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0년대 (문단 편집) === 일본: [[잃어버린 10년/일본|잃어버린 10년]] === ||[youtube(kxYHz5MTi-k)]|| ||1990 - Yokohama Walkabout 横浜散歩 (901208) || ||[[파일:일본주식.png]]|| ||([[1988년]]~[[2010년]])일본의 [[주식]] 시장 흐름 ||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더 이상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게 되었다. ||[[파일:일본부동산.gif]]|| ||([[1980년]]~[[2010년]])일본의 [[집|주택]] 시세 흐름 ||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폭락은 매우 유명한 거품붕괴의 선례가 되었다. [[1990년]], 일본은 [[주식]]과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10년간의 장기불황에 접어든다. [[대기업/일본|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고 평균 성장률은 0%에 달했다. || [kakaotv(nVqaaCQ12Zw$@my)] || ||이웃 나라 이야기 2부 필패신화 || 해당 시기를 일본인들은 '''[[잃어버린 10년/일본|잃어버린 10년]]'''이라 칭한다. 이 불황은 [[2010년대]]까지도 지속되어 '''잃어버린 20년''' 또는 '''잃어버린 30년'''라는 명칭으로 대체되었다. || 1.경기부양 || → || 2.부동산 거품 양산 || → || 3.거품 붕괴 || → || 4.경기 침체/1번 경기부양으로 무한 반복 || 이후 일부 경제학자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은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주식 폭락을 예로 들면서 경기 부양으로 인한 거품양산과 그로 인한 거품붕괴, 침체의 사이클에 대하여 설파하게 된다.[* [[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0/15/2013101503266.html|어설픈 경기 부양과 인구 감소로 집값 폭락한 일본]]] 만화가 이원복 교수는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1권에서 1990년대 일본 암흑기 형성 원인으로 경직된 관료주의,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정부패, 고품질로 인한 고비용, 낮은 소비율, 연공서열 및 종신고용제의 폐해 등 후진국적 요소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980~1989)일본과 주요 국가의 명목 GDP 흐름[* [[http://www.imf.org/external/pubs/ft/weo/2014/02/weodata/weorept.aspx?pr.x=31&pr.y=13&sy=1990&ey=1999&scsm=1&ssd=1&sort=country&ds=.&br=1&c=924%2C132%2C134%2C158%2C112%2C111%2C542&s=NGDPD&grp=0&a=|(1990~1999)일본과 주요 국가의 명목 GDP 흐름]]]||<|2>1990년||<|2>1991년||<|2>1992년||<|2>1993년||<|2>1994년||<|2>1995년||<|2>1996년||<|2>1997년||<|2>1998년||<|2>1999년|| ||단위: 10억 달러(약 1조 원) || ||[[미국]] 전체 [[명목 GDP]] || 5,979|| 6,174|| 6,539|| 6,878|| 7,308|| 7,664|| 8,100|| 8,608|| 9,089|| 9,660|| ||[[일본]] 전체 [[명목 GDP]] || 3,103|| 3,536|| 3,852|| 4,414|| 4,850|| 5,333|| 4,706|| 4,324|| 3,914|| 4,432|| ||[[독일]] 전체 [[명목 GDP]] || 1,547|| 1,815|| 2,068|| 2,008|| 2,152|| 2,525|| 2,437|| 2,159|| 2,181|| 2,133|| ||[[프랑스]] 전체 [[명목 GDP]] || 1,278|| 1,279|| 1,411|| 1,331|| 1,404|| 1,610|| 1,614|| 1,462|| 1,512|| 1,502|| ||[[영국]] 전체 [[명목 GDP]] || 1,024|| 1,069|| 1,112|| 998|| 1,080|| 1,181|| 1,243|| 1,384|| 1,477|| 1,518|| ||[[중국]] 전체 [[명목 GDP]] || 404|| 424|| 499|| 641|| 582|| 756|| 892|| 985|| 1,045|| 1,100||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 284|| 332|| 356|| 391|| 458|| 559|| 603|| 560|| 376|| 486|| 일본은 성장 동력이 꺾여 오히려 경제규모가 줄어든 연도([[1996년]], [[1997년]], [[1998년]])도 있었던 시기다. 그래도 거시경제면으로 바라보면 경제의 규모는 여전히 세계 2위였다. 그리고 90년대초에 흔들렸던 경제가 90년대 중반에 다시 완연하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기에 예전처럼 미국을 앞설 수 있다는 견해는 많이 사라졌지만 미국과 함께 투톱의 경제대국의 모습을 유지할 거라 봤었다. 하지만 미국과의 격차는 점차 고착화되었으며 미약하지만 차이가 점점 벌어졌다. 게다가 유럽 국가들이 조금씩 일본을 추격하고 있었으며 한국과 중국도 경제 성장기에 접어든다. 국민들로부터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보수 기득권층과 경직된 관료주의로 난항을 겪었다. 정치적으로는 변화에서 회귀로 대변되는 시기인데, 만년 여당 자민당은 1991년 교와 스캔들, 1992년 사가와규빈 스캔들까지 각각 터져 국민들의 신임을 잃었다. 이에 일부 자민당 의원들이 신생당, 일본신당, 신당사키가케 같은 새 정당들을 만들어 공산당을 뺀 타 야당과 연합했고, 1993년 7월 총선에서 자민당을 쓰러뜨려 정권을 잡아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총리로 앉힌 연립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자민당만큼 국정수행을 할 역량이 딸리다 보니 1년도 못 가 무너져 1994년 자민당이 사회민주당과 연합정권을 수립해 혼미상태로 접어들었고,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집권 후 자민당 독주체제로 자리잡았다. 사회 면에선 1995년은 비극의 해였는데, 고베 대지진으로 충격을 준 데 이어 옴진리교 사린가스 살포사건, 쿠니미츠 경찰청장 피습 사건으로 '안전 신화'가 무너졌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