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00(영화) (문단 편집) === 2일차 === [[국제연맹]]에서 온 사절단이 창고 위 상공에 비행선을 띄워 전투를 관망했고 동시에 강 건너 조계지의 중국인들과 외국인 기자들이 전투를 관전했다.[* 이에 사절단은 마치 이들이 무슨 유희거리 보듯 전투를 본다고 비아냥댄다.] 일본군은 창고 내 폭약 때문에 야포를 사용하지 못하는 대신 굴착기로 창고를 허물려 했지만 상기됐듯 넘치는게 폭약인 창고에서 수류탄과 함께 이용해 굴착기를 터뜨린다. 이에 일본군 보병들은 철판을 방패삼아 둘러싸 창고 벽에 폭약을 설치하려 한다. 철로 된 방패가 방호 효과를 거두면서 중국군들은 패닉에 빠진다. 어떻게든 철판 안으로 폭발물을 집어 넣어야 했던 중국군 병사들은 수류탄을 몸에 칭칭 감고 철판 안으로 떨어져 일본군과 함께 폭사하는 자살 공격을 감행한다. 처음 자살 공격을 한 중국군 병사는 편지 하나를 어머니께 전달해 달라고 상사에 부탁한 뒤 경례와 함께 일본군과 폭사한다. 다른 병사들도 수류탄을 꽁꽁 묶은 채 자기의 고향과 이름,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등 마지막 유언을 외치며 희생한다.[* 단순히 [[자폭]]하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도 희생하겠다고 줄을 서서 한명씩 땅바닥으로 몸을 내던지며 자폭한다.] 강 건너 조계지에서 전투를 보던 중국인들은 이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게 된다.[* 조계지의 한 중국인은 "모든 중국인이 이들처럼 용감했다면 일본은 감히 중국을 넘보지 못했을텐데."라는 말을 한다. 관객들의 관람평이나 유튜브 댓글에서도 슬프다는 반응이 압도적.] 3시간 내로 창고를 점거하겠다던 일본군은 공격이 실패해 국제연맹 사절단 앞에서 수모를 당한다. 한편 창고는 의약품과 식량 등이 부족해졌지만 조계지 내 중국인들이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두르고[* 나치 독일은 당시 일본 제국의 우방이였기 때문에 일본군은 독일인이나 독일 국기에 위해를 가할 수 없었다. 똑같은 뉘앙스로 영화 [[욘 라베|존 라베]]에서도 독일 국기로 중국인들이 일본군의 폭격을 피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강 건너로 가 필요물품을 제공했고 민간인 여럿이 희생해 전화선까지 두게된다. 이때 셰진위안 중령과 인터뷰에서 창고 내 중국군의 숫자가 '''팔백''' 이라 알려진다.[* 실제로는 사행창고 전투 개시 때 432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창고 내 장병들을 위한 물품이 당시 상하이 걸스카우트 였던 양후이민(杨惠敏: 1915-1992)[* 실존인물로 후에 [[국부천대]]를 따라갔고 대만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본 일화도 실화였고 후에 대만의 도덕교과서에 수록된다.]에게 기부될 때 대형 [[청천백일만지홍기]]가 전달되었고 양후이민은 강을 헤엄쳐 건너가 깃발을 셰진위안 중령에게 전달한다.[* 본 영화에서는 상체에 국기를 두르고 그 위에 옷을 입어 국기를 가린 후 사행창고에서 웃옷을 벗어 국기를 전달하는 묘사가 등장하지만, 1976년에 대만에서 나온 같은 소재의 영화인 <팔백장사>에서는 국기를 담은 가방을 메고 창고로 들어온 후 국기를 가방에서 꺼내서 전달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국기를 받은 중국군 장병들은 의기가 넘쳤지만 일본군 항모가 상하이에 있는 상태에서 국기게양은 조금 꺼려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다음 날 강행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