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NSYNC (문단 편집) == [[백스트리트 보이즈]] VS. 엔싱크 == *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 1992년 결성 ~ 현재), 데뷔 : 1995년 * 엔싱크(’N Sync, 1995년 결성 ~ 2002년 해체), 데뷔 : 1996년 || 1990년대 후반, 때 아닌 틴팝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데니즈 팝과 맥스 마틴이라는 명프로듀서들이 전성기를 주조해 냈고 그들의 조련 속에 수많은 보이밴드와 틴팝 스타들이 속속 등장했다. 90년대 초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후예들이었다. 당시 인기를 얻었던 보이밴드로는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엔싱크를 필두로 98˚, 바다 건너 영국의 보이존, 웨스트라이프, 파이브 등이 있었다. 보이밴드의 음악은 영국과 미국 상호 간에 가장 호환이 안 되는 분야다. 웨스트라이프의 경우 1999년 데뷔싱글 〈Swear It Again〉부터 무려 8곡을 연속해서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올려놓으며 비틀스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을 세웠고, 지금까지 14곡의 1위곡을 냈을 만큼 영국에서는 지존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미국에서의 성적표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영국에서의 위상과 한국에서의 인기를 감안한다면 웨스트라이프가 조금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보이밴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양대 견인차로는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엔싱크를 꼽는 것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 역시 영국에서는 미국에서만큼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보이밴드는 역시 호환이 잘 안 된다.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처음 결성된 것은 1992년이었는데, 이들은 특이하게도 자국인 미국보다는 1995년부터 유럽과 캐나다, 아시아 등을 돌며 먼저 이름을 알리는 우회전략을 택했다. 닉 카터, 케빈 리처드슨, 호위 도러프, 브라이언 리트렐, 에이제이 맥린의 5인조로 구성된 이들의 데뷔앨범 《Backstreet Boys》는 미국에서 1996년에 나왔지만 유럽과 캐나다 등지에서는 1995년에 이미 발매되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1997년에 발표한 2집 《Backstreet’s Back》부터였는데 이것은 사실상 1집과 쌍둥이 앨범이다. 빅히트한 〈Everybody (Backstreet’s Back)〉, 〈As Long as You Love Me〉 등의 노래가 모두 데뷔앨범에 이미 수록되었던 곡들을 재수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Backstreet’s Back》은 미국에서만 1,400만 장이 넘게 팔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틴팝 열풍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엔싱크는 1995년 미국 올랜도에서 결성되었다. 디즈니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인 《미키마우스 클럽(The Mickey Mouse Club)》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중심으로 크리스 커크패트릭, 조이 패톤, 랜스 베이스, 제이시 샤세즈의 5인조였다. 데뷔싱글인 〈I Want You Back〉은 1996년에 독일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이들 역시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해 인기를 얻은 후 이를 등에 업고 자국인 미국시장 도전에 나서는 전략을 택했는데, 데뷔앨범 《NSYNC》가 미국에서 정식 발매된 것은 1998년이었다. 〈I Want You Back〉, 〈Tearin’ Up My Heart〉가 히트하는 가운데 앨범은 1,00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고 엔싱크는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가장 유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새로운 세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전 세계가 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들썩이고 있던 1999년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Millennium》을 내놓았다. 앨범은 발매 첫 주에만 10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고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으며 미국에서만 1,400만 장, 전 세계적으로는 2,4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I Want It That Way〉, 〈Show Me the Meaning of Being Lonely〉가 크게 히트했다. 엔싱크의 기세는 더욱 무서웠다. 2000년 발표한 앨범 《No String Attached》는 발매 첫날에만 무려 110만 장이 판매되었고 일주일만에 242만 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 팝 역사상 유례가 없는 놀라운 성적이었다(기존 기록은 가스 브룩스가 1998년 《Double Live》 앨범으로 기록한 108만 5천 장). ~~이 기록은 후일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에미넴 등의 거센 도전을 받으면서도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신기록으로 남아있다.~~[* 15년 뒤 [[아델(가수)|아델]]의 3집 <25>가 미국에서 338만 장의 첫 주 음반 판매량을 세우며 이 기록을 깼다.] 하지만 얘네들은 그룹이고, 솔로 아티스트로서 초동 기록을 세운 것은 에미넴의 The Marshall Mathers LP이다. 음악시장의 중심이 디지털 음원 파일 중심으로 넘어간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앞으로도 거의 깨지기 어려운 기록으로 여겨지는 대기록이다. 이 앨범에서는 〈Bye Bye Bye〉, 〈It’s Gonna Be Me〉, 〈This I Promise You〉 등의 히트곡이 나왔다.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2000년 발표한 앨범 《Black & Blue》로 성공시대를 이어갔다. 이 앨범 역시 발매 첫 주에만 100만 장이 넘게 팔렸고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도 자리했으며 〈The Call〉, 〈Shape of My Heart〉 등의 히트곡이 나왔다. 하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해산을 선언했다. 엔싱크 역시 2001년 발표한 앨범 《Celebrity》로 다시 한 번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장식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Gone〉, 〈Pop〉, 〈Girlfriend〉 등이 계속해서 히트했다. 하지만 엔싱크 역시 이듬해 해체의 길을 걸었다. 그들의 퇴장으로 뜨거웠던 틴팝 열풍은 사실상 소멸되었다. 닉 카터는 솔로로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한동안 멤버들의 건강 이상, 매니저와의 송사, 갱생시설 수용 등의 가십거리로만 등장하던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2004년 재결성을 발표하고 돌아왔지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는 없었다. 다만 저스틴 팀버레이크만은 엔싱크 해산 이후에도 솔로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현재 미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남성 가수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그의 2006년 앨범 《FutureSex/LoveSounds》는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으며 〈My Love〉, 〈Sexy-back〉,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등 세 개의 싱글차트 1위곡을 냈다. 끝으로 한 가지, 틴팝의 전성시대를 만들어냈던 두 명의 프로듀서가 모두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출신인 것은 단지 우연일까? 데니즈 팝은 노르웨이, 맥스 마틴은 스웨덴 태생이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 아바를 만나러 가야 할까? 그러고 보면 당대의 틴팝 스타일이 유로 댄스의 그것과 맞닿아 있는 부분도 보이고,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엔싱크가 유럽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했던 이유 역시 다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팝 음악사의 라이벌들 -정일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