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70년대 (문단 편집) === 세계 === ||[youtube(XxORKM529Gk)]|| ||New York City 1970s Part 1 - [[https://youtube.com/@nbcuarchives|NBC Universal Archives]] || [[미국]]과 [[소련]]의 양강 대결이 이 연대에서도 이어졌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서 간신히 벗어났지만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1975년]] 멸망하는 등 일시적 쇠퇴를 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70년대 후반에도 오일쇼크와 경제위기, [[지미 카터]] 시절의 [[이란 이슬람 혁명]]([[호메이니]] 집권),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도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우려하게 했다. 리더십 측면에서도 닉슨의 사임 이래 포드와 카터가 모두 재선에 실패했다. 영국 역시 [[영국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반면 소련은 오일쇼크를 바탕으로 [[브레즈네프]] 정권이 그나마 안정된 경제사정을 유지하는 등 일시적으로 호시절을 보낸다. 80년대의 서구(영미)권의 신보수(+신자유주의) 우위와 공산권 붕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은 점차 공산주의로 기울었고, CIA가 사주한 칠레 쿠데타로 반미감정이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남미에서도 저변에서 친소 감정이 확산되었다. 프랑스는 나토에서 탈퇴했고 이베리아 반도, 독일에서는 미국이 소련보다 나은 선택이라 확신하지 못하는 좌파 정당들이 집권했다. 나토 동맹국인 그리스와 터키는 키프로스 문제로 전쟁 직전까지 갔다. 영국은 지속된 경기 침체와 불만의 겨울로 엉망이었으며, 미국 국내도 마약과 범죄, 인종갈등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에게 손을 벌리며 [[데탕트]](화해)를 기획한다. [[1971년]]에 [[대만]]을 [[상임이사국]]에서 축출하고 [[UN]]에 가입한 [[중국]]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이때부터 상임이사국으로 부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72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과 [[일본]] 국교가 회복되었다. [[여담]]이지만 [[리처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회복세를 나타나기는커녕 오히려 하락세를 걷고 있다. 한편 중공은 [[1976년]]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이 잇달아 죽고 [[화궈펑]]에 의해 [[4인방]]이 축출되고 [[덩샤오핑]]이 복권되면서 개방의 물결이 시작되게 된다. 대만에서는 [[장제스]]가 비슷한 시기([[1975년]])에 죽고 [[옌자간]]에 거쳐 아들 [[장징궈]]가 뒤를 잇는다. [[포르투갈]]에서는 철권 독재 정치를 펼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전 총리가 1970년 사망하고 1974년 [[모잠비크]], [[앙골라]], [[기니비사우]] 등 아프리카 식민지 전쟁에 참전했던 군부내 소장파 장교들을 중심으로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 살라자르의 뒤를 이어 독재정치를 펼치던 마르셀루 카에타누 총리가 축출되면서 오랜 극우 독재정권이 붕괴되었고 포르투갈의 이웃나라 [[스페인]] 역시 이듬해인 1975년 스페인 내전을 통해 집권한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죽고 프랑코 사후 후안 카를로스가 국왕이 되어 왕정이 부활하면서 [[남유럽]]의 독재체제가 종식되었다. 반면 [[칠레]],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페루]] 등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군부 쿠데타와 군부 독재와 같은 군부의 정치 개입이 가중화되었고 [[브라질]]은 군정이 계속되었다. [[1972년]] 당시 옛 서독에서 열렸던 [[1972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들을 노렸던 범죄사건 '''검은 구월단 사건'''이 터져서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갈등이 고조되었고, 이는 여러 차례의 [[중동전쟁]]으로 표면화 되고, 이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이어진다. 또한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캐나다]]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을 고수하여 논란을 일으켰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친선경기를 벌였던 [[뉴질랜드]]의 참가를 허용하자 이에 범아프리카 국가들이 반발하여 불참하는 등 정치적 성향을 거부하고 있던 올림픽 정신이 정치색깔과 인종차별 색깔 등으로 물들게 되는 계기를 낳기도 하였다. [[1979년]]에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그리고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판 [[베트남 전쟁]]이 된다. 아프가니스탄 역시 헬게이트에 빠진다. ||[youtube(I081OvfZZtc)]|| ||Japan in the seventies (2) 70年代の日本 || 일본에서는 [[1960년대]]에 이어서 좌파 투쟁이 치열했으나 70년대 일본의 좌파 운동은 내분으로 인해 구심점을 잃고, 그 가운데 [[적군파]]처럼 과격한 무장 투쟁으로 대중들의 호응을 스스로 버리고 만다. 한편 경제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하면서 일본 국민들은 좌파 사회운동 등 정치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돈벌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집권 후 '일본열도 개조론'이 나오기까지 했다. 극소수의 [[에도 시대]] 출생자들이 1970년대에도 살아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공산당이 전성기를 맞고 자민당이 록히드 사건과 오일쇼크로 정권유지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가 이 시기였다. 하지만 [[일본사회당(1945년)|야]][[공명당|권]][[일본 공산당|의]] 분열과 [[오히라 마사요시]]의 죽음으로 정권을 계속 유지했다. 전술한 록히드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쉬쉬했던 정경유착이 폭로되어 국민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정경유착 근절' 이야기가 호응을 얻었으나, 정경유착은 점차 규모가 커져갔다. 나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던 시기이지만 석유파동을 이겨내고 경제가 좋아져 이때를 기점으로 일본은 현재와 같아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