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161년 (문단 편집) === 실제 === * 시칠리아 대제독 마이오의 암살자 마테오 보넬루스가 사면됨. 하지만 그는 복수당할까 두려워 음모를 준비 * [[3월 9일]] - 마테오, 감옥 장악하고 탕크레드 디 레체와 다른 죄수들 풀어줌. 이후 궁전 장악. 궁내의 아랍인들과 하렘 여인들 괴롭힘. 이후 군중들이 시내 무슬림 학살하기 시작. [[굴리에모 1세]]의 아들 굴리에모가 왕으로 옹립됨. 하지만 다른 이들은 굴리에모의 서자인 시몽을 옹립. 서로 싸우는동안 왕당파 주교들이 군중 일부 선동하여 굴리에모 1세 구출 나섬 * [[3월 11일]] - 굴리에모의 장남 루지에로, 폭동 도중 궁전 내부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사망. (당시 음모자들이 굴리에모 1세에게 군중을 진정시켜 달라고 청원하던 중:) 굴리에모, 군중에게 살려줄테니 도시 떠날 것 지시. 군중, 시골 쪽으로 향하다가 다시 뭉쳐 팔레르모로 향하지만 왕실 함대가 다가오자 다수가 사면을 대가로 항복. [[탕크레드]] 등은 추방됨 * 4월 말 - 굴리에모 1세, 재차 반란 일으킨 부테라 함락시킴. 하지만 캄파니아의 안드레아 디 루페키니노와 아풀리아의 로베르 디 로리텔로가 재차 반란 * [[9월]] - [[금나라]] [[해릉왕]]이 [[남송]]을 침공하였다. * [[10월 2일]] - [[금나라]] 군대가 [[회하]]를 도하하였다. * [[10월 12일]] - [[금나라]] 군대가 저주를 점령하였다. * [[10월 22일]] - [[금나라]] 군대가 화주와 [[양저우|양주]]를 점령하였다. 금군은 양주에 사령부를 차렸다. * [[10월 27일]] - [[산둥 반도]] 근처의 섬에서 [[남송]]군이 [[금나라]]군을 격퇴하였다. (당도 전투) * [[11월 8일]] - [[채석기 전투]]에서 [[남송]]군이 [[양쯔강|장강]]을 도하하던 [[금나라]]군을 대파하였다. * [[11월 28일]] - [[금나라]] 제 4대 황제 [[해릉양왕]]이 자신의 부하에게 살해당하였다. * [[11월 30일]] - [[금나라]] 군대가 철수하기 시작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