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8운동 (문단 편집) === 보수주의자들의 평가 === 보수파에게 ‘68년 5월’은 바로 ‘무질서와 파괴’의 끔찍한 악몽으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경우 과거 68년 5월을 도덕과 권위, 국가 정체성 위기의 근원으로서 청산돼야 할 유산으로 지목한 적도 있었다. 영국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도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 차를 불태우던 젊은이들은 책임감이 없었다”며 “도덕과 정신의 재앙이었다”고 평가했다. 사실 68운동 이전의 프랑스 사회 분위기는 '''[[세속주의]]를 추구하되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일명 '모랄 라이크(morale laïque)'[* 1960년대 초반까지의 프랑스 초등교육 역시 이러한 방침을 따르고 있었다.]라는 형태를 따르고 있었으나 68운동 이후로는 이러한 최소한의 윤리 수준마저 무너졌다는 것이 '보수적 정교분리자'들의 견해이다. 당시의 과격했던 68운동은 68운동 자체가 태동할 수 있는 배경과 보호막을 제공했던 온건 [[자유주의]]자(liberal)를 공격해 타격을 줌으로서 커다란 공백을 만들고, 그 뒤 [[신좌파]]의 과격함에 질린 사람들이 가져온 반동과 함께 그 빈자리를 [[신보수주의]]가 메우게 되었다는 보수적 관점의 접근을 시도한 로버트 니스벳 같은 학자의 설명도 있다.[[http://sonnet.egloos.com/4154533|#]] 즉, 달리 보자면 68운동은 잠재적 아군이었던 [[리버럴]]의 무덤임과 동시에 [[네오콘]]의 요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를 부추겨 80년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지적과 함께 히피와 [[마약]] 문화만을 남겼다는 냉소도 없지 않다. 실업과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프랑스의 현 젊은이들에게 68세대가 보보스(BOBOSㆍ부르주아 보헤미안)라는 허울뿐인 자유주의자로 비쳐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80년대 히피 문화에게 치명타를 날린 [[여피]] 문화를 본격적으로 널리 퍼뜨린 장본인도 유명한 히피 운동가 제리 루빈이었다.] [[위르겐 하버마스]]나 [[마루야마 마사오(1914)|마루야마 마사오]]같은 온건 리버럴 성향 지식인들도 68운동의 과격성을 매우 비판했다. 68운동에는 명확한 비전도 기반도 없었기 때문에 비판받기도 한다. 일례로 미국의 도시 빈민 운동가 [[사울 알린스키]]는 "그들은 사회를 바꾸는 데엔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일과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다만 사울 알린스키도 신좌파로 분류되긴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폭로(revelation)일 뿐 혁명(revolution)이 아니다"라고 68운동을 비판하였다. 한마디로 [[선진국]] [[중산층]] 대학생의 불장난이라는 것. 거기다가 많은 수의 히피들이 80년대 이후 히피 문화가 죽어버리자 강경한 [[복음주의]] 성향 [[개신교]] 내지는 보수적 가톨릭으로 전향한 것도 논란거리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https://marx21.or.kr/article/255|미국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궤적과 교훈]]이라는 68운동에 대해 고찰하는 칼럼을 실으면서 당시 흑인 인권운동가들이 백인 여성한테 '너 나랑 성관계 거부하면 인종차별주의자니까 받아들여라?'라고 강요한 것을 비판했다. 종교계에서도 진보적 신학자였던 [[베네딕토 16세]]를 반강제적으로 보수적인 인물로 만든 사건이기도 했다. 실제로 68운동을 전후해서 유럽의 미사 참례율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당시 운동을 주도하던 세대들 중에는 대놓고 "[[예수]]에게 저주를!", "[[성경]]은 대중을 기만하는 비인간적인 책이다!"라며 [[반기독교|대놓고 기독교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던 사람들]]도 많았다. 거기에 비트닉과 [[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대안종교랍시고 [[힌두교]]나 [[불교]][* 때마침 당시에는 유럽과 미국에 [[티베트]]식과 일본식 선(禪)불교가 유입되고 있었다.] 같은 동양 종교에 관심을 갖던 사람들도 있었다. 때문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막론하고 기독교인들 중에는 안 그래도 몰락해 가던 유럽의 기독교가 이때를 기점으로 해서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