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4-2-2-2&4-3-2-1 (문단 편집) ==== 역사 ==== 4-2-2-2의 화끈한 공격을 상징하는 포메이션이었지만, 내가 적을 후릴 기회가 많다는 것은 나의 가드가 허술하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실제로도 노련한 수비력을 가진 팀들은 묵직한 역습 한방으로 이 포메이션의 헛점을 최대한 후비고 후벼서 승부를 짓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해 축구에서 가장 근원적인 요소인 힘싸움에서 이 전술은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반대로 말을 하면 벨런스를 맞추면 충분히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팀 내에 확실한 기량을 가진 공격적인 미드필더가 두명이나 있을때 이를 제대로 활용해 먹을 수 있다는 점은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다. 게다가 90년대는 플레이메이커의 시대로, 축구사에서도 유독 유명한 플레이메이커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감독이나 구단주 등 어떤 누구의 입장이 되더라도 이같은 재능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먹을 수만 있다면, 그 팀은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당대의 전술가들은 이 문제의 최적해를 찾아내는 것이야 말로 지상 최대의 과제였던 때였다. 또한 이 시기 등장했던 4-4-2는 혁명적이었지만, 토탈풋볼적 요소가 강한만큼 이를 구성하는 선수들의 기량도 만능에 가까워야 제대로 된 위력을 낼 수 있다는 점은 아무리 상위권 구단들이라 할지라도 상당히 맞추기 힘든 조건이었다[* 요즘이야 토탈풋볼적 사고가 상당히 많이 퍼져있기에, 양쪽 다 좀 하는 선수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고 그런 선수들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지만, 이 시기는 오늘날과 비교해봤을때는 선수 능력의 특화를 원하던 시기다. 공격수는 공격만 수비수는 수비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 조건대로라면 흔히 공격에는 최상의 능력을 뽐내지만 수비는 신경도 안 쓰는 판타지스타급이라고 불리는 플레이어들을 많이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4-2-2-2를 기반으로 전술을 구성한다면, 그런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시간은 흘러 몇몇 사람들은 이에 대한 결론을 어느정도 인지를 하였다. 4-2-2-2의 비효율은 중원 장악도 안정적이지 못하면서, 공격수는 쓸데없이 2명씩이나 된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여기에 만약 이 공격수를 한명을 줄이고 중앙 미드필더 한 명을 더 둔다면, 이 포메이션의 약점인 미드필더에서의 열세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서 공격수를 한명으로 두고 중앙 미드필드를 5명으로 전부 채워버리면 최소한 안정적인 중앙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이 같은 사실에 착안하여 가장 먼저 이 포메이션을 가동해서 성과를 냈던 팀은 98년도 프랑스 국가대표팀이었다. 이 당시 프랑스 국대의 스쿼드는 진짜 역대 최강급의 위용을 자랑하였으며, 공격수부터 골키퍼까지 깔 수가 없는 완벽한 스쿼드를 자랑했는데, 그 중 백미는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지네딘 지단]]을 비롯한 [[유리 조르카에프]]같은 역대급 공미가 2명 이상 존재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당시의 프랑스 국대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클래스도 장난이 아니엇는데 '''[[엠마누엘 프티]]''', '''[[크리스티앙 카랑뵈]]''', '''[[디디에 데샹]]''' 등이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이들은 활동량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들이었고, 특히 데샹은 심장이 몇개는 달린 듯한 활동량을 가진 사나이었다. 이런 선수가 3명이나 있으면, 일단 중앙에서 밀릴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결국 안정적으로 지단과 조르카예프에게 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게다가 당시 프랑스의 수비진은 강철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역대급 철의 포백이었고, 이 후덜덜한 스쿼드의 서브들은 페트릭 비에이라, [[티에리 앙리]]같은 인간들이었으니.... [[1998년|98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프랑스 월드컵]]에서 에메 자케 감독은 이 전술을 사용하여 승승장구했고, 마지막 결승전 무대에서 브라질의 4-2-2-2를 완전히 깨부수면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카를로 안첼로티]]도 이를 통해 재미를 본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전술적 기초는 4-2-2-2가 아니라는 점이 특이할 만한 사항이다. 안첼로티는 과거 AC밀란의 황금기를 조련했던 [[아리고 사키]]의 팀에서 주축을 맡았었고, 그를 통해 감독일의 기초를 배운만큼 압박을 중요시하였다. 이런 전술적 사상에 AC밀란시절 그는 현대축구 전술의 빌드업의 중요성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역대급 [[레지스타]] 혹은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로 칭송받는 피를로를 기용하면서, 동시에 점차 유행하는 4-4-2의 카운터를 위해 [[후이 코스타]]같은 공격 특화형 중앙 미드필더의 기용을 함께하였기에 점차 그의 팀의 중심은 중앙으로 편중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리고 여기에 마침 [[마시모 암브로시니]]나 [[젠나로 가투소]] 같은 싸움꾼들이 또 팀에 있었고, 피를로와 루이 코스타 같은 핵심선수들의 수비 부담을 줄이고 보호를 위해서라도 이들의 기용은 필수적이이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팀의 측면은 비어있는 현상이 발생하였는데, 그런데 마침 또 팀의 윙백들은 [[마렉 얀쿨로프스키]]같은 공격적 성향을 지닌 선수들이 지배적이었고, 특히나 오른쪽에는 역대급 윙백하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완벽한 공/수 벨런스와 끔찍한 돌파력을 자랑하는 [[카푸]]가 있었다. 이는 4-4-2이지만, 미드필드의 측면이 비어있고 선수들은 중앙에 다이아몬드 형으로 포진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4-4-2 다이아로 불리게 되었고, 언급된 선수들의 특징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끌어 내어, 당시의 다이아몬드 전술의 밀란은 중앙을 완벽히 장악하고, 측면에서도 상대를 고전시키는 동시에 모든 공간을 유기적으로 사용하는 팀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공격수를 2명이나 둔다는 사실은 미드필더의 과부하를 낳는다는 사실에서 결국 안첼로티도 4-2-2-2의 딜레마로 돌아오게 되었다 [* 투톱을 쓰게되면 이는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이다. 이에 대한 대처로 현대에는 3백의 부활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4-4-2 다이어로도 상대방의 미드필더와 대등 혹은 압도하는데, 만약 압박이 자연스러운 미드필더를 한명 더 둘 수 있다면 팀은 아예 중원을 내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랬기에 역시나 그의 선택도 공격수를 줄이고 미드필더를 늘린다는 데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공격수를 정리해고 하는 동시에, 절정의 폼을 보여주는 미드필더들을 더 기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었다. 특히 밀란은 제 2의 [[루드 굴리트]] 셰도로프를 보유하고 있었던 만큼, 전술의 변형 역시 쉽게 이루어 질 수 있었다. 그리고 05년도경 그는 [[카카]]와 셰도로프를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놓는 플랜B를 구상하였고, 그의 생각은 점차 맞아 떨어지고 이 전술은 곧 팀의 주전술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나 만능 미드필더 셰도로프는 자리에 구애받지 않고, 공격 수비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완벽한 2선 특급자원인 카카는 공격이 안 풀릴시 직접 공격도 능숙하게 해내어 유기적인 플레이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밀란에게 06-07 빅이어를 가져다 주는데 큰 일조를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