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0년대 (문단 편집) === 20세기 말까지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생활 모습들 === 21세기 이후 시점에선 다 옛날 일이고, 1990년대 이전에 출생한 사람들한테는 사실상 아련한 과거다. [[이촌향도]] 현상이 끝나가는 시점으로 도시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수가 시골 출신이어서 시골 문화가 많이 있으며, 이 목록에 등장한 사례들 중에서는 시골문화 특유의 인정이 남아있는 것들도 있지만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생겨난 악습들도 많으므로, 이 시절로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이 시절에는 이랬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다소 능력이 부족한 아이가 있으면 더 유리한 조건을 주고 놀이에 끼워주는 깍두기 문화가 존재했다. 물론 90년대 초중반에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사라지기 시작. * 오래된 작은 주택가들이 많았고 아파트 단지에도 노는 아이들이 어디든 바글바글 했었다. 전자게임과 컴퓨터가 지금처럼 발전되지 못했고 스마트폰도 없었기에 밖에서 놀이를 하고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물론 9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가 더욱 발전하며 게임의 기술 수준이 많이 상승. * 아는 동네 어른이나 학교 선생님, 선배를 볼때 인사를 고개숙여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 혼이났다. 지금보다 상하관계에 더욱 엄격했던 시절이었다. * 가정은 물론이고 학교, 학원에서도 얼차려와 체벌이 아무렇지 않게 자주 일어났다. 단체기합이 섞인 체벌도 많았다. 사실 특히나 남자애들은 대부분 어느정도는 맞고 살았다. 군대에서 역시나 지금은 상상도 못하는 병영 부조리, 선임들에 의한 가혹행위가 일어났다. 2023년 지금 같으면 학대로 이미 고발당할 일도 당시에는 "남자는 강하게 커야 대장부가 될 수 있다", "어리거나 젊은시절의 고생은 돈주고 사서도 한다"는 관념에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다. 남자 애들끼리의 패싸움도 서로 주먹 몇번씩 주고받은 정도고 다치지만 않았다면 어른들이 그냥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 친척들끼리 왕래가 지금보다 더욱 많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도 자주 방문했다. 명절에는 실향민이 아닌 이상 차가 막히는 민족대이동 도로를 10시간을 넘게 운전해서 고향에 갔으며 지금처럼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는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 오늘날처럼 음식점에서 파티가 아니라, 친구들끼리 돌아가면서 집에 초대해 모임을 가졌다. 음식도 모두 어머님이 손수 장만해서 상을 차렸다. 손님도 보통 가정집으로 많이 초대했다. *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화상통화가 어려웠고 그냥 멀리있는 사람과는 전화통화로 목소리만 듣고 대화를 나눴다. * 전화도 발전했지만, 큰 유선전화기, 무선전화기를 썼다. 아날로그 핸드폰은 거의 무전기처럼 컸으며 소유한 사람도 많지 않고 [[무선호출기|삐삐]]를 소유한 사람이 많았으며, [[공중전화]]를 걸기 위해 부스 앞에 줄서서 기다렸다. * TV는 LG(구 금성), 삼성 외에 대우, 아남에서도 제조 및 판매했으며, 무거운 브라운관 TV였고 평면보다 볼록이 더 많았으며, 화질도 지금보다 떨어졌다. TV 채널은 지상파 방송채널 몇개밖에 없었고 정해진 시간에만 나왔다. 따라서 연속극이나 뉴스, 영화, 만화를 볼때 모두가 TV앞에 모여 앉았다. 다른 시간에 TV를 보려면 비디오방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봐야했다. 라디오, 음반을 구매해서 듣는것도 큰 낙이었다. * [[플로피 디스크]]가 널리 쓰였으며, 특히 5.25인치 사이즈가 널리 쓰인 마지막 시기다.[* 3.5인치는 2000년대 중반까지 널리 쓰였다.] * 멀리서 만나는 약속 시간은 널럴하게 잡고, 만남 장소는 눈에띄는 유명한 장소로 잡아놓고 정시에 못와도 한시간 정도는 기본으로 기다렸다. * 가정에 [[전화번호부]]가 비치되어 있으며, 가족, 친척, 친구 전화번호를 20개 정도는 그냥 외우고 있었다. * 전화예절이 필수였다. 보통 집으로 전화를 해서 어른이 전화를 받으시면 정중하게 친구를 바꿔달라고 했었다. * 지금처럼 물품이 많이 수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수입산 식품부터 시작해서 의류, 공산품, 장식물은 서울 부촌이나 가야 구할 수 있었고 가격도 당시치고는 높았다. 그나마 1990년대 중반경이 되어서야 지방 광역시에도 백화점에 수입상품 코너가 생겼다. 당시는 국산과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에서 수입한 상품의 품질 차이가 많이나서 외제라면 다들 좋아했다. 아버지가 해외 선진국으로 출장이라도 다녀오시는 날에는 현지에서 구매해오신 물건들을 보면서 눈이 즐거워졌다. 수입 열대과일 역시 그렇게 흔하게 맛보기는 어려운 별미였다. * 남자, 여자 할거없이 자발적으로 아니면 주변의 강요에 의해 나이 30세 이하에 95프로 이상이 다 결혼을 했었고 결혼 후 자연스럽게 애엄마, 애아빠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혼인율, 출산률이 모두 많이 낮아졌지만, 당시 90년대 까지만 해도 한집당 자식을 두명은 가졌고 대부분이 결혼을 했기에 인구는 제법 늘었다. * 1980년대 말에 유학과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었지만, 해외유학은 거의 선택받은 집안의 자제들만 가능했다. 해외여행 역시 집안사정이 좋은 사람들만 보통 갔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혼여행마저도 보통 국내 여행으로 때웠다. * 지금보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심했고 집안에서 아버지의 권위도 막강했다. 선생님의 권위도 강했고, 회사에서도 상명하복 문화가 더 강했었다. 대학교에서의 선후배 문화도 마찬가지. * 토요일에도 출근을 하고, 학교에 갔었다. 대신 일찍 끝났다. * 아이들은 만화는 만화방에 가서 많이 봤고, 게임은 오락실에 가서 많이 했었다. 물론 80년대 후반부터 TV에 연결해서 게임팩을 넣고 하는 가정용 게임기가 나와 아이들한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 세계 온라인 마켓을 동원해 무엇이든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르게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 많았고, 특히나 인기상품이 아니라면 뭐 하나를 구하려고 해도 부지런히 인맥을 동원해 곳곳의 가게를 찾아다녀야 했다. 물론 아무리 찾아도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소한 물건인데 친구가 그걸 가지고 있을 경우 본인이 가진 물건 중 그 친구가 원하는 물건이 뭔지 보고 사이좋게 물물교환을 하기도 했었다. * 시골이든 도시든 개발이 안된 지역들이 곳곳에 있어서 곤충과 개구리처럼 작은 동물들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아주 많았고 동물을 잡으면서 재미있게 놀기도 했었다. * 지금처럼 대형화 된 문구점이 없었고 동네마다 작은 문방구가 있었다. 학교 준비물, 학용품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대부분의 장난감은 동네 문방구에서 구매했고, 생일,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특별한 날에는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부모님이 비싼 장난감을 사주셨다. 일본제 가정용 전자오락기도 이때 주로 전자상가에서 구매했다. * 지금처럼 24시 편의점이 없었고, 대신 동네마다 소소한 먹을것과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는 허름한 구멍가게가 있었다. * 놀이터는 지금처럼 고무바닥이 아니고 모래로 덮여있어 아이들이 흙장난도 많이 했었고, 놀이기구가 위험해 부상도 많았다. * 군대에서의 아침점호 비슷하게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차려 자세 대열로 줄을 서 애국조회를 섰다. 특히 겨울아침 애국조회는 정말로 고역이었다. * 대한민국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선진국 중에서도 준수한 수준으로 올라간 지금과는 다르게 90년대 까지만 해도 평균 수명이 선진국들에는 못미쳤다. 따라서 어르신들 대부분이 회갑(60세) 또는 칠순(70세) 잔치를 많이 했었다. 요즘은 팔순(80세) 잔치가 더 많지만. * 복지 제도가 지금에 비해서 미약했었고 그래서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살기가 더 어려웠다. * 지금처럼 K-pop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하지 못했으며, 국내 인기 정도로 끝났다. 노래의 종류도 더 적었고, 아이돌이 그리 많지도 않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끼리 공감대가 통하는 유행가는 거의 뻔하게 다 잘 알고있었다. * 아이들은 밖에서 놀때 롤러스케이드, 롤러블레이드, 자전거를 많이 탔다. 겨울에는 눈이오면 썰매를 탔었고, 스키와 스노보드는 고급 스포츠에 속했다. 그나마 1990년대에 와서 스키도 보급이 많이 되었으나 당시에도 비싸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고작 1년에 한번정도 타보는게 전부였다. * 대한민국 철도는 [[KTX]]로 대표되는 [[고속열차]]가 아직 다니기 전이고 [[새마을호]]가 최상위 등급, [[비둘기호]]가 최하위 등급이며, 대부분이 단선에 전철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 에어콘은 큰 공중장소가 아닌이상 없었고 가정용 에어콘은 상류층들의 전유물이었다. 일반 가정은 선풍기 정도로 더위를 식혔고, 선풍기도 없었던 시절에는 부채가 전부였다. 학교에도 한 교실당 겨우 선풍기 몇개가 전부여서 여름에 5교시만 되면 찜통 교실에 학생들이 반도 넘게 꾸벅꾸벅 조는 명장면이 펼쳐졌다. 어머니가 싸주신 하루전에 얼린 얼음을 녹여서 물을 마시는게 생명수였다. * [[시내버스]]는 [[좌석버스]]를 제외하고 대부분 [[자동차용 에어컨|에어컨]]이 달리지 않아 여름에 찜통이었으며, 대부분 [[교통카드]]보다는 현금이나 [[버스 토큰|토큰]], [[회수권]]으로 지불했다. * [[택시]]는 [[현대 쏘나타|쏘나타]]보다 [[현대 스텔라|스텔라]]가 더 많았으며, [[택시 합승|합승]]도 많았다. * [[인천국제공항]]이 개항 전이라 [[김포국제공항]]이 대한민국 중추 공항이었고 KTX 개통 전이라 국내선 수요가 지금보다 더 많았으며, 대한민국 항공사는 [[저비용 항공사|저가 항공사]]가 들어서기 전이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둘 뿐이었다. * [[오락실]]에 리듬 게임기가 설치되기 전이었다. * 정수기가 가정집으로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고 생수보다는 보통 보리차, 옥수수차, 결명자차를 끓여서 식힌 후 물처럼 마셨다. 당시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먹고 남은 큰 유리병에 담아두고 마셨다. * 양문형이고 큼지막한 지펠 냉장고는 국내산이 아닌 전부 수입산이었고 가격이 비싸 대부분 상류층들만 썼다. 보통 사람들이 쓰는 냉장고는 대부분 위가 냉동실, 아래가 냉장실 형태의 작은 2도어 국산 냉장고였다. * 가정용 [[세탁기]]는 대부분 문이 윗쪽에 있는 일반 세탁기에 탈수기가 따로 되어 있는 2조식도 많았으며, 문이 앞쪽에 있는 드럼 세탁기는 주로 [[세탁소]]에서나 볼 수 있었다. * [[전기밥솥]]은 전기압력밥솥보단 일반 전기밥솥을 주로 썼다. * 교육계에도 군사정권에서 비롯된 문화가 많아 소위말하는 개성이 강하거나, 공부를 못하는 애들은 쓰레기 취급하는 인성이 문제인 선생님들이 학교는 물론 학원에도 중간중간 있었다. * 예쁘고 잘생긴 학교의 아이돌 노릇을 하는 등 예전보다는 약간 여려보이는 요즘 일진들과는 달리 당시 일진들은 싸움 실력이 가장 중요했기에 험하고 강한 이미지였으며 스타일링도 "깡패" 비슷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 교육은 많은 내용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최대한 요점들을 많이 외우게 시키는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이었다. 소위 말하는 창의성은 그나마 방학숙제 정도에서나 발휘할 수 있었다. * 학교에서 안경을 쓰는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 중독이 나타나는 애들이 더 많은 요즘보다는 많이 적었다. 당시 노인을 제외한 어른들중에 안경을 쓰는 사람은 극소수의 IT계열 엘리트나 학자, 보급이 널리 되기 전의 비싼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소수의 엄친아들 밖에 없어서 당시에는 안경을 쓰면 사람들이 다 집안이 잘살거나 아니면 공부좀 한 똑똑하고 저명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 요즘 안경을 쓰는 사람들이 너드 이미지를 벗기위해 라식수술을 받는 경우가 일부 있는것을 보면 대조적이다. * 압축 경제성장에다가 환경에 대한 규제가 없어 전국의 대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들이 심하게 오염된 똥물 하천이었다. 물론 이로인해 1990년대 후반부터 환경에 대한 규제가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많은 노력을 통해 2000년대부터는 죽어가던 하천들이 생태하천으로 다시 거듭났다. * 숙박업소는 일부 유명한 호텔들을 제외하고 지금처럼 모텔들이 없었고 조금 허름한 여관들이 많았다. 가족이나 친구 단위로 놀러갈때 잡는 펜션 역시나 환경이 다소 열악했으며, 지금처럼 내집처럼 아늑하고 깔끔한 펜션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 시골, 도시지역 가리지 않고 초등학교 운동회는 동네 축제였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끼리도 서로 모여서 담소를 나눴고 저렴한 값에 음식, 중고품을 분양하는 바자회도 중간중간 열렸다. * 1991년도에는 단 돈 1000원으로 친구들끼리 모여 푸짐한 과자파티를 할 수 있었다. 1999년도에는 이미 화폐가치가 많이 하락했지만 그래도 1000원이면 혼자서 배불리 군것질을 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 자동차는 요즘 시중에 나오는 차들처럼 곡면이 발달 되어있지 않고 제법 각이 진 투박한 디자인이었다. * 도시에서 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작은 주택에 거주했다. 1990년대에 들어 잘 계획된 신도시가 생기면서부터 아파트가 주목을 많이 받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야 아파트가 거주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남자가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하는 파렴치한 "보쌈" 문화가 곳곳에서 일어났고,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남자가 본인이 좋아하는 여자를 따라다니는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21세기 현재 시점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스토킹으로 신고되어 쇠고랑을 차게되고 몇년 동안 감옥살이를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되는 부분이다. * 대한민국에 과학기술 인프라가 충분히 적립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연구분야가 많이 개설되어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정규직 연구원, 교수가 되기 매우 수월했다. 당시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가 않았기 때문에 이런게 가능하기도 했었다. 다만 윗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아랫사람이 의무적으로 장기자랑도 해야되는 등 구시대적인 풍토가 더러 있었는데, 이런 문화가 2010년대에 들어서야 없어지기 시작했다. * 대한민국의 대기업은 현대, 대우, 삼성 이렇게 세 그룹이 삼국지을 썼으며 이 중에도 특히나 정주영 회장 시대의 현대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였다. 사실 대우는 IMF사태 이후로 공중분해 되면서 다른 회사들에 인수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현대는 정주영 회장의 사망 이후로 자식들끼리의 내부 분열로 갈라졌으며,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개혁으로 오히려 더 강성해져서 21세기에 가장 막강한 대한민국 기업이 되었다. * 1990년대는 정치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이렇게 3김의 정치적인 활동이 가장 왕성하고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