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0년대 (문단 편집) ==== 경제 ==== 1986년부터 시작된 3저 호황 효과와 더불어 1988 서울올림픽, 북방정책의 성공으로 한국의 위상은 겉으로 성장했으나, 정작 서민들은 이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1989년 하반기부터 물가는 날로 치솟아 1990년 정부 발표 기준으로 소비자물가가 10%로 올랐지만 체감지수는 더했다. 예컨대 자장면 값이 1986년 기준 700원에서 1990년 기준 1,700원으로 치솟는가 하면, 100원짜리 라면도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이다. 아무리 3저 호황이 1988년 이후부터 시들어지긴 했지만[* 하지만 이 당시 시중 자금이 부동산으로 대거 몰려든 덕택에 집값과 전월세비 상승폭이 임금 상승률을 추월할 정도로 폭등해 실제 일반인들 체감은 이에 못미쳤다. 물론 자가용이 한창 대중화되어갔고, 해외여행 자유화에 따라 해외여행객도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쨌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는 들었다.] 후광은 1990년대 중반까지는 갔으므로 장및빛 경제를 예상하는 현상이 높았다. 또 한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구간인 [[베이비붐 세대]] [[386세대]]가 이미 결혼도 하고 어느 정도 아이들도 성장한 상태로서(물론 1965년 이후 386 후반생들은 제외) 본격적인 경제 활동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 보기 힘들었던 소비의 규모가 커졌으며 샐러리맨 월급이 처음으로 백만 원을 넘어섰다. 1995년에 [[1인당 GDP]] 1만 달러를 돌파해 염원하던 국민소득 만 불(萬弗) 시대에 접어 들었고[* 그 해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국민소득은 2만 달러 초반대였고 미국, 독일은 2만 달러 후반대였으며 일본만이 3만 달러가 넘던 시기였다.] 1995년에는 [[국내총생산]] 세계 11위를 차지하였으며 1996년에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OECD]] 회원국이 되었다. 물론 명목상 달러화 기준으로 한국의 소득수준은 여전히 전통적인 [[서구권]] 선진국에 비해 40~ 60% 수준이었지만 80년대 20 ~30%대 소득 수준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다. 또한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당시에 사회문제점으로 꼽혔던 부동산 가격의 폭발적인 상승도 1991년을 정점으로 [[1기 신도시]] 분양 및 [[토지 공개념]] 3법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값 억제정책으로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이후로 부동산 가격이 90년대 내내 안정세를 보였던데 반해 소득증가율은 두자릿수대를 유지했기 때문에 소득이 오르면 곧바로 소비 및 저축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과정을 거쳤으며 1990년대 [[환율]]은 1달러=700~800원대를 선점해(1981년에 1달러에 600~700원 하던 수준의 환율을 경제적 호황의 후광으로 1990년 중반까지 700~850원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유지해옴) 소비자물가지수가 1994년을 제외하면 OECD 평균을 밑도는 정도로 굉장히 안정되었고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도 적었던 시절이다. 또 1970년대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중산층이 1980년대는 더욱 두터워졌으며 이 층들이 1990년 중반까지도 유지해 당시 자기가 중산층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70%가 넘었다.(이 수치도 IMF이후로 확 줄어든다.) 하지만 지나친 저환율 정책으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는 1990년 이래로(1993년에 소폭의 흑자를 낸 것을 제외하면) 매년 적자를 기록했으며 1997년부터 외환보유고는 점점 바닥이 나고 있다가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하는데... 그 파장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하루 아침에 수십만 명의 실업자가 양산되었으며 환율은 급속도로 올라가 1996년 13,137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98년에는 8,083달러로 떨어졌다가 마지막 해인 1999년에 10,410달러로 소폭 증가로 마무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