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1970년대 (문단 편집) === 스포츠 === 1970년대 당시 한국 스포츠는 아직 영향력이 없었으나, 스포츠 자체가 지닌 국민의 일체감과 단결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 덕에 정권 차원에서 관심을 쏟았고, 이는 1980년대 들어 스포츠 강국으로 나아갈 자양분이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 인기를 끈 종목은 [[축구]]와 [[권투]], [[레슬링]]이었는데, 그 중 축구는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국민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아 국민 스포츠 지위에 올랐고, 아시아에서도 킹스컵 총 6회 우승(B팀 포함), 메르데카컵 총 6회 우승으로 각각 이름을 날렸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에 이르기까지 본선 진출을 매번 시도했으나 호주, 이란 등지에 패배하며 고배를 마셨고, 1972년 박스컵 준결승 때 버마에게 0-1로 지기도 했으나 여전히 사랑을 받았다. 이건 축구가 다른 종목에 비해 비교적 나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미 말했듯 정권의 전폭적 지원도 같이 작용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1971년부터 '박대통령배 쟁탈 국제축구대회'를 매년 열어 국민들의 관심과 열기를 모아 이를 정치적 기반으로 활용하려 했다. 또 다른 인기스포츠인 권투에선 [[홍수환]] 선수가 1974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아널드 테일러를 꺾어 김기수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 제패를 달성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란 유행어를 전 국민에게 남겼고, 1977년 11월 파나마에서 개최된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전에서 엑토르 카라스키야를 4전 5기로 꺾어 또 신화창조를 했다. 그 외에 [[염동균]], [[유제두]], [[박찬희]], [[김태식]], [[김성준]], [[김환진]] 등 스타들이 배출되어 한국 권투의 황금기가 열렸고, 이 시기 동안 권투는 '[[헝그리 정신]]'의 표상임과 동시에 '진짜 남자의 스포츠'로 거듭났다. 메이저 국제 대회에선 [[1972 뮌헨 올림픽]] 때 북한에 밀려 부진했으나,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선 종합 4위로 북한을 앞서 자존심을 지킨 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경기에서 처음으로 레슬링 선수 [[양정모(레슬링)|양정모]]가 대한민국에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안겨줘서 하이라이트를 이룩했고, 이 때에 들어서 한국 스포츠가 성장기를 거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서울에서 아시아경기대회([[아시안 게임]])를 [[1970년]]에 열기로 하였으나 [[북한]]의 위협 문제와 경제문제 등으로 반납하게 되었고, 16년 후인 [[1986년]]에 가서야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아시아 경기대회가 개최되었다.]] 그 외에 1973년 4월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애리사와 정현숙 등이 이끄는 대표팀이 우승을 하여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았고, 1979년 서독 서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김진호 선수가 개인종합 1위를 하고 전영 배드민턴 오픈대회에서도 황선애 선수가 우승해 국민 영웅이 됐다. 산악계에선 1977년 [[고상돈]]이 이끄는 한국등반대가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 전국민적으로 찬사를 받았다. 위와 같은 국위선양 활동과 더불어 [[프로레슬링]]도 한 시대를 풍미했는데, '박치기왕' [[김일]]과 [[천규덕]]의 당수, [[여건부]]의 알밤 까기 등 현란한 기술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TV 앞으로 모여들어 환호성을 지르게 만들었고, 특히 일본 선수와 대결할 때는 과거 일제 강점기 때 치욕을 갚아줬다는 대리만족을 선사케 했다. 특히 김일과 천규덕은 어린이들의 우상으로 거듭났다. 야구 중에선 고교야구가 가장 인기를 끌었는데, 이것은 출신교를 응원하고 지원하는 동문 및 그 가족들의 헌신에 힘입은 것이다. 이 시기를 풍미했던 대회로는 청룡기-황금사자기-대통령배-봉황대기 4대 대회가 있고, 고교 야구부는 전통의 명문 경북고와 경남고, 부산고, 부산상고, 대구상고, 중앙고, 그리고 신흥강호 신일고도 있었다. 이보다 더 특기할 만한 건 광주일고, 군산상고 등 호남 학교들의 활약인데, 특히 군산상고는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 때 이변을 일으켜 '역전의 명수'라는 호칭을 얻었고, 이 순간은 1977년작 [[정인엽]] 감독의 영화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에서 다뤄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