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엔촐레른 (문서 편집) [[분류:독일의 역사]] [include(틀:프로이센의 주)] [목차] [clearfix] * [[독일어]]: Hohenzollernsche Lande == 개요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3/Karte-Hohenzollern.png/626px-Karte-Hohenzollern.png|호엔촐레른 지방 지도]] [[독일]] 남부 [[슈바벤]]에 있던 지방으로 현재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속한다. 1939년 당시 면적은 1,142㎢, 인구는 73,844명이었다. [[독일 통일|독일을 통일한]] [[호엔촐레른 가문]]의 발상지로 유명하며, 이 가문의 발상지는 슈바벤 알프스의 855m 산 위에 세워진 호엔촐레른 성(Burg Hohenzollern)으로 지금도 호엔촐레른 가문에서 소유하고 있다. == 역사 == 본래 [[신성 로마 제국]]의 촐레른 백작령(Grafen von Zollern)으로 1061년 역사에서 처음 등장하며, 시조는 촐레른 백작 부르크하르트 1세(1025?~1061)였다. 프리드리히 3세 백작(1139~1200)은 [[하인리히 사자공]]에 맞선 [[프리드리히 1세(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황제]]와 동맹하는 한편, 1185년 [[뉘른베르크]] 성주의 딸인 조피와의 결혼으로 1192년에 [[하인리히 6세]]로부터 뉘른베르크 성주 작위를 인정받았다. 프리드리히는 장남 콘라트에게 뉘른베르크 성주를, 차남 프리드리히 4세에게 촐레른 백작령을 물려주었는데[* 본래 프리드리히 4세가 뉘른베르크 성주와 촐레른 백작령을 둘 다 물려받았다가 1218년에 조정하였다.] 콘라트의 후손은 프랑켄 계통으로 불리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거쳐 프로이센 왕실이 되었고, 프리드리히 4세의 후손은 호엔촐레른 지방을 다스린 슈바벤 계통이 되었다. 이 때의 분할과 함께 촐레른 백작령은 1218년 호엔촐레른 백작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슈바벤 계통은 계속 호엔촐레른 백작령을 다스리다가 카를 1세(Karl I. von Hohenzollern, 1516~1576)의 사후 호엔촐레른헤힝겐과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으로 분할 상속되었으며, 두 계통 모두 1623년에 공작(Fürst)으로 승격되었다. 1850년 두 후국은 같은 집안인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 이 지역의 통치권을 넘겼고, 1869년 호엔촐레른헤힝겐 계통은 단절되었다.[* 아들이 둘 있었지만, 헤힝겐가의 마지막 수장인 콘스탄틴이 귀천상혼으로 낳은 탓에, 이들은 헤힝겐가의 수장을 칭할 수 없었고, 로텐부르크 백작(Graf von Rothenburg)만 칭할 수 있었다.] 호엔촐레른 지방은 이후 [[프로이센 왕국]]의 호엔촐레른 주(Hohenzollernsche Lande:주도 지크마링겐)로 편성되어 1946년까지 이어지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로 합병되었다. == 호엔촐레른의 노래 == [youtube(ZxeKrhqVEww)] 호엔촐레른 지방의 애향가(愛鄕歌) 'Hohenzollernlied'. 노래는 "[[뷔르템베르크 왕국|뷔르템베르크]]와 [[바덴]], [[바이에른]]과 아름다운 [[스위스]]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 산 하나 높이 솟아 있으니, 그 이름 호엔촐레른이라 하네..."[* Nicht weit von Württemberg und Baden, von Bayern und der schönen Schweiz, da ragt ein Berg so hoch erhaben, den man den Hohenzollern heißt.] 로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