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2년 (문단 편집) ==== 1월 ==== * [[1월 1일]] * 노태우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1992년은 한민족공동체 건설 원년이자 경제회복 활력의 해라고 강조하였다. * 경북 영일군[* 현 포항시] 청하면 주민 1천여 명은 청하삼거리 국도에서 핵폐기장 설치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지난 달에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강조했다. *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 4개국 순방에 돌입하였다. * [[1월 2일]]: 경찰은 경남 영일군 방사성폐기물설치반대투쟁위원회에 전의경 병력을 투입해 집행부를 강제 해산시켰다. * [[1월 3일]]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경영일선 은퇴선언 후 당월 중순에 신당 창당발기 의사를 밝혔다. *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은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전에 정치일정을 담판짓기로 결정했다. * 권호경 KNCC 총무가 북한을 방문했다. * 경북 영일군 내 이장 30명이 핵폐기장 반대시위 과잉진압에 항의해 집단 사퇴서를 냈다. * 정부는 임금안정 및 인력난 해소를 위해 기업의 인원감축을 적극 유도/지원키로 결정했다. *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에게 처음 개방되었다. * [[1월 4일]] * 노태우 대통령은 민자당 당무회의에서 김영삼 대표에 대권승계를 방침한다고 밝혔다. * 노태우 대통령은 경제장관에 기업자금의 정치권 유입을 철처히 차단토록 지시했다. * 공정거래위는 당년도 독과점사업자 352개사를 지정했다. * 대한변협은 시국사범 접견시 시간제한/입회녹음 철폐를 법무부에 요구키로 결정했다. * 서청협 회원들이 '부시 방한반대 시위'를 벌였다. * [[1월 5일]]: 강원 양양군민 2천여 명이 양양국교에서 '방사성폐기장 설치 반대 국민회의'를 개최하였다. * [[1월 6일]] * 노태우-부시 간 한미정상회담이 청와대에서 열렸다. * 전농 등 6개 농어민단체들이 전국 각지에서 쌀 시장개방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 그루지아 대통령이 아르메니아로 피신하여 내전이 종식되었다. * [[1월 7일]] * 국방부는 당년도 팀 스피릿 한미합동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 충남 안면도 주민 5천여 명이 '방폐장 설치 반대 궐기대회'를 열었다. * 북한측은 IAEA 핵안전협정 서명 후 핵사찰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1월 8일]] *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3공 이후 2년 전까지 청와대에서 정치자금을 냈다고 주장했다. * 여연 회원들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사과를 요구하며 첫 [[수요집회]]를 개최하였다. *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부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 관저]] 환영만찬 도중 [[졸도]]했다. * [[1월 9일]] *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 3명과 회동에서 정치일정을 매듭짓기로 합의했다. * 민주당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정치자금 헌납 발언과 관련해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했다. * 환경처는 국토개발사업 시 녹지의무조성 등을 담은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환경부문(녹색계획)을 발표했다. * 현총련은 사측의 노조탄압 중단 성명을 냈다. * 북한측은 우크라이나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 [[1월 10일]] *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지자제장 선거 연기 및 대권후보 자유경선 등을 선언했다. * 정부는 유엔 결의에 따라 남아공 경제제재조치를 해제시켰다. * '통일국민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개최되었다. * 북한측은 투르크메니스탄과 수교했다. * [[1월 13일]] * '안양사랑청년회'가 발족되었다. * 가토 고이치 일본 관방장관이 정신대 국가관여 사실을 시인했다. * [[1월 14일]] * 현대차노조는 쟁의돌입 결의 후 노조간부 연행 시 전면파업키로 결정했다. * 캄보디아 정부는 정당 결성 및 언론자유화를 보장하고 전쟁포로와 정치범 290명도 석방키로 결정하였다. * [[1월 15일]]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북한 평양에 도착했다. * EC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독립국가로 승인하였다. * [[1월 16일]] * 미야자와 일본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 엘살바도르 정부군-FMLN 양측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내전 종식을 선포하였다. * [[1월 17일]] * 정부는 2월 1일부터 공무원 승용차 10부제를 전면 실시한다고 밝혔다. * 미야자와 일본 총리는 방한 중 국회 연설에서 정신대문제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사과 의사를 밝혔다. * 충북 충주에서 김보은이 남자친구 김진관과 함께 성폭행 가해자인 의붓아버지를 살해했다.([[김보은 양 사건]]) * [[1월 18일]] * 교육부는 일제 말기 국교 및 중고교 학적부를 토대로 종군위안부 동원 실태조사에 착수하였다. * 태평양전쟁유족회 소속 유족 등 3백여 명은 일본 사법부에 손배소송 등을 결의하였다. * [[1월 19일]]: 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는 '(가칭)한국노동자당 창당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였다. * [[1월 21일]] * 윤형섭 교육장관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부분 수정을 강력 촉구한다고 선언했다. * 정부는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에 철저한 진상규명 및 보상요구를 결정했다. * 교육부는 부천 서울신대 입시문제지 도난사건으로 다음날로 예정된 후기대 입시를 [[2월 10일]]로 연기하였다. * 경상대박물관 발굴팀이 경남 합천군 성산리 대형토분 6호에서 가야시대 유물 205점을 발굴해냈다. * [[1월 22일]] * 노태우 대통령은 후기대 입시문제지 도난사건으로 물러난 윤형섭 대신 [[조완규]]를 새 교육부장관에 임명했다. * 한-미 양국은 북한에 대한 IAEA의 핵사찰 기한설정에 합의하였다. * 경찰은 후기대 입시문제지 도난사건 진범을 발표하였다. * 전국 대학생들이 삼당합당 2주년을 맞이해 반민자당 시위를 벌였다. * 미-북 차관급 회담이 뉴욕에서 열렸다. * [[1월 23일]] * 한국소비자연맹 등 전국 405개 시민단체들을 주축으로 한 '공명선거실현 민간단체연합'이 발족되었다. * 중국측은 한국상품전시회장에 '대한민국' 국명 및 국기 게양을 허용시켰다. * [[1월 25일]]: 공선협 출범식이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개최되었다. * [[1월 26일]]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북한 남포에 2백만 평짜리 남북합작공단 건설 계획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 전노협은 제3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전국연합 참여 결의 후 단병호 위원장을 재선출했다. * [[1월 27일]]: 서울대 교수 등 각계인사 61명이 정주영의 정치자금 헌납발언과 관련해 청와대에 사실확인을 촉구했다. * [[1월 28일]] * 국방부는 '신 국방정책 및 군사전략'에서 대북 주적개념을 주변 열강 등 군사적 위협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수정키로 결정했다. * 권정달 전 민정당 사무총장이 14대 총선 출마준비 중 돌연 출국했다. * 서울신대 경비과장이 후기대 입시문제지 도난 혐의로 경찰 조사 도중 자살했다. * 북한측은 카자흐스탄과 수교했다. * 싱가포르 ASEAN 정상회담은 UR협상 조기타결을 촉구하는 '싱가포르 선언'을 채택했다. * [[1월 30일]] * 전 민청련 의장 [[김근태]]가 서울민사지법에서 고문피해 사실을 인정받아 국가배상 판결을 받았다. * 한국 축구대표팀이 자력으로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 * 경남 울산시 지역신문 <[[울산매일]]>이 창간되었다. * 북한측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IAEA 핵안전협정에 서명하였다. * 북한측은 몰도바 및 아제르바이잔과 수교를 맺었다. * 전유럽안보협력회의는 독립국가연합 가맹국 중 러시아를 뺀 10개국의 가입을 승인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