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문서 편집) ||<-7><#000> '''{{{#fff {{{+1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br]منظمة التحرير الفلسطينية[br]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 ||<-7> [[파일:plo.webp|width=200]] || ||<-3><#cf0921> '''{{{#fff 창설일}}}''' ||<-4><(> [[1964년]] || ||<-3><#cf0921> '''{{{#fff 규모}}}''' ||<-4><(> 6,000명 || ||<-3><#cf0921> '''{{{#fff 이념}}}''' ||<-4><(> 팔레스타인 내셔널리즘 [[아랍 내셔널리즘]] (범아랍주의) [[아랍 사회주의]] ([[세속주의]]) [[반시오니즘]] (1993년 이전) [[반제국주의]] ---- 내부 계파: [[양국 방안]] [[일국 방안]] (반시오니즘) [[바트주의]] [[마르크스주의]] || ||<-3><#cf0921> '''{{{#fff 링크}}}''' ||<-4><(> [[http://www.plo.ps|공식 홈페이지]] || [목차] [clearfix] == 개요 == 1964년 [[팔레스타인]]의 [[분리독립]]을 위해 창립한 무장단체로서 약칭은 '''PLO'''다. 팔레스타인 독립전쟁을 위한 투쟁을 했다. 다만 동시에 무장 테러 및 폭력적 행동으로 국제사회로부터 큰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1991년 마드리드 조약 이후 공식적이지는 않았지만 PLO는 이스라엘의 존립권을 인정해주고, 이스라엘은 PLO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기구로 인정하는 등 반쯤은 서로 인정해주는 협약을 맺음으로써 미국과 이스라엘은 PLO를 테러단체로 지정한 것을 취소했다. == 역사 == [[팔레스타인/역사|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이스라엘/역사|이스라엘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원래 팔레스타인은 1947년에 독립한 요르단왕국의 영토가 될 예정이었으나, 영국이 [[시오니즘]] 운동을 배경으로 이주해온 유대인들에게 [[밸푸어 선언|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결국 약속은 [[이스라엘|유대인 독립국가]]의 약속으로 거의 변경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이 때문에 [[요르단]]은 국토 절반을 잃어버리고 만다.[* 사실 그 당시의 팔레스타인은 요르단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현 요르단의 국토는 트랜스요르단이라고도 하며 팔레스타인 지역과 하나로 묶여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에 [[영국령 팔레스타인]]에서 대대로 거주한 비유대인들은 강력하게 저항했고,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1964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열린 [[아랍연맹]]의 [[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겠다고 결의하면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창립했으며, 1969년부터 [[야세르 아라파트]]가 의장이 됐다.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변국가들에 본부를 두었다. 명분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힘으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코자 하는 거지만,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은 PLO를 게릴라부대화하려고 했다.[* 정규군이 된다면 이집트가 컨트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동 국가들은 어디까지나 PLO를 이스라엘을 때리는 몽둥이 역할로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 그래서 일부러 무기 지원도 딱 게릴라 역할을 할 만큼만 지원해준다.] 정작 결성 초기에는 다른 아랍국가로부터 지지를 못 받을 뿐더러, 팔레스타인을 이용해 아랍권에서 영향력을 떨칠 야심으로 아라파트를 '깡패 두목'이라 멸시하고, 암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투쟁 방식도 과격해서, 이스라엘의 스쿨버스에 폭탄을 집어던졌다.[* [[임용한]] 교수의 말에 따르면 PLO가 자살폭탄테러의 원조라고 한다.] 덕분에 이스라엘의 여론은 굉장히 험악해져서, 평화 노선을 걷는 내각은 지지율이 급락하고 총리가 교체되었으며, 심지어 암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전 팔레스타인 지역이 이스라엘에게 먹히면서 주민들의 분노를 표출하자, 이들 사이에서 아라파트는 '구세주'로 등극했다. 요르단에 거점을 둔 PLO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표로 무장투쟁을 선언하며 이스라엘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는데, 오히려 이스라엘군은 근거지 요르단 쪽에 더 큰 보복을 가했다. 1971년에 요르단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추방당한 뒤 레바논으로 옮겼고,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과격단체 '검은 9월단'의 이스라엘 선수단 테러 사건([[뮌헨 올림픽 참사]])으로 PLO 역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이에 따라 아라파트 의장은 이스라엘 이외의 국제 테러에 개입치 않는다는 온건노선을 천명한 후, 국제사회에 PLO를 인정해달라고 했다. 그 결과 [[1974년]]에 유엔 참관국이 된 후 1976년에는 공식적인 영토 없이 아랍연맹에 가입해 이스라엘 국가를 타도하는 [[유격전]]에 몰두했다. 1982년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으로 인해 튀니지로 쫓겨난 뒤, 1988년 독립국가 수립을 선포하며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이스라엘 타도' 노선을 포기했다. 1992년부터 신임 총리 이츠하크 라빈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비밀협상 후 이듬해 9월 '오슬로 협약'을 맺어 이스라엘과 화친했으며, 자치정부로 격상하여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의 통치권을 인수했다. 1994년에 카이로협약을 거쳐 1995년 9월 제2차 오슬로협약을 맺어 잠정적으로 자치권을 확대하려 했으나, 얼마 안 가 협약의 주인공 중 하나인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암살당해 원점으로 돌아갔다. 1996년 오슬로협약 반대파 인사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에 취임한 후 압박이 심해지면서 1997년 백악관 협상과 2000년 중동평화협상 및 최후통첩도 실패했다. 같은 시기 과격파 하마스의 등장으로 존립에 위협을 겪었다. [[2004년]]에 아라파트 수반이 사망하자, [[2006년]]에 [[프랑스 왕국]]의 [[삼부회]]처럼 개편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978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과 1993년의 오슬로 협정을 고려하면서 PLO의 민정관청을 개조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영사]]급 외교가 가능한 2010년대의 [[스코틀랜드]]와 비슷했지만, 오늘날의 팔레스타인국(國)은 최근에 [[유엔]]총회의 [[옵저버]]로 가입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는 칭호로서 [[공사]]급 외교가 가능한 1920년대의 [[아일랜드 자유국]]과 비슷하다.] 기존의 업무를 모두 인수했다. 그래서 지금의 PLO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다를 바가 없다. 옛날의 PLO를 계승한 현 팔레스타인의 정당들은 [[파타]]와 [[하마스]]가 있다. 온건파 파타가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다스리고 있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향하면서 [[가나안]] 전역의 완전한 해방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테러]]와 [[기습]]을 매일 주동하는 과격파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다스리고 있다. PLO의 조직과 인력은 파타가 자연스럽게 계승했지만, 무장투쟁과 항쟁정신은 하마스가 계승한 셈이다. 또한 PLO의 좌파 이념과 하마스를 능가하는 무장 투쟁 방법론을 둘 다 가진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이 존재하는데, 본래 파타와 하마스를 둘 다 적대하는 극좌파 게릴라 단체였으나 2006년 이후 사실상 이스라엘의 협력자가 된 파타에 맞서 하마스와 가까워졌으며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하마스와 연합전선을 꾸려 이스라엘에 맞서고 있다. == 대외 관계 == === 아일랜드와 IRA === [[북아일랜드]]에서 [[IRA]]가 활동할 당시, IRA와 PLO는 서로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같이 지원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IRA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 아랍 국가들 === 아랍 국가들은 겉으로는 PLO를 도와주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을 때릴 몽둥이로서의 역할을 떠넘기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이집트]]와 [[요르단]][* 요르단은 팔레스타인에게 요르단 서안 지구를 주겠다고 약속해놓고는 2차 중동전쟁이 끝나자 입을 싹 씻었으며 분노한 팔레스타인 과격분자에 의해 [[압둘라 1세]] 국왕이 암살되기까지 한다. 이후에도 요르단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최대한 피하려고 PLO를 자국에서 탄압했다. 그리고 PLO 역시 요르단을 차지하려는 목적으로도 요르단에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은 물론, [[시리아]]와 [[레바논]] 등에도 거점을 마련하며 항쟁을 계속했으며, [[무아마르 카다피]] 시절의 [[리비아]]와 [[사담 후세인]] 시절의 [[이라크]]도 [[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하면서 PLO를 원조하는 뜻으로 각각 [[수에즈 운하]]와 [[시나이 반도]] 및 [[요르단 강]]과 [[골란 고원]]에 [[육군]]을 파병했다. == 출처 == * 가로세로 세계사 3권: 중동, 화려한 이슬람세계를 찾아서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07. p207~209, 212~215. * [[토크멘터리 전쟁사]] 81부 [[분류: 냉전]][[분류:무장 반군]][[분류:민족해방운동]][[분류:팔레스타인의 역사]][[분류:팔레스타인 독립운동]][[분류:요르단-팔레스타인 관계]][[분류:이집트-팔레스타인 관계]][[분류:레바논-팔레스타인 관계]][[분류:시리아-팔레스타인 관계]][[분류:사회주의 정당]][[분류:정당연합]][[분류:아랍 사회주의]][[분류:분리주의]][[분류: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