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KIRA(1988)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파일:attachment/AKIRA/b8.jpg]] 1991년 1월 12일, 아키라는 한국에서 《폭풍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개봉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져 있지 않아 일본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개봉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수입사 측의 꼼수로 같은 이름의 홍콩 작품으로 둔갑되어 '''불법 상영'''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사실 당시 법률상으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극장 개봉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문화 개방 이전에는 그 것이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었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불법행위는 일본 작품을 홍콩 작품으로 속인 것이다.] 그 당시 수입사는 배우 [[백일섭]]이 운영하던 솔필름이라는 곳이었다. 솔필름 측에서는 1990년, 이 작품을 홍콩작품으로 속인채 심의 요청을 했고, 그 결과 이듬해에는 극장 개봉까지 가능해졌다. 거기에 신문과 TV에 광고까지 크게 실리고 거리에도 포스터가 붙여지는 등 대대적인 홍보도 이루어졌다. 개봉관은 서울 잠원동 뉴코아 백화점의 뉴코아 문화센터와 인천 희망 백화점 등이었다. 상영시간은 85분으로 원판에서 40여 분이나 잘려나갔으며, 당시 이를 관람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어 더빙이 이루어졌으나 더빙은 물론 화면과 사운드 등을 비롯해 전반적인 품질이 매우 조악했고[* 어떤 이들은 성우의 음색을 듣고 80년대 반공 시리즈물인 "[[배달의 기수]]"에나 들리던 목소리를 연상하기도 했다고 하니 말 다했다. 필름 또한 불법 복사된 것일 가능성이 높으니 결코 고화질은 아니었을 것이다.] 테츠오의 이름을 도창호라 번역하는 등의 로컬라이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키라는 아킬라라고 아키라 비슷하게 부른다. [[https://m.blog.naver.com/lkj429/50140391548?view=img_7|어두운의 지구의 미래를 구원할 아킬라가 온다]] 당시 편법 상영으로 방영했지만 원본은 영화였기에 '''중학생 이상 관람가''', 즉 [[12세 관람가]]로 개봉되었다. 하지만, 당시 국딩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하드코어한 작품이었다. 관람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관총에 난사당한 시신에서 피가 철철 세어나오는 장면이나 괴물로 변한 테츠오에게 카오리가 압사당하는 등의 잔혹한 장면들이 여과없이 그대로 상영되었다. 때문에 영화를 보러 간 아이들은 살인이나 성폭행, 고어, 종말 등의 장면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결국 극장은 영화의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긴 커녕 무섭고 잔인한 장면 때문에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난리통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 개봉관 안에는 낚여서 영화를 보러 온 아이와 학부모도 많았지만, 이미 아키라를 알고 있다가 극장 개봉 소식에 후다닥 달려온 대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아마도 수입사 측에서 러닝 타임을 줄인 것은 딱히 검열 때문이라기 보다 단순히 상영 횟수를 늘리려는 수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던 학부모들이 거센 항의를 했고,[* 영화가 예상과는 달리 너무 잔혹해서 중간 중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부모들이 많았는데, 특히 카오리의 옷이 찢어지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결국 솔필름이 심의를 받을 당시 이 작품을 홍콩 애니메이션으로 거짓 보고해서 심의를 통과했다는 사실까지 들통났다. 이 때문에 폭풍소년은 개봉한지 몇 일만에 간판을 내려야 했고, 솔필름 또한 큰 타격을 입어 영화사 등록이 취소되었다. 당시 솔필름 측과 짜고 명의를 빌려주어서 불법 행위를 도와주었던 홍콩 영화사 또한 자사 영화의 한국 수출이 금지되었다. 2017년, 폭풍소년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지 장장 27여 년 만에 아키라는 정식으로 한국에서 개봉되었다. 2017년 8월, 메가박스에서 독점으로 정식 개봉하였는데 당연하겠지만 정상적인 심의를 거쳐 이루어진 개봉인 만큼 이번에는 15세 이용가 등급을 받았다. [[1991년]] 최초 개봉 당시의 자료는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서울 관객 6,750명으로 나와있다.[* 정식으로 수입하여 개봉한 것이 아닌 수입사가 재편집한 것을 홍콩 영화인 것처럼 속여 개봉했다 발각되어 상영이 중단된 것이기 때문에 상영 중지 직전 관객 수까지만 표기된 것.] [[2017년]] [[8월 30일]] 재개봉 성적은 10,574명, 매출액 86,224,200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