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20년 (문단 편집) == 개요 == [[일제강점기]]에서 10년을 맞은 [[조선]]([[한반도]]는 아니고 간도) 에서는 이해 들어 희비(喜悲)가 엇갈렸던 해였다. 희(喜)라는 것은 [[홍범도]]와 백야 [[김좌진]]이 이끄는 독립군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대병력을 격파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고, 비(悲)라는 것은 그 직후 일본이 [[마적단]]을 빌미로 [[훈춘 사건]]을 시작으로[* 역설적으로 이 사건으로 철수하다가 얻은 승리가 청산리 전투다.] [[간도]]의 조선인들을 대학살([[간도 참변]], 경신참변)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 주동자로 체포된 [[유관순]]이 17세의 나이로 옥사(獄死)한 것도 이때다. [[조선총독부]]에서는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취임하면서 전임자들이 통치했던 무단통치를 폐지하고 문화통치를 시작하였던 시기였으며 이를 계기로 [[조선일보|조선]], [[동아일보|동아]] 두 신문사가 동시에 창간을 하였다. 1차 [[산미증식계획]](미곡증산계획)이 시작돼서 [[간척]]과 농업생산량 증대가 시작되었으나 대부분의 [[쌀]]들은 일본으로 수출/수탈 되고 대다수 조선 농민들은 높은 소작료 속에서 [[만주]]의 [[좁쌀]]로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에서는 세계평화를 추구할 목적으로 [[국제연맹]]을 창설하였으나 [[미국]]이 자국 의회의 반대로 연맹에 가입하지 않았고, 후에 여려 국가들이 잇따라 탈퇴하면서 점차 힘을 잃어갔다. 이는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의 한 단초가 되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