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대각간 (문서 편집) [목차] == 개요 == 太大角干 [[신라]] 역사상 최상위 관등. [[고구려]]의 [[대막리지]], 대가(大加) 같은 매우 높은 지위다. 현대의 계급과 굳이 비교하자면 [[대원수]]에 해당한다. 별칭으로는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이라 한다. == 상세 == 원래 있던 관등인 신라의 17관등 중 제1등 각간[* 별칭은 [[이벌찬]].]에다가 대 자 붙인 [[대각간]], 여기에 태 자까지 덤으로 붙여서 만든 최상위 관등이다. 사실 [[김유신]]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다. [[백제]]에 이어 [[고구려]]까지 멸망시키고 두 나라의 부흥세력들과 힘을 합쳐 당나라군까지 물리친 김유신의 공은 기존에 존재하는 관직으로는 치하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문무왕]]이 새로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명예 작위같은 것.[* 이러한 높은 작위를 하사했다는 것은 이 지위에 만족하고 더 이상 위를 탐하지 말라는 견제의 의미로 작용했을 수 있다.] 생전에 태대각간이었던 사람은 신라의 천 년 역사상 [[김유신]] 한 명뿐이다. 사망한 이후에 추증된 사례로는 한 사람이 더 있는데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신라)|김인문]]이다. 김인문 역시 몇몇 전투에서 무공을 세우기도 했고 주로 당나라와 신라를 왔다갔다하며 양국에 우호가 필요했던 [[삼국통일전쟁]]부터 당나라군과 싸워 이긴 [[나당전쟁]]까지 국제외교를 주도해 김유신에 버금가는 공을 세워서 태대각간 칭호를 추증한 것이다. 그 외에 [[삼국유사]] 탑상 [[백률사]]조(條)와 유덕사(有德寺)조에 따르면 '대현(大玄)', '최유덕(崔有德)'이 태대각간이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두 이야기는 설화적인 색채가 짙어서 믿기 어렵다. 대현은 업적이 있다지만 도저히 김유신이나 김인문에 빗댈 정도는 아니고 게다가 최유덕은 성씨를 보면 [[6두품]]으로 추정된다. == 역임자 == * '''[[김유신]]''' * [[김인문(신라)|김인문]](추증) [[분류:신라의 관등]]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