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9단8묘 (문단 편집) == 역사 == [[1420년]] [[영락제]]가 [[자금성]] 서남부에 사직단(社稷坛)을, 베이징 성 [[정양문]](正阳门) 동남부에 천지일월의 4신을 섬기는 제단인 [[천단|천지단]](天地坛)과 기곡단(祈谷坛)을, 서남부에 [[베이징고대건축박물관|산천단]](山川坛)을 건설하면서 역사에 등장했다. 이후 [[가정제]]가 이 질서를 다시 확립하여 [[1522년]]에 [[베이하이공원|베이하이]] 내부에 선잠단(先蚕坛)을 건설하였고, 1530년 천지단의 제단 중 환구단을 제외한 나머지를 뜯어서 조양문(朝阳门) 밖에 [[조일단]](朝日坛)을, 부성문(阜成门) 밖에 [[석월단]](夕月坛)을, 안정문(安定门) 밖에 [[방택단]](方澤坛)을 건설하고 천지단을 [[천단]]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산천단을 선농단(先农坛)으로 바꾸고 선농단 안에 태세단(太岁坛)을 건축하면서 비로소 9개 제단체제가 완성되었다. 8묘는 [[1302년]] [[성종(원)|원 성종]]시기 도성 북부에 공묘(孔庙)를 건축하면서 시작되었다. [[1373년]] 명나라 [[홍무제]]가 [[난징]]에 [[역대제왕묘]](历代帝王庙)를 건축하였고, 1420년 자금성 동남부에 태묘(太庙)가 건축되었다. 이후 [[1530년]] [[가정제]]가 역대제왕묘를 [[베이징]]으로 옮김을 제외하면 국가 차원에서 사당을 짓지 않았다. [[청나라]] 시기에 [[1636년]] [[숭덕제]]가 만주족 사당인 당자(堂子)를 새로 지음을 시작으로 [[1651년]]과 [[1657년]] [[순치제]]가 자금성 내부에 각각 전심전(传心殿)과 봉선전(奉先殿), [[1661년]] 현재 경산공원에 해당되는 자금성 후원 부분에 수황전(寿皇殿)을 지었고, [[1744년]] [[건륭제]]가 [[옹정제]]의 별저였던 별궁을 [[티베트 불교]] 사찰인 옹화궁(雍和宫)으로 개조하면서 비로소 8묘 체제가 완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