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4대가족 (문단 편집) == 평가 == 중국 4대 가문과 그 구성원들의 인생은 근대 중국에 존재하고 있던 극적인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 시작으로 말하자면 장씨는 절강의 유복한 소금 상인이었고, 송씨는 해남의 찢어지게 가난한 농민이었고, 공씨는 산서의 빈한한 지식인이었고, 진씨는 절강의 몰락한 지방 유지였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사용되는 [[오성홍기]](五星紅旗)의 작은 네 별이 각각 노동자, 농민, 지식인, 민족자본가를 상징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국 4대 가문의 이러한 출신 성분은 중국을 지리적으로, 신분적으로 아우르는 자못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해외에서 자신들의 인생을 반전시킬 기회를 얻었다. 송가수와 공상희는 미국에서 중국과 서구를 잇는 신지식인이 되었고, 진기미와 장개석은 일본에서 암흑가에 몸담은 혁명가가 되었다. 더 나아가 진씨 가문의 진기업, 진기미, 진기채 삼형제와 송씨 가문의 세 자매는 각각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실업가, 혁명가, 권력자로서의 인생을 나누어 살았다. 특징적인 것은 미국에 유학한 송씨와 공씨가 주로 자본가적 성향을 띠게 된 데 반해, 일본에 유학한 진씨와 장씨는 주로 혁명가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들은 해외에 종속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고, 이는 국민정부의 운영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들이 철저히 국가 권력과 유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송자문이 재정부장을 역임하고 그 지위를 이용하여 국내의 투자 자본을 결집한 뒤 금융자본의 지분을 차지한 사실이나 공상희가 염석산의 막하로 들어갔다가 국민정부에서 재정부장을 역임했던 사실은 이들의 정권 유착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화폐긴급령에서 보이는 단순한 국가 재정의 사유화 외에도 전후에 금 시세를 조작하여 이득을 챙긴 황금안(黃金案)은 이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결과적으로 30년대 중반부터 경제 전반으로 확장된 4대 가문에 의한 독과점적 경제 지배는 기존의 중국 재벌사회를 구조적으로 변동시켰다. 4.12 쿠데타 이래로 장개석과 유착하고 있던 상해의 절강재벌과 암흑가 조직은 그로부터 나온 4대 가문이 전 중국의 금융을 장악하게 되면서 거꾸로 여기에 종속되거나 억압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일전쟁이 시작되어 이는 미처 노골화되지 못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장개석의 아들 장경국은 곧장 상해 암흑가의 거물이던 두월생(杜月笙)의 아들 두유병(杜維屛)을 체포하는 등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기도 했다. 이는 곧 일단의 부패 정화 작업이었으나 여기에서 4대 가족이 무사했던 사실은 이들이 차지하고 있던 초월적인 위상을 방증하는 것임과 동시에 도리어 그들이 행사하는 금권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주었다. 1997년 만들어진 [[중국 영화]] [[송가황조]]가 이들 4대가족들의 이야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다만 진가를 제외한 나머지 3개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 그 중에서도 쑹 자매 3명의 비중이 가장 크다. '황조'(皇朝)라는 표현은 이 4대가족 중에서도 송씨 가문의 영향력이 중국에서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분류:국민정부의 역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