종 조립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B-29는 '''중앙제어식 리모콘 포탑'''을 채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압 캐빈을 채용하면서 틈새가 있는 일반 선회 기총좌나 사람이 들어가는 터렛이나 볼 터렛을 넣을 수 없었기에 채용된 것인데, 사수가 잠망경으로 보고 쏘는 일반적인 리모콘 포탑과 다르게 B-29는 상단 포탑 2기와 하단 포탑 2기를 각각 한 사람식 맡아 한꺼번에 조종이 되는 방식의 중앙제어 체제 방식을 채택하였고, 또 이를 제어하는데 '''[[컴퓨터]]'''가 사용되었다. [[제네럴 일렉트릭]] 사의 중앙 화력제어 시스템(General Electric Central Fire Control System)으로 물론 현대 기준으로 보면 그냥 [[계산기]]에 가깝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것이었다.[* 컴퓨터란 이름 자체가 계산하는 기계를 의미하고 [[탄도학|본래의 개발 목적]]을 안다면 당연한 것이긴 하다. 대전 중반을 넘어서면서 도크에 들어갔다 나온 미군함들 역시 레이더+사격통제계산기와 연동되는 전동식 대공포 마운트를 채용했다. 나중에 그걸 공여받은 [[대한민국 해군]]은 쓸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파일:b29computer.png|width=100%]] B-29의 컴퓨터는 사수가 조준기의 조준점을 타겟에 맞추고 조준점 밖의 원 둘래를 적기 날개에 맞추면 적기의 거리와 속도, 고도에 따른 대기밀도, 기온과 항공기의 속도, 중력, 탄도를 모두 계산하여 터렛의 실제 사격 위치를 맞춰주는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3만피트에서 250마일로 비행하는 B-29에서 발사된 총알은 약 36피트 정도 엇나가게 되며, 50구경 총알은 800야드 거리에서 14피트 가까이 하강한다. 여기에 적기의 속도가 400마일로 계산된다면 수평 110야드, 수직 14피트(4.6야드) 리드를 두고 사격하게 터렛을 조준시키는 식이다. 또 기체 전면의 사수가 화력통제관 역할을 하여 기체에 설치된 5개의 터렛 중 어떤 터렛이 어떤 사수의 조준경을 따라갈지 정할 수 있었다. [[파일:IMG_1356904792.jpg|width=50%]] 당시 B-29의 기총 사수들에게 지급되었던 매뉴얼의 표지. 미 육군은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맞는 컴퓨터총이라고 자랑했으며 이는 심한 과장이 아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G_234524732.gif|width=100%]]}}} || || B-29의 후미 부분. 요격기를 공격하기 위한 후미 포대가 보인다. 50구경 기관총 2문과 20mm 기관포 1문이 장착되어 있다. 이 기관포는 무게 때문에 초기형에만 장착되었으며, 나중으로 갈수록 B-29의 기총과 방탄판은 쓸데없다고 판단되어 제거되고 그만큼 연료나 폭탄을 더 싣게 된다. 요격/대공 방어 수단이 쓸모 없다는 것은 성능이나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B-29를 상대할 일본군의 대공 방어망이나 요격기들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의미이다. 후미 부분은 총좌만 여압 처리가 되어 있고 나머지 승무원 구역과 연결된 공간은 여압 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 고공 비행 중에는 이동이 불가능했는데, 이 때문에 유사시 측면 사수가 후미 터렛도 사격할 수 있도록 사통 시스템이 연결되어 있었다. 실제로 B-29 전투 보고서를 보면 기체 중앙부 터렛보다 후미 터렛이 격추한 적기가 더 많았기 때문에[* 일본 전투기들은 낮에는 폭격기 전방에서, 밤에는 후방에서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후미 터렛의 존재 가치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 원래 [[B-17]] 및 [[B-24]] 등에 달린 폭격기 선회기총좌는 각각 한 사람씩 달라붙어야 하고, 조준과 리드는 기총수의 감에 맡겨야 하는데다 허리 기총좌는 뚫린 큼지막한 구멍으로 찬 바람이 휭휭 달려들고,[* 이런 방식의 허리 기총좌들을 가진 미군 폭격기들의 후기 생산형들의 경우 총안구를 뚫은 방풍창으로 이 구멍을 막는 개선이 이뤄졌지만 총안구나 여타 틈새로 외부 공기가 들어왔으므로 바람만 좀 덜 들이친다 정도로 그쳤다. 사실 볼 터렛이나 상부 터렛도 움직여야 하는 구조 때문에 틈새 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건 마찬가지였다.] 동체 하방의 볼 터렛이나 상방의 선회기총좌는 그 큼지막한 크기 때문에 항력을 발생시키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이것이 B-29에 와서 사수들이 중앙에서 각 터렛을 제어할 수 있는 중앙제어식 터렛으로 발전, 조준장치의 도움을 받는 사수가 다수의 터렛을 동시에 제어하여 하나의 목표에 집중포화를 퍼부을 수 있도록 개량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 터렛 자체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항력이 줄어드는 부수 효과를 낳았고, 또 사수들이 노출되거나 방탄 유리로 보호받는 다른 포탑들과 달리 사수들은 훨씬 두껍고 강철로 된 폭격기 동체 안에서 의자에 앉아 편한 자세로 조준을 하게 되니 사수들의 생존성이 증가하는 효과도 있었다. [youtube(nskFayhBcy0)] [youtube(xJNsvWRpBiE)] 또 B-29는 비행성능도 좋았다. 많은 포탑과 여압실 때문에 무겁고 커진 덩치, 그리고 수많은 폭탄을 탑재될 폭격기였음에도 불구하고 3만 피트가 넘는 최대고도, 5,000km가 넘어가는 작전행동반경, 덤으로 최대속도가 570km/h, 순항속도 350km/h 등등, 2차 대전에 실전 투입된 중(重)폭격기들 중에서는 최고의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미국만이 보유한 원시적인 레이더 연동 대공포를 제외한 타국의 대공포로는 요격이 거의 불가능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right_Cyclone_GR_3350_1.jpg|width=100%]] 이러한 성능의 핵심에는 출력이 2200마력(1640kW)에 달하는''' Wright R-3350 Duplex-Cyclone''' 18기통 공랭식 [[성형엔진]]이 있었다. 이 갓 만들어진 엔진은 다른 엔진들보다 출력이 컸고 크기도 작은 편에 [[마그네슘]]을 대거 사용해 가볍다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게 4기가 장착되었으며 엔진 자체 출력으로나, 합산으로나 당대의 폭격기 중에서는 최강이었다. 또한 이 4기의 엔진들은 커다란 [[제네럴 일렉트릭]] 사의 트윈차저[* 터보차저와 슈퍼차저를 합쳐 만든 이중 과급기.]가 달려 있어서 고고도에서도 엄청난 성능을 내주었다. 일본은 B-17D를 노획하여 거기에서 나온 터보차저를 복제하려 들었지만, 고온과 고압을 견디는 동시에 고속으로 회전하는 터빈을 만들기에는 당시 일본이 가진 합금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시대가 지나 제트기의 시대가 오면서 이런 터보-슈퍼차저들은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터빈 만드는데 일가견이 생긴 제네럴 일렉트릭은 제트엔진 터빈을 만드는 일에 활용하며 지금도 꾸준히 제트엔진을 만들고 있다.] 보통 항공기들은 엔진의 쓰로틀과 흡입구 압력을 조절해가며 터보차저 회전 속도까지 조절해 주는 것이 번거롭고 어려운 조작이기도 했고, [[P-38]]처럼 조작을 잘못하는 순간 터보 슈퍼차저와 엔진과의 불균형이 일어나 엔진을 꺼뜨리는 사고도 발생할 수 있었는데, 엔진이 4기나 되는 B-29라면 신경쓸 것이 너무 많아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B-29는 전자 제어식 터보 슈퍼차저 시스템을 갖추어 조종사가 쓰로틀 아래에 달려 있는 다이얼만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자동으로 조절되었고, 심지어 조종사가 급격한 쓰로틀 조작을 할 경우 [[ECU|터보가 과속하는 걸 막고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장치]]까지 있었다. 이러한 트윈차저와 더불어 [[NACA]]에서 풍동실험을 거쳐가며 설계된 공기 역학적인 엔진 나셀과 더불어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엔진이 폭격기에 속력과 성능을 크게 올려줄 것이라 기대되었다. 그러나 이 엔진은 폭격기에 본격적으로 장착되기 전부터 냉각이 잘 안되는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풍동 실험을 거치며 엔진 흡입구 형상을 좀 더 공기가 잘 모여들게 다듬고 속도를 위해 장착된 커다란 프로펠러 스피너를 삭제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엔진 자체가 성능 대비 작게 만들기 위해 부품들을 꽉꽉 넣고 가볍게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마그네슘]] 합금을 사용하는 바람에 엔진이 과열되기도 쉽고 과열되면 바로 불타오르는 일이 잦았다. 시제기도 비행 테스트 도중 위의 문제로 추락했다. 급히 엔진 커버를 더 잘라내 엔진에 더 많은 공기가 들어가도록 개량이 이루어졌지만 미봉책에 불과해서 B-29의 [[항공기관사]]들은 항상 엔진 온도에 신경을 써야 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B-29의 개발이 지연되었으며, 보잉도 개발이 급한 걸 알았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에 액랭식 B-29 연구를 시작하게 되나 이쪽은 트윈차저를 다는 게 문제가 커서 개발에 난항을 겪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 본토 폭격을 위한 B-29를 하루라도 빨리 납품받아야 했기에 보잉이 고민하게 기다릴 여유가 없었고, 그냥 그 엔진이라도 달아서 납품하도록 하고 엔진의 내구도는 '''75시간마다 엔진을 [[돈지랄|교체하는 것으로]] [[쇼미더머니(동음이의어)|해결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75시간마다 교체한다고 해서 엔진을 정말로 75시간 정도만 쓰고 재활용 쓰레기로 녹여버리지는 않았다. B-29의 엔진 정비 주기는 매 25시간마다 실린더 분해정비, 매 75시간마다 [[오버홀|전체 분해정비]]를 거치고 그렇게 정비를 완료한 엔진은 다시 B-29에 장착시켰다. 물론 아무리 정비해서 다시 쓴다고는 해도 이런 장거리 폭격기의 엔진을 고작 75시간밖에 연속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건 10회도 출격 못하고 엔진을 계속 들어내야 한다는 이야기이니 엄청난 부담이긴 하다. 아무리 [[F4U 콜세어]]의 R-2800 더블 와스프 엔진이 내구성이 좋았다지만 오버홀주기(TBO)가 3천시간이었는데....[* 독일의 [[He 177]]은 엔진의 부적절한 설계로 인하여 뜨거운 배기가스가 빠져나오는 곳으로 윤활유가 떨어져서 화재의 위험이 매우 컸고 이후 아예 엔진을 교체해서 이 문제를 완화시키지만 근본적인 냉각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전후 영국의 [[롤스로이스]] 기술진이 이 설계를 보고 경악해서 [[다임러-벤츠]]에서 설계를 이렇게 했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아무리 경제력이 넘치는 미국이라 해도 고출력 엔진 4기를 수시로 갈아줘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지만 초장거리 폭격이 가능한 유일한 기체다보니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정비반에게는 여러므로 악몽이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B-29는 [[WEP|전시 비상 동력]]을 2분 정도 사용 할수 있었는데, 이걸 사용했으면 안 그래도 안 좋은 엔진을 더 무리 준거였으니 정비반 입장에선 훨씬 끔찍한 악몽이였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티거 1]]마냥 B-29를 정비하기 위해 대규모의 정비반을 동원했으며 엔진 실린더 조율사 같은 전문적인(?) 직책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미국은 이미 2,000마력의 출력을 자랑하는 프랫&휘트니 R-2800 더블 와스프 엔진을 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사실 R-2800을 듀플렉스-사이클론 R-3350와 비교하면 출력이 200마력 떨어지기는 해도 더 가벼워서 추중비는 약간 더 좋지만 유럽전선에서 P-47, [[F6F]], [[F4U]], [[B-26]], [[PV-1]], [[C-46]]에 의해 43년이 돼서야 검증되었으며, 또 B-29 설계 시점에 이미 많은 기체에 공급이 예정되어 있어 물량이 충분할지도 확신이 없고 B-29 자체 또한 트윈차저 설계[* 트윈차저는 터보차저 배관과 인터쿨러까지 달아야 하기에 엔진 나셀이나 동체 설계를 완전히 바꿔야 했다. P-47 동체가 정면에서 보면 아래가 좀 튀어 나와 있고 B-29 자체도 엔진 나셀이 B-17과 다르게 계란형이 되어 있는 까닭이다. 또한 트윈차저를 달은 P-38은 이런 이유 때문에 후기형까지 앨리슨 엔진을 고집하게 된다.][* 사실 기체 설계를 거기 맞춰서 고치면 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설계 변경을 하여 R-2800을 넣은다 한들 거기에 따라오는 이득이 없었거나 오히려 더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능이나 수급문제를 떠나 애초에 결전병기의 성격 + 신기술 투입의 예외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미국이 전시 체제에 돌입하고 국방비가 대폭 증가하면서 전시 특수로 탄생한 신무기 체계의 연구 개발, 양산에 성과가 컸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의 체계도 대거 활용하여 비용절감과 조기생산을 위한 노력도 어마했다.]가 이미 R-3350에다 맞춰저 있었고, 떨어지는 200마력 또한 4기의 엔진을 단다는것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였기에 아예 반려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 보잉도 훗날 더블 와스프의 개량형인 와스프 메이저를 장착한 B-50을 제작한걸 생각하면 생각을 안 했던건 아닌데 후술할 XB-39에서 나오듯이 그냥 처음에 비슷한 공랭인 R-2800 대신 완전히 다른 수랭 앨리슨 V-3420을 사용하는 게 낫지 않겠나 하고 결론 짓게 된거라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보잉도 이 엔진 문제를 어떻게 해볼려고 [[B-17]]에 액냉식 앨리슨 엔진을 넣은 [[XB-38]] 사례처럼 B-29에 터보 슈퍼차처를 장착한 P-38, P-39, P-40에 넣었던 앨리슨 엔진을 [[He 177|2개로 합친]] 24기통 W형 V-3420-11 앨리슨 수랭 엔진을 달은 XB-39를 테스트를 시도했다. 다행히 사고가 있어서 영 좋지 못했던 XB-38과는 달리 XB-39는 성공적으로 시험 비행이 끝이 났으나, 문제는 수랭식 엔진에 과급기를 넣는 조화가 영 좋지 못했던 미군답게 수랭식 엔진에 트윈차저를 다는 것도 문제가 생겨서 계속 지연이 되었으며, 사실 테스트 또한 트윈차저 없이 진행이 된 것이였다. 이 트윈차저 문제는 결국 R-3350을 장착한 B-29가 1944년 전투에 투입될 때조차도 해결이 안되어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결말로 이어진다.[* 보잉은 어떻게든 엔진을 바꿔 볼려고 이후 R-4360 와스프 메이저를 탑재한 B-29를 XB-44란 이름으로 실험하게 되고 이는 꽤나 성공적이여서 B-29D, [[B-50]]라는 이름으로 채용이 된다.][* 라이트 듀플렉스 사이클론 엔진은 [[B-32]] 또한 애먹이게 만들기도 했으며 옆동네 [[록히드 컨스털레이션]] 또한 과열로 고생시켜먹었다.] 방어력도 꽤나 신경 써서 상당히 튼튼했던 기종이기도 하다. 당시 7.7 mm 기총은 이미 2차대전 초기에 일찌감치 화력부족 판정을 받고 주요 참전국의 전투기 무장에서 제외되었으나, B-29의 상대였던 일본의 경우 전쟁 초기의 주력기들을 제때 대체하지 못하는 통에 계속 유지하고 있었고,[* 물론 주무장으로는 일단 20 mm 기관포를 달아주기는 했다.] B-29는 미국제 기종답게 맷집도 좋아서 7.7mm 기총 따위는 그냥 씹어버리고, 20mm 기관포에 대한 내탄능력도 우수했다[* 안에 여압이 되는 튼튼한 캐빈이 있어서 이게 맷집을 좋게 만들었다는 소리도 있다.]. 여압 캐빈은 0.5인치(12.7mm) 두께의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되었다. 개발 당시에 주요 부위에는 12.7mm 중기관총도 모자라 20mm [[기관포]]를 쏴가면서 테스트했고, 테스트 막바지에는 아예 연료에 모의폭탄까지 꽉꽉 채워넣은 전투중량의 B-29를 크레인으로 들었다 떨어뜨리는 식으로 기체의 강도를 측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해상에 불시착했던 B-29 한 대는 기체가 부러지기는 커녕 온전하게 착수했고 오히려 여압장치 때문에 부력이 유지되었는지 그냥 해안가로 떠밀려왔다고 한다. 또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B-29는 미군이 만들었던 가장 진보된 [[오토파일럿]]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기존의 자동 조종 장치는 직선 및 수평 비행을 유지하는 데에 그쳤지만 '''C-1'''이라고 불리는 이 오토 파일럿 장치는 바람이라든지 비행 편차가 발생하면, 즉시 이를 감지하고 편차까지 수정하는 기능까지 있었다. 그 덕에 B-29는 [[트림#s-2.1|거의 완벽하게 수평, 수직을 유지하면서]] 비행할 수가 있었다. 이런저런 난점과 그 극복을 위해 시도한 여러가지 조치로 인해, B-29의 개발과 운용 전체에 든 비용은 [[원자폭탄]] 만드는 데 든 돈보다 많다는 소리도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20억 달러 정도 소요됐는데 B-29는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아직 완성도 안 된 개발 단계에서 미 육군 항공대가 B-29 1,600대를 선주문을 때려버렸다. 이때 미 육군 항공대의 요청액이 10억 달러였는데, 개발과 실전배치, 양산 과정에서 비용이 불어나서 최종 약 30억 달러 남짓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때 단일 프로젝트에 가장 큰 돈을 때려박았던 게 이 계획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