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0년대 (문단 편집) == 개요 == [[서력기원]] [[1990년]]부터 [[1999년]]까지를 가리키는 말. [[세계]]적으로는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확립된 시기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이어지고 있던 [[경제]] 호황이 정점을 찍었던 [[황금기]]이자, 동시에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한 최악의 경제적 시련기이기도 했다. [[1990년]], [[독일 재통일|동서독 통일]]과 이듬해 발생한 [[소련|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사건 등, 체제 경쟁에서 [[공산주의]] 진영이 몰락하고, 자유([[자본주의]]) 세계가 승리하면서 세계 질서는 미국 주도로 재편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 50여 년간 지속되어 온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드디어 인류에게 평화의 시대가 찾아 오는가 했지만, 냉전 시절 잠자고 있던 극단적-폐쇄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려 [[콩고 전쟁]]·[[걸프 전쟁]]·[[유고슬라비아 전쟁|유고슬라비아 내전]]·[[체첸 분쟁|체첸 사태]]·[[보스니아 전쟁|보스니아 내전]]·[[코소보 전쟁]] 등이 세계 각지에서 터졌다.[* 특히 1994년 상반기에는 [[보스니아]], [[르완다]], 하반기에는 [[체첸]]이 각각 내전을 겪으며 '''현실에 지옥도가 펼쳐져 폐쇄적 민족주의의 단점을 제대로 드러냈다.'''] 1990년대는 '''정보 혁명'''[* 과거 [[선사 시대]]의 [[농업 혁명]], [[18세기]]의 [[산업 혁명]]과 더불어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진보시킨 3대 혁명 중 하나에 해당된다. 그 첨병은 '''당연히 [[인터넷]]이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다. 즉 '''디지털'''이라는 정보전달방식이 인류에 첫 등장했던 시기인 셈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획기적인 등장으로 [[휴대전화]], [[무선호출기]], 고성능 컴퓨터 등 여러 통신 기기들이 등장해 대중화되었다. 특히 '''[[월드 와이드 웹]]'''으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등장은 세계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국경 없는 세계' 라 불리는 정보망 사회가 구축되는데 성공했고 제약 없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물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디지털 세계에서의 새로운 문제점[* 불법사이트, 저작권, 사생활 침해, 디지털 자료의 짧은 수명 등.]이 산재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이러한 인터넷의 원년은 '''[[Windows 95]]'''가 출시된 '''[[1995년]]'''으로, 대체적으로 이 시기부터 디지털이 인류 사회에 확립된 것으로 본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한 2010년대부터 90년대는 '아날로그'의 시대로 여겨지고 있는데, 정확히는 1990년대는 멀티미디어와 디지털이 처음 시작된 시기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과도기에 가깝다.[* 소위 아날로그라고 불리는 PC통신, 무선호출기, 다마고치 등도 전부 디지털이다. ~~다만 스마트폰 시대의 디지털에 비하면 한 없이 퀄리티가 약할 뿐~~] 이 때문에 세대별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구분하는 시기가 다르게 여겨지기도 한다.[* 2020년대 기준 기성세대가 된 50대 이상은 [[1980년대]]~[[1990년대]] 초반까지를 아날로그로 꼽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인터넷과 컴퓨터의 대중화가 디지털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밑 세대인 30~40대는 1990년대 및 2000년대 초반까지를 아날로그 시대라고 뽑고, 10~20대 젊은 세대는 [[2000년대]]까지를 아날로그가 이어졌다고 평하기도 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가 두 정보체계의 '''과도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세대들도 스마트폰 등장 이후에는 완전 디지털 세상이 된다는 것에는 대부분 의견이 모아지는 편.] 인터넷을 필두로 한 정보 혁명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격변을 가져왔고 결국 [[2010년대]]에 스마트폰 등 '스마트'가 붙은 IT기기들이 일상생활 속 남아있는 아날로그 기기들까지 대체하면서 완전히 정착되었으며, 전자 및 IT업계도 1990년대 중반까진 '멀티미디어'를 슬로건에 강조시켰고,[* 예시: '멀티미디어의 삼성전자', '하이미디어(LG전자)', '멀티미디어의 뉴프론티어(현대전자)' 등.] 1996년을 기점으로 제품명이나 슬로건 등지에 '사이버'나 '디지털'을 갖다붙였다.[* 예시: 삼성 디지털(삼성전자), DIGITAL ez LG(LG전자), Cyber World Leader(한국통신) 등.]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 출범과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1995년 [[세계무역기구]] 출범으로 금융과 경제 영역에서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화가 아주 활발히 진행되어 경제 장벽을 무너뜨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경제 정글'을 만들어냈는데, 미국은 이런 환경에서 아주 극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데 물론 중남미 지역은 그런거 없었다. 게다가 구미권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전세계 경제체제를 미국/유럽식 경제체제로 포맷시키도록 만드는 데 앞장섰고, 이에 따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처럼 현지 특화 자본주의나 독자적 경제체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1997년 동남아 경제위기 및 한국 외환위기가 터졌고, 무한경쟁에 따라 빈부격차도 점점 커져 2000년대 들어 20:80 사회로 고정되는 데 기여했다. 또 새천년을 앞두고 세계 도처에서 '반세계화 시위'도 터졌다. 신자유주의가 무르익다 보니 세계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유일한 승자처럼 인식돼왔고,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인류의 역사는 자본주의에서 끝난다고 전망했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보수주의가 정국을 주도했던 1980년대와 달리 전세계적으로 ‘신진보주의(신자유주의를 가미한 진보)’의 시대였다.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대표적으로, 1990년대 말 [[유럽]]은 대부분 제3의 길 성향의 사민주의 정권이 집권했다. 이른바 ‘장밋빛 유럽’. 다른 한편으로 서구권 등 선진국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PC)' 운동이 처음으로 정치권의 주류에 진입해, 일본 자민당, 이탈리아 줄리아노 아마토 내각 등 부패정권을 투표로서 몰아냈고, 미국에선 [[빌 클린턴]] 정부의 주도로 '흑인(Black)'을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 경제는 점차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북유럽 국가들 중 냉전의 수혜자였던 핀란드가 소련 붕괴로 경제불황을 겪었고, 스웨덴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 서유럽 선진국조차도 과도한 복지비용, 강성 노조, 실업률 증가, 공장 해외이전 등 문제점이 폭로되며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북한]]은 1990년대 초 소련 등 공산주의 정권 붕괴에도 나라 문을 단단히 닫고 살았고, 1992년 IAEA 핵사찰을 받아들인 후 처음으로 핵개발 의혹이 불거졌다. 1994년 반세기 가까이 집권하던 [[김일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김정일]]이 뒤를 이어 1997년 정식 집권 전까지 '유훈통치'란 비정상적 체제로 돌입했다. 하지만 동구권 붕괴와 제3차 7개년 계획 실패, 각종 자연재해, 수교국 감소 등으로 인한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 중국과 러시아 파견 노동자를 통한 본격적인 북한 주민의 이탈이 시작됐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태국]]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습격한 [[외환위기|아시아 금융위기]]로 인도네시아에서는 30년간 집권한 수하르토 정권이 퇴진하였고, 1999년에 동티모르가 국민 투표로서 독립을 선언하는 단초를 마련했다. 말레이시아는 외환위기를 헤지펀드 등 해외 금융업계의 농간이라 보고 해외 금융자본을 철저히 봉쇄했다. 동남아에선 미얀마나 라오스 등 몇몇 국가들을 빼고 '민주화와 평화' 진전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필리핀은 1992년 피델 V. 라모스 전 국방장관이 수십년 만에 열린 자유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해 공산당을 합법화시켜 내전 종식의 기반을 마련했고, 1980년대 이래 무너진 경제 재건에 주력했다. 태국 국민들은 1992년 5월에 목숨까지 걸고 수친다 내각을 퇴진시켜 군부정권을 60년 만에 종식시켰고, 캄보디아는 1993년 UN 감독 하에 독립 이래 최초로 자유선거를 치러서 입헌군주국으로 회귀 후 50여 년에 걸친 내전을 종식시켜 '킬링필드' 이미지를 벗었다. 해체된 구소련 지역에게는 그야말로 [[헬게이트]]의 시대였다. 체제전환의 진통과 외국 자본 및 재벌들의 약탈에 나라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유럽 연합]]에 편입되어 구제를 받을 수 있었던 [[발트 3국]]조차도 정치 및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9천 달러에 육박하던 러시아권의 경제는 이 시기 바닥을 찍게 되었으며, [[2000년]] 푸틴의 집권으로 그나마 상승세를 그리는 중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세력권은 쪼그라들었고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인구는 줄었고, 아직 독립을 못한 무슬림 자치구 체첸과 타타르스탄, 불교도 자치구 칼미크 공화국 등이 자주독립운동을 끈질기게 요구하여 러시아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구소련에 속했던 나라들 말고도 공산권에 속했던 여러 나라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질개선을 하느라 여러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그래도 비교적 그 정도가 덜한 편이었지만, 역시 힘들었고, [[폴란드]]도 심한 경기 부침을 겪어야 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내전]]까지 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는 전술한 대로 폐쇄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1990년대 내내 전쟁터였던 셈이다. 심지어 쿠바도 1995년 보트피플 사태까지 터졌다. 냉전 시기 중립을 유지해 소득을 챙겼던 스위스와 핀란드도 혼란과 경제위기로 몰아닥쳤다. 반면 [[아프리카]]는 이 시기를 즈음해 '폐쇄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소말리아, 르완다, 라이베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앙골라 등을 비롯해 내전이 일어나면서 지옥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부족전쟁이 주 원인인데[*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 등 일부 학자/전문가들이 언급했듯, 식민지 시절 열강이 멋대로 그은 경계선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나마 이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지만 적대 관계를 청산한 것은 아니다. 북쪽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진짜 무시무시한 폭풍]]이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도 소련군 철수 후 군벌들이 대립하다 1997년에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해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부호 출신인 오사마 빈 라덴은 '알카에다'의 수장으로서 1998년 케냐 및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테러를 계기로 반미 무장투쟁의 선봉으로 점차 올라섰다. ||[youtube(D_s6OEz8W7Y)]|| ||[[https://m.youtube.com/watch?v=jnQu3sIhJws&t=481s| ]][[https://m.youtube.com/watch?v=oS91TOhPMfk&t=54s| ]][[https://m.youtube.com/watch?v=jxKTgCtSAcc&t=3160s| ]][[https://m.youtube.com/watch?v=49OkXdLpOME&t=204s| ]]|| 이 연대에 음력 윤달이 생겼던 해는 [[1990년]] (5월), [[1993년]] (3월), [[1995년]] (8월), [[1998년]] (5월)이 있다. 이 연대에는 음력 윤5월이 2번 생겼으며, 특히 1998년 윤5월은 20세기 마지막 윤달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