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6세대 (문단 편집) === 사교육과 능력주의 전파 === >'''386 운동권이 사교육 시장을 장악했다. 사회를 변혁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학원 장사를 해 떼돈을 번다. 이들이 사교육 시장을 키운 주범이다.''' >---- >2006년 김진경 당시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 이 사람은 운동권 출신인 데다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대치동을 만든 세대'''로 요약할 수 있다. ~~~지옥 같은 대치동 입시학원~~~ 대수능뿐 아니라 공무원 시험, 전문대학원 입학시험, 임용시험 등에서도 '''[[메가스터디]]''' 등 '''386세대가 만든 학원이 모두 장악'''했다. 그나마 수능은 매해 매스컴에서라도 언급하지만 현재 이들 시험은 더 심각한 상황에서도 아무도 언급해 주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1980년대 5공 정권의 과외금지 조치는 이들에게 양날의 칼이었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과외금지로 인해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대학에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와서는 저 조치 때문에 학비를 조달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사라진 꼴이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서비스업이 발달하지 못해서 과외를 하지 않는다면 택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는 공장, 노가다 등 뿐이었는데 공장의 경우 [[운동권]]의 [[위장취업]]으로 오해받아 쫓겨날 위험이 높았으며, 지금보다 소득수준이 훨씬 낮고 [[최저임금]] 개념도 없던 시절에 공장이나 노가다로 받는 박봉으로는 학비 조달이 어려웠다. 1980년대에 막노동이 고수입 직종이었다는 낭설이 퍼져 있는데, 노가다 임금이 급격히 상승한 것은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르면서 3D직종 기피 풍조가 가속화된 1990년대의 이야기이지, 적어도 1980년대 중반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이후 1980년대 후반 민주화 투쟁으로 ‘전면적 과외 금지’를 몰아붙인 신군부는 1987년 ‘6·10항쟁’ 이후 사실상 힘을 잃었다.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던 1970~80년대 학번 대학생들은 ‘투쟁’을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1989년 교육민주화 운동을 하다 교단을 떠나게 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교사’들과 더불어 수많은 고학력자가 별다른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사회에 진출했다. 이런 현상과 맞물려서, 1992년 9월 서울시내 중고교 재학생의 학원 수강이 전면 허용되었다. 사교육 업계가 조금씩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 움직임에 힘을 실어준 건 1993년 처음 치러진 수능이다. 기존의 암기식 학력고사와 달리 수능은 학생의 사고력, 논리력, 비판 능력 등을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 대학 시절 고전과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토론과 세미나를 반복한 운동권 출신에게 최적화된 입시 시스템이었다. 게다가 논술 전형 또한 신설됐다. 교육 당국의 잇단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는 논술의 영향력을 점점 강화했다. 동아일보는 1990년 5월 22일자에서 ‘전교조 해직교사는 1500여 명이며, 상당수가 서점·문방구·출판사 경영, 학원강사, 번역업 등에 종사한다’고 보도했다. 일반적 직장생활이 어려운 이들의 호구지책 중 하나가 학원강사였던 셈이다. 너무 많아 여기에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메가스터디]]’를 창업한 [[손주은]]이 대표적이다.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을 역임한 [[황광우]](서울대 77학번)씨는 플라톤청솔학원에서 논술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황씨가 지은 <진리는 나의 빛> <황씨 아저씨네 논술 서리>는 논술교재로 유명한 책이다. 도시형 대안학교 '이우'의 교장인 정광필(서울대 78학번)씨도 플라톤청솔학원에서 논술 강의를 했다. 또한 [[한석원/생애]]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그 또한 [[손주은]], [[이범]], [[이현(강사)|이현]], [[김찬휘]], [[정지웅(영어)|정지웅]] 등과 함께 운동권 1세대 강사이다. 또한 그는 2004년 김찬휘, 한석원은 같은 운동권 동료이자 역시 영어학원을 운영하던 [[최인호(영어 강사)|최인호]]를 끌어들여 '[[티치미]]'를 공동 설립, [[메가스터디]]를 요망한 장사치라고 깐 내용은 아직도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르몽드 코리아>의 대표이사인 박승흡(서울대 1980학번)씨는 국어교사 출신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논술강사를 시작했다. [[이현(강사)|이현]]씨 또한 중학교 윤리강사로 재직하다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뒤 대표적 사교육 업계인 [[스카이에듀]]를 만들었다. 전대협 2기 출신인 조동기(고려대 1985학번)씨는 강남 대일학원에서 국어과목으로 스타강사 대열에 들어선 이후 1997년말 대치역에 '조동기국어논술학원'을 열어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핵심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현재는 전국에 19개 분원을 마련하고 올해 매출목표를 400억원으로 잡고 있다. 서울 [[강동구]]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청산학원을 이끄는 쌍두마차인 최원극(외국어대 1984학번)씨와 박영재(서울대 1984학번)씨는 주체사상쪽 조직이던 자주민주통일(자민통) 소속으로 골수 운동권이었다. 1991년 속셈학원 수준으로 출발한 청산학원은 과학고, 민족사관고, 외국어고 전문학원으로 성장해 매출 100억원대의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논술과 구술 면접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고 22개 분원을 두고 있는 유레카논술아카데미의 대표강사 장민성(서울대 1981학번), 박홍순(성균관대 1982학번)씨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계로 분류된다. 박홍순씨는 민주노동당 중앙당 기획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에는 [[구로구 갑]]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노원구에 있는 학림학원의 채광석(성균관대 1987학번)씨는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으로 운동권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학림학원에는 성균관대 운동권 출신들이 강사로 다수 포진하고 있다. 초암논술아카데미 대표강사인 이윤호, 송재인씨도 1980년대 초반 학번으로 운동권 출신들이다. 과학탐구 영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연봉18억원을 기록한 [[이범]]([[서울대]] 1988학번)씨도 좌파 운동권의 이론을 제공했던 <학회평론>의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학원 사업을 하다가 정치권으로 진출한 경우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건국대]] 산업공학 85학번)의원과 열린민주당 [[정봉주]]([[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1980학번)의원은 길잡이학원과 외대어학원을 운영하다가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경우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44855|#]] 사실 단순히 먹고 살 것이 없어서 뛰어들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사교육의 중심이 된 건 운동권 출신 강사들의 남다른 ‘전략’ 덕분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하루에 6일씩 학교에 다니던 2005년, 정부가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쉬는 ‘놀토’ 정책을 내놓자 대치동 학원가엔 바로 ‘토요 집중반’ 프로그램이 생겼다. 명절 기간에 집중적으로 국영수를 파고드는 이른바 ‘명절 특강’을 만든 것도 대치동이었다. 사교육 전문가로 거듭난 386들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못잖게 부지런하고, 열정적이며, 공격적이었다. 정부가 학생들을 공부 부담에서 해방시키고자 '''입시 전형에서 ‘비교과’ 평가 비율을 높이자 대치동은 즉시 최고 수준의 비교과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대치동을 한국 사교육의 메카로 만든 386 강사들은 이제 대치동의 주류가 아니긴 하다. 50세를 훌쩍 넘기면서, 상당수가 은퇴했거나 새로운 인생 항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사교육 전문가들은 대치동의 명성을 흔들림 없이 공고화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