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룡사 대종 (문서 편집) [[분류:신라의 공예]][[분류:신라의 문화]][[분류:범종]][[분류:없어진 문화재]][[분류:2010년대 사건사고]] [목차] == 개요 == 皇龍寺 大鐘 [[신라]]의 국가사찰 [[황룡사]] 종각에 걸려있던 매우 거대한 [[종(악기)|종]]. == 상세 == 현존하는 신라 범종 중 최대 규모인 [[에밀레종]](구리 12만 근, 현대 측정결과 18.9톤)의 무려 4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종이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경덕왕]] 13년(754)에 구리 49만 7581근을 사용해 길이 1장 3촌, 두께 9촌 규모로 만들었다고 되어있다. 시주자는 효정이왕 삼모부인(孝貞伊王三毛夫人), 종 제작을 주도한 장인은 이상택(里上宅) 집안의 하인이었다고 한다. 황룡사가 1238년 [[고려-몽골 전쟁]] 와중에 소실되면서 종의 행방도 지금까지 불명이다. 다만 [[몽골군]]이 대종을 전리품으로 가져가려고 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일단 바다로 옮겨 배에 태워 운송하려고 했는데 동해안 [[대왕암]] 근처에 왔을 때 폭풍이 불어 물에 빠트려버렸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대종을 빠트린 강이라 해서 지금도 이름이 [[대종천]]이고 인근 지역에는 태풍이 불면 종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설화대로라면 [[대종천]]에서 감포항 앞바다 정도 범위의 물 속에 지금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고 [[국보]]급 문화재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여러 차례 수중 문화재 탐사를 진행했다. 1980년에 문화재관리국이, 1997년에는 해군 탐사팀이 해저탐사를 하였으나[[http://news.imaeil.com/NewestAll/1997011000421223024|#]] 소득이 없었다. 2013년 5월에도 한 조개잡이 어민 김기창이 경북 경주와 포항 경계지점의 바닷속에 2 m쯤 되는 청동 금속류 물건이 있더라는 신고를 접수하여 문화재 발굴탐사가 진행되었다.[[https://news.joins.com/article/11410209|#]] 김씨는 "뭔가 둥그스름한 물체가 바다 밑에 누워 있었다.", "당시엔 선박에 달린 연기 나가는 원통형 환기구인가 생각했다."라고 증언했다. 입구는 자신의 키보다도 더 컸다고 한다. 물체를 더듬었더니 두께는 한 뼘이 넘어 손에 안 잡힐 정도였다. 외관은 깨끗한 편이었으나 머리 쪽은 부식되고 이물질이 많이 붙어 물체의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는데, 몇 달 뒤 TV에서 우연히 황룡사 대종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고 제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인근 해역이 탐사가 어려운 환경이 겹쳐서 한 달 정도 탐사하다 그만두었다고 하고, 제보자 김기창은 이후로도 개인적으로 탐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http://www.idaegu.com/?c=2&uid=369859|#]] 다만 실제로 동해 연안 해저에서 신라 대종이 발견되어도 황룡사가 아니라 [[감은사]] 대종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감은사종은 제작연대와 규모 등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이것도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일본으로 반출하려다 역시 배가 침몰하면서 수장됐다는 기록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