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60년대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1960년대 한국 만화계는 1950년대에 이어 명작으로 넘쳐난 '황금기'라 할 수 있었다. 1950년대 중후반부터 만화 유통경로가 서점에서 만화방(대본소)으로 옮겨가면서 부엉이문고나 크로바문고 등 만화방 만화책만을 내는 출판사가 생겨났고, 출판사와 만화방을 이어주는 지역별 중간조직 '총판'도 생겨났다.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소년만화계에선 김종래, 김산호, 박기당, 방영진, 오명천, 박기정-기준 형제, 손의성, 임창, 신동우, 고우영(당시 추동성), 경인(본명 김경언) 화백이, 순정만화계에선 김정파, 엄희자, 박수산, 민애니, 권영섭 화백 등이 쟁쟁히 활약했다. 특히 김산호는 <라이파이 시리즈>를, 신동우는 <풍운아 홍길동>, 임창은 <땡이 시리즈>, 권영섭은 <봉선이 시리즈>, 오명천은 <산디만>, 방영진은 <약동이와 영팔이>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그러나 계속될 줄 알았던 황금기는 1961년 5.16 쿠데타로 위기를 맞았다. 쿠데타 후 수립된 박정희 군정은 대한만화가협회와 현대만화가협회를 강제 해체하고 자율기구 '한국아동만화자율회'를 발족하도록 해 처음으로 만화 사전검열을 실시했고, 1968년 문화공보부가 '아동만화 정화대책'을 수립함으로써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가 발족돼 본격적으로 관 주도의 사전심의제도가 확립되었다. 1967년에는 이영래 회장이 진영문고 등 서울 신촌 소재 만화출판사들을 중심으로 규합한 후, 크로바문고와 제일문고, 부엉이문고 등 용두동 소재 만화출판사들까지 흡수해 '합동출판사'란 독점출판사 연합체를 만들어 어떤 경쟁자도 허용치 않는 무한독점체제를 구축했다. 애니메이션계는 한동안 관제 애니 및 광고용 애니가 주류였다가, 같은 시기 해외 애니메이션이 히트하자 애니 제작자들 사이에서 국산 애니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1967년에 신동헌 감독이 동생 신동우 화백의 작품 <풍운아 홍길동>을 원작으로 국내 최초 컬러 장편애니 <홍길동>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비용 문제 때문에 미군 항공필름을 재사용하고 포스터칼라로 채색하는 등 열악한 조건 하에서 만들어졌음에도 흥행에 성공했으며, 같은 해에 강태웅 감독이 국내 최초의 퍼펫 애니메이션 <흥부와 놀부>를 만들었다. 이후 1968년 <황금철인> 및 <손오공>, 1969년 <홍길동장군> 및 <보물섬> 등이 제작됐으나, 흥행에만 치중한 나머지 수준 이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등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