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1970년대 (문단 편집) === 개괄 === 1970년대 문화를 포괄하는 단어는 '청년문화'이다. 1960년대 말 68혁명으로 형성된 저항주의적 청년문화는 1970년을 전후하여 한국에도 파급됐는데, [[밥 딜런]]이나 존 바에즈 등 [[반전]] [[포크송]] 가수들의 노래가 인기를 끈 것이었다. 특히 바에즈의 가 번안곡 <[[내 고향 충청도]]>가 된 것처럼 번안 포크송도 유행했다. 거기에 [[청바지]]와 [[생맥주]]까지 인기를 끌면서 '통블생(통기타, 블루진(청바지), 생맥주)'이란 신조어를 낳아 청년문화가 형성됐고, 이미 1967년에 [[윤복희]]가 퍼뜨린 [[미니스커트]]도 불티나게 유행했다. 이 시기의 청년문화는 기성세대의 [[왜색]] 대중문화에 식상해진 청년이나 청소년에게 호소력이 있었지만, 서구권 청년문화와 달리 한국의 청년문화는 대항/비판문화라기보다 독점자본에 의한 [[부르주아]] 삘이 나는 대중문화와 혼재돼 있었다. 당시에 [[맥주]]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만 마실 수 있는 비싼 술이었고, 아무리 [[운동권]]들이 밥 딜런의 노래나 [[양희은]]의 <[[아침이슬]]>, [[김민기]]의 <[[친구(김민기)|친구]]>를 부른다 해도 주류 대학사회나 일부 운동권에선 통블생 자체를 '향락주의적 문화'라 하거나, 외국 문화를 추종하는 [[딴따라]]가 어떻게 우리의 우상이 되느냐고 부정적으로 봤으며 진정한 목소리는 공동체 정신과 민중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또 서양 저항문화의 표피만 따왔다는 지적도 있으며 운동권 입장에선 절대악인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데엔 통블생이 방해 요소라고도 했다. 다른 한편 요정정치와 [[정인숙 사건]]으로 대표되는 박 정권의 색정/향락문화의 일환으로 조장된다는 쪽도 있다. 유신체제 내내 청년문화는 극심한 탄압을 받아왔다. 경찰은 통기타를 빼앗거나 가위를 들고 장발을 단속하는가 하면, 미니스커트에도 자를 들이댔다. 특히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군국주의적 사고관을 지닌 [[박정희]]는 장발과 같은 자유로운 대중문화 자체에 혐오감을 표했는데, 1973년 개정 [[경범죄처벌법]] 시행 후 장발 및 미니스커트 단속을 합법화했고, 박정희가 TV를 보다 손가락 한번 가리키면 장발 방송인이 출연금지될 정도로 공포분위기가 조성됐다. 또 경찰은 시내 곳곳에 가위를 들고 상주하며 각 접객업소에 장발자의 출입을 금지하는 푯말을 붙여놓고, 공항 측은 외국인 장발족의 입국을 막았다. 1975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윤리위원회가 '공연예술 정화대책'을 발표한 후 무더기로 금지곡이 양산됐고, '대마초 파동'으로 포크송과 록 음악도 고사 직전의 타격을 받았다. 박 정권은 문화검열 기준으로 국론 분열 및 민족 주체성 저해, 퇴폐성을 내세워 엄숙주의를 견지했으나, 기생관광 같은 향락문화는 장려하는 [[내로남불]]스런 모습을 보였다. 박 정권의 가요대학살로 포크송 대신 [[트로트]]가 다시 장악했으나, 청년들의 새 문화에 대한 열망은 더욱 높아져 '하이틴 영화'와 '그룹사운드' 같은 새로운 대중문화가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