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흑수말갈 (문서 편집) [include(틀:퉁구스)] [[파일:말갈 7부.jpg]] [목차] == 개요 == [[말갈]]의 한 분파.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수서]](隋書)에서 말갈 7부로써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참고로 '''말갈 7부에 대한 위치 비정은 학자들마다 다 다르다. 근데 그중에서도 흑수말갈이 가장 위치 논란이 심하다''' [[아무르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유역 부근에서 살아가던 부족이었다. 추운 곳에서 살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유목민족 이미지와는 다르게 [[돼지]]를 길러 고기를 먹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등 농경 생활을 했다. 실제 [[만주족]]은 [[반농반목]] 생활을 하는 민족이었다. 다른 [[말갈]]부족보다 타 민족(가령 [[고구려]]인들)과의 혼혈이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한국사]]에서는 고구려의 지배를 받던 북흑수말갈이 [[주필산 전투]]에서 동원되면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발해]] 초기 때 그들의 영향력 하에서 빠져나가려는 행보를 보이는데 추장 예속리계가 [[당나라]]와 손잡고 [[발해]]의 후방을 위협하자 [[무왕(발해)|무왕]]은 동생 [[대문예]]를 시켜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대문예는 무왕에게 공격을 하지 말자고 항명을 했고 무왕이 그를 죽이려 하자 당으로 망명해 버린다(자세한 것은 대문예 항목 참조). [[무왕(발해)|무왕]]이 [[당나라]]를 공격한 이후 결국 발해에 복속되었다. 그러다 9세기 후반이 되면 흑수가[* [[삼국사기]]에는 흑수국이라는 나라 이름으로 등장한다.] [[보로국]]과 함께 [[신라]] [[헌강왕]]에게 화친을 청하는데, 발해 중~후기 어느 시점에 발해에서 사실상 독립한 상태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거란]]이 발해를 멸한 후에는 거란에 복속한 숙여진과 달리 거란을 거부해 생(生)여진으로 이어진다. [[고려]]와 [[후백제]]의 최후의 결전인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 장수 [[유금필]]이 튀르크 계통의 유목민족인 [[철륵]]과 말갈족의 일파인 달고 및 흑수족 기병들을 이끌고 활약했다고 전하는데 이 흑수족이 바로 흑수말갈이다. [[아무르 강]] 유역에 거주하는 [[나나이족]]이 흑수말갈의 후예다. == 관련 사료 == >[[당 태종|황제]]가 [[고구려|고려]]를 정벌할 때, (흑수말갈)북부가 반기를 들어 [[고구려|고려]]와 합하였다. >(帝伐高麗, 其北部反, 與高麗合) >고혜진 등이 그 무리를 이끌고 안시성을 구원하였고 매 싸움마다 말갈을 앞세웠다. >(高惠眞等率衆援安市, 每戰, 靺鞨常居前. >황제가 안시성을 격파하고 고혜진을 사로잡았는데 말갈병사 3천명을 묻어 죽였다. >(帝破安市, 執惠眞, 收靺鞨兵三千餘, 悉坑之) >---- >《신당서》 흑수말갈전 >흑수말갈은 숙신의 땅에 거주하여 동쪽으로 바다에 접하였다. >남쪽으로 [[고구려|고려]]에 접하였으며 [[고구려|고려]]에 복속되었다. >(黑水靺鞨居肅慎地,東瀕海,南接高麗,亦附於高麗) >일찍이 15만의 무리가 고구려를 도와 당태종에 맞섰는데 안시성에서 패하였다. >(嘗以兵十五萬衆助高麗拒唐太宗,敗于安市) >---- >《금사》 본기 == 관련 항목 == * [[만주족]] * [[말갈]] * [[백산말갈]] * [[발해]] [[분류:말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