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890년대 (문단 편집) == 개요 == ||[youtube(pO_aOe_FM2Q)]|| ||[[https://m.youtube.com/watch?v=fy9y6xCLIcY| ]][[https://m.youtube.com/watch?v=EjLFnrG1l0E| ]][[https://m.youtube.com/watch?v=oqbXsPE0qLk| ]][[https://m.youtube.com/watch?v=SJ_WCG-ry24&t=119s| ]][[https://m.youtube.com/watch?v=PncY64JyME0| ]][[https://m.youtube.com/watch?v=UTr6YlmID-0| ]][[https://m.youtube.com/watch?v=LsSWnXMFfjc| ]]|| 1890년 ~ 1899년까지의 연대시기이자 '''19세기의 마무리를 알리는 마지막 연대'''. [[조선]]에게는 격동과 수난 그리고 새 출발과 변화의 시기였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렸던 [[엑스포]]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앞세우고 KOREA라는 국호로 참가를 하여 조선의 문화를 해외에 알리게 되었다. 조선은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농민들이 착취를 일삼던 부패한 관리와 외세에 맞서며 대항했고, 잇달아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조선과 [[청나라]]의 종주관계가 종언되었다. 승전국인 일본 제국이 조선을 장악하기 위해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났으나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인아거일]] 전략으로 이듬해 [[아관파천]]이 일어나면서 격랑의 시기를 겪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영향력이 극대화 된 것이다. [[1894년]] [[갑오개혁]], [[1895년]] [[단발령]]과 [[1896년]] [[을미개혁]] 등을 통해서 조선 사회는 [[근대]] [[개항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했으며, 아관파천 다음 해인 [[1897년]]에는 자주독립국이자 근대 국가인 [[대한제국]]을 수립하게 되었다. 같은 해 [[한국]] 최초의 은행인 [[조흥은행]]이 설립되면서 은행 거래가 시작되었다. 민권운동으로 [[독립협회]]와 [[관민공동회]] 운동도 일어났으나,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종 황제에 의해 좌절 되었다. [[1899년]] [[경부선]]과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한반도]]에 최초의 근대적 교통망이 등장하였다. [[일본 제국]]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청과 [[청일전쟁]]을 벌인 끝에 승리하여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 [[대만]] 등을 할양 받았으나 [[요동]]의 점령은 [[삼국간섭]]으로 제제 받았다. 내적으로는 [[일본 내각총리대신|총리]]제가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하였다. [[중국]]([[청나라]])은 [[양무운동]]으로 어느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청일전쟁]] 이후 청 왕조가 급격히 쇠퇴하게 되면서 망국의 위기에 다다르게 되었다. [[광서제]]의 [[변법자강운동]]은 [[서태후]]와 [[위안스카이]]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고, 1899년의 [[의화단의 난]]은 청을 말 그대로 빈 껍데기로 만들었다. 이 연대부터 근대 [[올림픽]] 대회가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1896년]] [[그리스 왕국]] [[아테네]]에서 [[1896 아테네 올림픽|1회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당시 참가국은 14개국, 선수는 241명이었다. [[파쇼다 사건]]이 [[1898년]] 발생하는 등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 팽창 정책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