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1997년 (문단 편집) == 설명 == * [[http://youtu.be/SYqEMs0EYoI|1997년에 일어난 국내외 사건들 연대기 영상]] [[파일:img17.jpg]] [* 1997년의 흔한 뉴스들이다.--그것도 전부 [[MBC]] 뉴스다.-- 그 누구도 이 뉴스들이 IMF가 올 거라는 걸 예고한다는 걸 예상하지는 못했다.] '''[[1950년]] 이후로 현재까지도 역대급 최악의 해'''라고 불리는 해이며[* [[2004년]], [[2014년]], [[2016년]], [[2020년]], [[2022년]]~[[2023년]]과 함께 유달리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로 인식된다.], '''1990년대 중에서 가장 힘든 한 해 였다.''' 당년 초부터 전년도에 이은 레임덕과 노동법-안기부법 반대 총파업으로 초반 정국이 시끄럽던 차에 대기업 [[한보그룹]]의 파산을 시작으로 김현철 스캔들, 황장엽 탈북 등으로 정국이 뜨거웠고, 그 해 연말에는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져버렸다. [[1996년]]까지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아시아의 네 마리 용]]"'''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이라며 "기초가 튼튼하다던" 한국이었지만, [[태국]],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북상하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 [[파일:external/nuri.hani.co.kr/101206%2013-3.png|width=300]] || || [[영국]]의 [[조차지]] [[홍콩]]이 [[중국]]에게 반환되었다. || 1996년까지는 비록 '사고공화국'이니 하는 등의 비판도 나왔지만 1인당 GDP가 역사상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지속적인 사회 발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응답하라 1994]]나 [[응답하라 1997]]과 같은 작품이 계속 나오는 것도 이 시기의 추억에 대한 나름의 향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997년은 남북한간 최악의 대치가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경제는 [[1997년 외환 위기]](전국 사업장 체불임금 금액이 6480억원)를 맞으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존망마저 위태로운 시기였다. 심지어 학생 운동권도 전년도에 이어 한총련 5기 출범식 사태를 비롯해 이석 치사사건, 이종권 치사사건 등 프락치 오인 살해사건과 '동아대 자주대오 사건' 등 공안사건 발생 등에 따른 정부의 강경대응으로 쇠퇴했고, 한총련을 탈퇴하는 총학 수도 갈수록 늘어갔다. 1997년 12월, IMF 사태가 터지던 시기의 국내 실업률은 3.1%로 집계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13100289107001&editNo=7&printCount=1&publishDate=1998-01-31&officeId=00028&pageNo=7&printNo=3104&publishType=00010|지난달 실업률 3.1% 4년 반만에 최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1310020910700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1-31&officeId=00020&pageNo=7&printNo=23780&publishType=00010|실업률 3.1% 최악 수준]]] [[문민정부]] 초기인 [[1993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최악이다. 그동안 달성했던 치적들이 임기 말에 묻혀 싸그리 날아갔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물론 좋은 일도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정치권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김대중이 북풍공작 등 사상공세에도 불구하고 15대 대선에서 이회창을 누르고 당선해 헌정사상 최초로 '여야 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달성했다. IT업계에선 1996년도의 CDMA에 이어 이 해에 PCS 이동전화 시대가 개막되었으며, 역사 및 한글학계에서도 '세종대왕 탄생 600주년'을 성대히 기념했다. 또 울산시가 경상남도에서 분리돼 비로소 광역시가 됐다. 방송계에선 '한국방송 70주년'을 성대히 기념한 가운데 상반기부터 가요프로에 변화가 생겼는데, KBS2 [[가요톱10]]이 1월부터 립싱크 표시를 붙였고,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은 국내 최초로 전 분량을 라이브로 바꿔 립싱크를 추방시켰다. 아울러 경인, 충북, 전북, 울산 4개 지역에 민방이 생겼으며, 특히 경인지역을 뺀 3개 지역은 SBS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 동시에 지상파 방송 3사가 VOD 서비스를 실시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문민정부]] 말기에 태어난 1997년생은 당시 기준, '''N세대'''의 끝자락 세대이면서 현재 기준, [[Z세대]]의 선두주자이기도 한 과도기 세대이다.[* 인터넷(Internet)의 넷을 따와 N세대로 규정한 대상자는 X세대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1977년생부터 1997년생까지로 규정하며 Z세대는 1997년생부터 2009년생까지로 규정한다. 1997년생은 Z세대가 새로운 세대로 떠오르기 전에는 N세대의 끝자락 범주에 포함되었으나 현재는 Z세대의 선두주자로 편입되었기에 양쪽 모두 해당되는 셈이다.] 금융계에선 조흥증권이 국내 최초로 인터넷 홈트레이딩 서비스를 실시해 객장 대신 안방에서 주식시세를 손쉽게 볼 수 있게 해 줬고, 국내 고령기업 [[동화약품]]과 [[조흥은행]]이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법조계에선 1997년은 사형제가 실시된 마지막 해이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1997년 [[올해의 한자]]는 '倒(넘어질 도)'였고, [[문화체육부]]에서는 이 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지정했다. 한국에서는 1997년 이후 광우병 발생지역 [[영국]]에서 3개월 이상 체류한 사람은 헌혈을 영구적으로 금지했다. 이것은 1980년부터 1996년까지의 1개월에 비해서는 상당히 완화되었으나 이 조항 때문에 영국으로 진출한 축구선수 [[박지성]]과 [[손흥민]]은 평생 헌혈을 못 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