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1980년 (문단 편집) ==== 4월 ==== * [[4월 1일]] * 재무부는 긴축기조와 건전재정운용 방침을 지속키로 결정하였다. * 평택화력발전소 1호기가 준공되었다. * 김수환 추기경은 부활절 메시지에서 부정과 불의의 장벽을 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설립되었다. * 현곡 양일동 통일당 총재가 세상을 떠났다. * 독립문 현저동 이전복원 공사가 완료되었다. * 경희대 등 전국 14개대생들이 어용교수 퇴진 및 학원자율화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고려원양 노동자 2,700여 명이 체불임금 7억여 원 청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금융노조는 임금 20.6% 인상을 요구하며 노동청에 조정신청을 냈다. * [[마츠다 세이코]]가 싱글 [[맨발의 계절]]을 통해서 아이돌 가수로 데뷔했다. * [[4월 2일]] * 신민당 당기위는 지구당 개편대회 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남원 등 3개 지구당위원장에 제명처분을 내렸다. * 홍대생 400여 명이 총학생회장 직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광산노조 지부장들이 동자부로 몰려가 임금인상을 요구하였다. * 일본 [[TBS 테레비]]를 통해 <[[울트라맨 80]]>이 전파를 탔다. * [[4월 3일]] * 정부는 대통령 직속기구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발족하였다. * 서울대는 총학 구성을 승인하는 학생자치기구 개설 조항을 학칙에 신설한다고 결정하였다. * 세종대생들이 재단-학원 분리 및 어용교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홍대생들이 이사진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경기대생 100여 명이 학장-어용교수-재단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한국체대와 서일공전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건대 선수 [[황병일]]이 대학야구 춘계연맹전에서 원광대를 상대로 한국 야구사상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였다.[* 이전까지는 사이클링 히트라는 개념이 한국 야구계에 없었기 때문에 나왔더라도 기록되지 않았다.] * [[4월 4일]] * YS-DJ 양측은 회담에서 범민주권 통합에 대한 의견차를 보였다. * 서울대교수협은 족벌학원경영자 사퇴와 군사교육 개선, 교수재임용 철폐, 교수협의회 결성 등을 결의하였다. * [[4월 6일]] * 전남-경남 등지에서 태풍을 동반한 집중호우로 9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었다. * 한국 축구대표팀이 모스크바 올림픽 1차 예선에서 말레이시아에 1-2로 패해 본선진출이 좌절되었다. * [[4월 7일]] * 공화당 의원총회는 이후락 등 정풍운동 주도자 4명을 제명했다. * 검찰은 경찰의 수사권독립 주장을 반박한 <소위 경찰대화자료의 허위성>이란 유인물을 냈다. * 통일당은 현곡 양일동 총재의 사회장을 거행하였다. * 경희대생 500여 명이 농성 도중 조영식 총장 사퇴요구 등을 담은 <경희인의 백서>를 배포하였다. * 유도대생 300여 명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미국 정부가 이란과 단교했다. * [[4월 8일]] * 신현확 총리는 경찰 수사권독립을 둘러싼 검-경 간 마찰에 대해 양측의 자제를 촉구하였다. * 국산 구축함 1호 '울산함' 진수식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개최되었다. * [[4월 9일]] * 청피노조가 임금인상 및 퇴직금제, 노동 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한양대 측은 교직원을 사칭한 운동부원 40여 명을 동원해 농성 학생들을 폭행했다. * [[4월 10일]] * 한양대생 1,500여 명은 '농성학생 폭행사건'에 대한 김연준 총장의 해명을 요구하며 총장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 성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울릉도 저동항이 준공되었다. * [[4월 11일]] * 신현확 총리는 미국 NYT지 회견에서 대학가 소요사태 등 사회 혼란으로 계엄령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 경제기획원은 '유통산업근대화 기본계획'을 마련하였다. * 서울대생들은 '4월 혁명 기념제 및 고 김상진 열사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 서울지역 9개대 학생대표들이 학원사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서울노동위는 롯데, 크라운, 동양, 서울식품 등 4개 식품업체에 근로시간을 하루 12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토록 직권조정을 발동하였다. * [[4월 12일]] * 국회는 4월 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하여 5월 임시국회에 보고/접수시킨 뒤 정부에 이송키로 합의하였다. * 동일방직복직투위는 복직을 요구하며 거리 선전전 및 가두시위를 벌였다. * [[라이베리아]]에서 육군 상사 [[새뮤얼 케니언 도]]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점거하고 대통령 윌리엄 톨버트를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 [[4월 13일]] * 세종대생들이 주영하 학장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성대생들이 군사교육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 경희대생들이 조영식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 [[4월 14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중정부장 서리로 겸직발령을 내렸다.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심의했던 개정안 조항을 정리해 소위 활동을 종결지었다. * [[4월 15일]] * 육군 계엄고등군법회의는 YWCA 위장결혼식사건 항소심에서 윤보선, 함석헌의 항소를 기각했다. * 문교부는 1986년 하계 아시안게임을 서울서 유치키로 결정하였다. * 진해화학노조는 임금인상 및 근로복지시설 개선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생 2,000여 명이 대통령 특별담화에 대한 항의집회를 열었다. * [[4월 16일]] * 최규하 대통령은 정부의 정치일정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신민당은 '학원사태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 청평양수발전소 1~2호기가 준공되었다. * 서강대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4월 17일]] * 김옥길 문교장관은 학교재단은 공익법인이니 학교-학생 양자는 타협하고 상호 책임지는 선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금융노조 8개지부 간부 68명이 임금인상 및 금융기관 자율화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IMF는 중공의 가입신청을 승인하였다. * [[4월 18일]] * 신민당은 마포당사 4.19 20주년 기념식에서 4.19 정신계승과 민주구현 결의를 다짐하였다. * 문교부는 최근 학원사태 관련 자료에서 휴교 19, 철야농성 24, 어용교수 퇴진요구 24, 시설확충 요구 11, 학원자율 요구 20개교로 각각 잠정 집계했다. *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대표 6차 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다. * 청피노조 농성이 노동청의 중재로 협상이 타결되며 종료되었다. * 청피노조는 농성 해단식에서 <8백만 노동자에 보내는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 반도상사 인천공장 노동자 700여 명이 농성 8일만에 임금인상을 쟁취하였다. * [[짐바브웨]]가 [[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했다. * [[4월 19일]] * 문공부는 1975년 사이공 함락 때 억류되었던 이대용 공사 등 3명이 귀국했다고 밝혔다. * 중앙재해대책본부는 강풍/폭우로 2명이 숨지고 14명이 실종되었다고 밝혔다. * '한국지퍼(YKK)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4월 20일]] * 정부는 6월부터 KBS-TV를 통해 <가정고교> 프로그램을 방영키로 결정하였다. * 광운공대 설립자 화도 조광운 박사가 세상을 떴다. * [[4월 21일]] *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신현확 총리의 정부주도 개헌 회견을 중시하고 신 총리가 위원회에 출석토록 요구하였다. * 산선 총무 서경석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정명자가 구속되었다. *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소속 광부 7백여 명이 임금 인상 및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탄광촌을 점거해 경찰과 대치하였다.([[사북사건]]) * [[4월 22일]]: 강원 사북읍에서 광부-경찰 간 충돌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광부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4월 23일]] * 신현확 총리가 국회 헌법개정특위 출석을 거부했다. * 외무부는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방침을 대한체육회에 통보하고 불참을 권고했다. * 서울대 농대생들이 어용교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4월 24일]] * 사북사태대책본부-광부대표 양측은 노조 집행부 총사퇴, 상여금 연 400% 인상 등 11개항에 합의하였다. * 사북사태대책본부는 피해 규모가 사망자 1명, 부상자 100여 명, 건물파괴 100여 채라고 밝혔다. * 한국노총은 사북사태가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3권 규제로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해 발생한 거라며 노동질서 회복을 주장했다. * 서울지역 14개대 교수 361명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서울대 총대위원회는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 서강대 1학년생들이 병영집체훈련 거부를 결의하였다. * 성대 1학년생들이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며 농성을 벌였다. * 항공대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미국]] 특수부대가 주 이란 미대사관에 억류된 자국인 인질구출에 돌입하다 실패했다. * [[4월 25일]] * 정부와 강원도경은 사북사태 주동자 30여 명이 외지로 도피했음을 밝혀내고 주동자 수사에 착수했다. * 정부는 '임대가옥 입주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하였다. * [[현대제철|인천제철]] 노동자 700여 명이 현 경영진 퇴진 및 기본급 책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국제실업 해외근로자 가족 및 국내 근로자 2백여 명이 체불임금 청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일신제강 노동자 600여 명이 노조지부장 사퇴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30여 명이 복직 및 노조집행부 퇴진을 요구하며 한국노총 위원장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 [[4월 26일]] * 신현확 총리는 자신과 대통령의 1981년 대선출마 가능성 및 신당 관련설을 부인했다. * 정부는 컬러TV 시판시기를 8월로 잠정 결정하였다. * 조계종 6대 총회는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월주 스님을 새 총무원장으로 선출하였다. * [[4월 28일]] * 국민대생들이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서울대 학장회의는 현 군사교육제도의 조속개혁을 당국에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 신민당 사북사태진상조사단은 노조간부 직선 등을 통해 노조민주화와 자율화를 촉구하였다. * 김녹영 통일당 총재대행은 만주회복 때까지 모든 재야인사 및 정당사회단체의 연합전선 구성을 제창하였다. * [[동국제강]] 부산공장 노동자 1,000여 명이 민주노조 인정 및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였다. *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해고자 복직 및 임금인상, 노조 정상화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였다. * [[4월 29일]] *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유신세력 퇴진 및 대통령 중심제/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촉구 당론을 밝혔다. * 전두환 중정부장서리는 본인의 부장서리 및 보안사령관 겸직이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건대생 20여 명이 이사진 전원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경기대 행정학과생 30여 명이 전병두 학장 퇴진을 요구하며 학장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금성통신 안양공장 노동자 3,000여 명이 임금인상과 어용노조 집행부 퇴진 등을 요구하며 운동장 및 강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반도상사, 대한모방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동국제강]] 부산공장 노동자 1,000여 명이 임금인상 농성 도중 출동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 [[4월 30일]] * 최규하 대통령은 사북사태와 관련해 노사문제는 법절차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계엄사는 전군지휘관회의에서 학원사태 등에 우려를 표명하며 폭력행위를 엄단키로 결의했다. * 고려대 총학이 '제1차 민주화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였다. * 서울 오산고생 400여 명이 교장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율리아나 네덜란드 여왕이 [[베아트릭스]] 공주에게 양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