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친군영 (문서 편집)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오군영)]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의 말기의 [[군영]]. == 역사 == 1881년 [[통리기무아문]]은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중앙군을 [[별기군]][* [[별기군]]은 무위영 소속이었다.]과 같은 신식 군대로 개편하면서 구식군대인 5군영은 무위영(武衛營)[* 종전의 [[훈련도감]], [[용호영]], [[호위청]]을 통폐합해 만든 군영이며, 궁궐 숙위와 왕의 호위를 맡았다.], 장어영(壯禦營)[* 종전의 [[어영청]], [[금위영]], [[총융청]]이 통폐합해 만든 군영으로 한성의 경비를 맡았다.] 2군영으로 감축되었다.1882년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임오군란]]이 [[삼일천하|청군에게 사흘 만에 진압당하고]] [[흥선대원군]] 역시 [[청나라]]로 끌려간 후 철폐된다. 이후 1882년부터 [[청나라]]의 군제를 모방하여 친군영(親軍營)을 창설해 수도방위를 맡겼다. 친군영은 전영(前營), 후영(後營), 좌영(左營), 우영(右營), 별영(別營) [[오군영|다섯 개의 병영]]으로 나누어졌으며 영사(營使)를 [[최고사령관|최고지휘관]]으로 하였다. 중앙군의 편제 개혁이 끝나자 지방군도 이를 본따 [[평양]]에 친군서영(親軍西營), [[대구시|대구]]에 친군남영(親軍南營), [[경성군|경성]]에 친군북영(親軍北營), [[강화도]]에 친군심영(親軍沁營), [[부평]]에 친군기연해방영(親軍畿演海防營)[*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강화도]]의 [[수군]]과 연안 [[육군]]을 통제하는 [[병영]]. 이전에는 해방아문(海防衙門)이라 불렸다.] 등을 설치하여 해당 지역 [[군무]]를 관할하게 하였다. 그러나 1888년 기존 친군영의 경비가 많이 들고 편제도 중복되는 등 모순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5영이 3영으로 축소 개편되었다. 친군 전영과 좌영을 통폐합한 (친군)[[장위영]], 우영과 후영, 기연해방영을 통폐합한 (친군)[[통위영]], 그리고 별영이 개편된 [[총어영]][* 1892년 어명에 따라 친군총어영으로 개칭.]이 그것이다. 이후 1891년 통위영 소속 병력 중 구 [[총융청]] 병력이 [[경리청]]으로 분리되어 최종적으로 4영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식 군제를 따르기로 함에 따라 장위영, 통위영, 총어영, 경리청은 모두 해체된다. ||명칭||주둔지||임무||특이사항|| ||친군[[장위영]](壯衛營)||[[한양]]||[[국왕]] [[호위]] 및 [[궁궐]] 경비||[[동학농민전쟁]], 경복궁 전투 당시 투입|| ||친군[[통위영]](統衛營)||한양||한양 및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경비|| || ||친군[[총어영]](摠禦營)||한양|| || || ||친군[[경리청]](經理廳)||한양||[[북한산성]] 방위|| || ||친군심영(親軍沁營)||[[강화도]]|| ||[[장성 황룡촌 전투]] 당시 투입|| ||친군서영(親軍西營)||[[평양시|평양]]|| || || ||친군남영(親軍南營||[[대구광역시|대구]]|| || || ||친군북영(親軍北營)||[[경성군|경성]]|| || || ||친군무남영(親軍武南營)||[[전주시|전주]]|| || || ||친군진남영(親軍鎭南營)||[[청주시|청주]]|| || || ||친군진어영(親軍鎭禦營)||[[춘천시|춘천]]|| || || 위의 표는 [[감영]](監營), [[병영]](兵營) 소속 병력은 제외하고 친군영만 기재해놓은 것이다. [[갑오개혁]]으로 설치된 [[군국기무처]]는 친군영을 해체하고 [[일본인]] [[장교]]의 지휘를 맡는 [[조선군 훈련대|훈련대]]와 미군 퇴역 장교의 지휘를 받는 [[대한제국군 시위대|시위대]]에게 [[한성]]의 경비와 치안을 맡게 하였다. 그러나 지방의 경우 친군영들이 폐지된 이후 별도의 지방군 조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사회 질서가 혼란해지고 치안 공백이 발생한다. 수군 역시 통제영과 통어영, 통위영이 해체되자 조직 자체가 해산되고 만다. 이에 1895년 [[김홍집]] 내각은 [[을미개혁]]을 통해 [[조선군 훈련대|훈련대]]와 [[대한제국군 시위대|시위대]]를 통폐합시켜 [[대한제국군 친위대|친위대]]를 창설 후[* 이는 [[을미사변]] 당시 훈련대와 시위대가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수도를 맡게 하고 각 지방에는 [[대한제국군 진위대|진위대]]를 창설한다. 진위대가 가장 먼저 설치된 두 곳은 북방의 요충지인 [[평양]]과 남부의 요충지인 [[전주]]였다. 후일의 역사는 [[대한제국군]] 문서로.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오군영, version=211)] [[분류:조선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