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6년 (문단 편집) ==== 5월 ==== * [[5월]] 중: 전국노동자연맹 추진위원회(이하 전노추)가 결성되었다. * [[5월 1일]] * 서울지역 대학생 2백여 명이 독산동에서 가두시위를 하며 <5·1절 노동자해방투쟁의 날부터 광주민중항쟁까지>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 전국 천주교 수녀대표모임 한국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9일 기도'에 돌입하였다. * 광명 철산동에서 서노련 주도로 '노동자해방투쟁의 날'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 고문공대위는 ‘최근 고문 및 인권탄압 사례 보고대회’를 개최하였다. * 민통련은 민국련에서 탈퇴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이란-이라크 양국이 6년여 간의 전쟁 종식을 위한 8개항 계획에 합의하였다. * [[5월 2일]] * 대처 영국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 서울 올림픽대로가 개통되었다. * 서울대 대학원생 630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대한변협은 <1985년 인권보고서>를 발표해 고문과 수감자 폭행 등 인권침해 실태를 처음 폭로했다. * [[5월 3일]]: '''학생, 노동자, 시민 등 5천여 명이 '신민당 개헌추진위원회 경기/인천지부 결성대회' 시작 전에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벌이며 시위를 벌였다.'''([[인천 5.3 운동]]). * [[5월 5일]] * 경찰은 자민투와 민민투를 용공 좌익조직으로 규정해 주동자 27명을 전국에 수배했다. * 서울대 시위진압 작전 도중 가스차 1대가 폭발해 탑승자인 이강호 경사가 순직했다. * [[5월 6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민주화/인간화의 복음을 선포한다>라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김문수 등 서노련 중심인물 6명이 보안사에 의해 강제 연행되었다.(서노련 사건) * [[5월 7일]]: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 [[5월 8일]] * [[민통련]]은 기자회견에서 [[인천 5.3 항쟁]] 관련 입장을 밝혔다. *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는 <전국 목회자의 민주쟁취선언>을 발표하였다. * 전국 20개 대학생 6천여 명이 "전방입소 반대", "독재타도"를 외치며 교내시위를 벌였다. * [[5월 9일]] * 조계종 승려 152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정의실현 법조인회(이하 정법회)'가 발족되었다. * [[5월 10일]] * 한국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소속 교사 546명이 <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했다. * 흥사단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12일]] *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일본을 방문했다. * '서노련 노동자가족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리비아 정부는 자국 주재 서유럽 7개국 외교관/대사관직원 36명에 출국명령을 내렸다. * [[5월 13일]] * 미국 SDI 계획에 참여 중이던 101개 대학교 소속 과학자 6천여 명이 해당 계획의 연구를 거부키로 했다. * 일본 엔화 강세로 인해 국내 엔화 환율이 1백엔당 505원을 돌파했다. * 자유중국 정부는 중공에 넘어간 점보화물기와 승무원 송환문제에 대해 중공과 직접 협상키로 결정하였다. * [[5월 14일]]: '반제반파쇼투쟁 호남지역 대학연합'이 결성되었다. * [[5월 15일]] * '반외세 반독재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 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문교부는 <교육민주화선언> 참여교사 10명에 대해 사표를 종용했다. * 신일고 학생들이 <교육민주화선언> 관련 교사들에 대한 학교측의 징계 조치에 항의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 김수환 추기경은 CBS 라디오 <오늘을 생각하며>에서 언론민주화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 검찰은 서노련을 용공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에 대해 국보법 및 집시법 위반, 소요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고려대생 1천여 명이 비상 학생총회를 열어 전방입소 거부를 결의하였다. * 'KBS-TV 시청료 거부 범시민운동 여성연합'이 발족되었다. * 방송대 교수 16명이 시국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주교육실천협의회(이하 민교협)가 발족되었다. * [[5월 16일]]: 인천교도소 수감 양심수들이 소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하였다. * [[5월 17일]] * '반외세 반독재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 투쟁본부’측은 이날 개최되려던 ‘광주학살 원흉처단과 민족민주헌법제정민중회의 쟁취를 위한 민중대회’를 경찰이 원천봉쇄하자 기습 가두시위를 벌였다. * 전국 주요 대학생들이 광주항쟁 6주년을 맞아 교내외 집회 및 시위를 벌였다. * [[5월 18일]] * 5.18 희생자 유족과 대학생 6천여 명이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광주항쟁 6주기 추모식을 벌인 뒤 시위를 벌였다. * 명동성당 청년신도 1천여 명이 광주학살 진상규명대회와 추모미사 뒤 가두시위를 벌였다. * 수원교도소 수감 양심수들이 금치조치 철회 및 운동시간 허용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5월 20일]]: 서울대 원예과 1년생 이동수가 학생회관 4층 옥상 난간에서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및 “미제국주의 물러가라”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 [[5월 21일]]: 박종진 서울대 민민투위원장 등 학생 21명이 부산 미국문화원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제2차 부미방 사건) * [[5월 22일]]: 북한측은 '고구려문화전'을 일본 도쿄에서 개막했다. * [[5월 23일]]: [[문익환]] 민통련 의장이 서울대 강연과 관련해 구속되었다. * [[5월 26일]]: KBS-TV 시청료거부운동본부는 서울 시내에서 기습 가두캠페인을 벌였다. * [[5월 27일]]: 한신대는 대학 중에서 처음으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비를 세웠다. * [[5월 29일]]: 주한미군노조는 미군 측의 한국인 노동자 감축에 항의하며 전국적 파업에 돌입했다. * [[5월 30일]] * 서노련 및 인노련 소속 해고 노동자 16명이 한미은행 영등포지점을 점거해 성조기를 불태우며 "독재타도", "미제축출", "8시간 노동제 쟁취" 등을 외쳤다. * 노태우-이민우 여야 대표가 회담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구성에 합의했다. * 전국 25개 출판사 대표 및 출판 관계자 70여 명이 외국인 저작권보호법 반대 궐기대회를 열었다. * [[5월 31일]] * 서울 YMCA 중등교육자회 등 4개 교육단체 소속 교사 350명이 명동성당에서 교육자율화를 결의하였다. * 정부가 컬러TV 등 301개 품목에 대해 수입자유화 조치를 내리면서 자유화율이 91%로 올랐다. *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개막식이 에스타디오 아즈테카에서 개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