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나라 (문서 편집) {{{+1 齊 }}} [목차] == 개요 == [include(틀:중국의 역사)] [[중국사]] [[중국사 역대 국호|여러 나라들의 이름]]. 대개 오늘날 중국 [[산둥성]] 지방을 중심으로 있었다. == [[춘추전국시대]]의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 == [include(틀:춘추시대 왕조)] [include(틀:전국시대 왕조)]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제(춘추전국시대))] == [[오호십육국시대]]의 제나라 == [include(틀:오호십육국 왕조/기타 국가)] 오호십육국시대 전기 [[선비족]] [[단부]]의 단감이 세운 단명정권. 통칭 단제(段齊). == [[남북조시대]]의 남제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제(육조))] == [[남북조시대]]의 북제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북제)] == [[수말당초]]의 제나라 == [include(틀:수말당초 주요 세력)] 승려인 고담성(高曇晟, ? ~ 618년)이 618년에 세운 단명 정권. 고담성은 스스로 대제(大齊) 황제라고 자칭했지만 석 달도 안 되어 [[고개도]]에게 피살되었다.(...) 고담성의 세력은 결국 고개도에게 흡수되었다. == [[당(통일왕조)|당]] 대 성립된 [[고구려]]계 유민 [[이정기]]가 세운 산둥 반도의 지방 세력 정권 제나라 == ||[[파일:attachment/이정기/chichungbunjin.jpg|width=100%]]|| || [[http://c.ask.nate.com/imgs/qesi.tsp/9603019/1/1/A|당시 추정영역과 당과의 충돌지점]] || [[안사의 난]] 이후 세력이 약화된 당 대에 등장한 지방 정권 세력으로, [[이정기]]가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치청평로절도사(淄靑平盧節度使)'''로 임명된 765년부터 시작해 819년까지 존속한 것으로 본다. 이정기를 비롯해 4대 55년가량 지속되었다. 이정기는 당나라에 살던 고구려 유민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일부에서는 백제 유민으로 보기도 한다.[* 사실 [[장보고]]부터가 구 백제 지역인 [[전라도]] 지역 섬 출신이지만 '신라인'으로서 중국 [[신라방]]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듯 여기서 말하는 '신라'는 삼국시대의 셋 중 하나인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를 포함한 통일신라를 말하므로, 한반도와 맞닿은 중국 동해안에는 신라인으로 분류되었지만 출신을 따지고보면 구 고구려와 백제 유민 출신이 많이 섞여 살고 있었다.] 단 제나라라는 국명을 사용한 것은 [[이납]] 때의 일시적인 일이고 존속 기간 대부분에서 치청평로절도사로 행세했다. 평로치청번진은 한때 [[시안(도시)|장안]]을 공격하려 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고 819년 당과 신라[* 다만 이사도의 난은 819년 2월에 진압되었는데, 신라는 5개월 뒤인 819년 7월에야 구원군 파병 의사를 밝혔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기록에 [[오타]]를 낸 것이 아니라면, 신라군은 언플만 하고 실제로 출진은 하지 않았거나, [[전화]]도 없었던 시대의 한계상 정보의 혼선으로 실제 토벌에 참여는 못하고 허탕을 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사례로 즉위 축하 사절을 보냈는데 그 축하를 받을 왕이 사절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든지 하는 일도 있었다. 다만 젊은 시절의 [[장보고]] 등 당군 소속 신라인들은 별개로 이사도 토벌에 참여했다.]의 연합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이사도]] 문서 참조. 전성기에는 산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 동부 15개 주를 점령했으며 대규모의 염전과 발해, 신라 등과의 중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혼란기라 그런지 단순한 독립 세력인지 국가인지 서술이 어중간하지만, 고구려 유민 출신 이정기에서 이어지는 고구려계 이씨 세력이 약 60년간 통치하여 [[민족주의]] 사관이 강한 이들은 이를 한국사를 이야기할 때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정기가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의견이 많다. 또한 당의 시점에서 '제' 는 어디까지나 '평로 번진' 이였을 따름이며, 개중에서도 가장 반항적인 번진으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당덕종]] 전반기의 '사진의 난'의 중심세력으로 꼽히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당의 관직을 지속적으로 사실상 받아왔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국가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물론 평로절도사가 이정기 대에서부터 독자적으로 백관을 세우고 법제와 세제를 임의로 집행하는 등 거의 반 독립국의 형태를 띈 것은 맞다. 또한 그 아들인 이납의 시대에 들어서는 782년 11월에 제나라로 [[국호]]를 정해 칭왕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칭왕은 다른 하북 삼진들이 칭왕하자 따라서 하였던 것이며, 이마저도 절도사직 세습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784년 1월에 바로 취소했다. 즉, 엄밀히 말해 이 항목에서 다루는 제나라의 존속 기간은 '''1년 3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그 외 기간에는 늘 당나라 휘하의 [[번진]] 세력이었다. === 역대 군주 === || 대수 || 왕명(시호) || 휘 || 재위기간 || || 1 || || [[이정기]](李正己) || 765년 ~ 781년 || || 2 || || [[이납]](李納) || 781년 ~ 793년 || || 3 || || [[이사고]](李師古) || 793년 ~ 807년 || || 4 || || [[이사도]](李師道) || 807년 ~ 819년 || == 당나라 농민 반란 지도자 [[황소(당나라)|황소]]가 세운 정권 제나라(황제) == [[황소(당나라)|황소]](黃巢)가 881년에 선포한 나라이다. 성씨를 따라서 황제(黃齊). == [[오대십국시대]] [[남당]]의 원래 이름인 제나라(서제) == [include(틀:오대십국시대 십국)] [[오대십국시대]] [[남당]] 건국 당시 이름이 대제(大齊), 즉 제나라였다. 이 이름은 937~975년 동안 쓰였다. 성씨를 따서 서제(徐齊)라고도 한다. == [[금나라]]의 괴뢰 정권 제나라(유제) == 금나라가 [[북송]]을 무너뜨리고 현재의 [[한단]](邯鄲)인 대명부(大名府)를 수도로 하여 세운 괴뢰 정권(1130년 ~ 1137년). 유제(劉齊)라고도 하고, 금나라가 세운 가짜 제나라라는 뜻에서 위제(僞齊)라고도 한다. 금나라는 북송의 신하였던 [[유예(남송)|유예]](劉豫, 1073년 ~ 1146년)를 괴뢰 정권 제나라의 황제로 책봉해서 이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남송]]에 수시로 털리다가 결국 금나라와 남송 간의 합의에 따라 제나라가 폐지되었다(...). 유예는 금나라 황제에 의해 촉왕(蜀王)으로 책봉되었다. 다만 촉왕으로 책봉된 건 그저 허울일 뿐, 실제로는 내몽골 지방으로 강제이주당해 그곳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 금나라가 세운 다른 괴뢰 정권으로 [[초나라#s-2.9]](장초 또는 위초)가 있는데, 이곳의 경우 억지로 책봉된 괴뢰 황제가 남송으로 달아나서 흐지부지 됐다. 해당 항목 참고. [각주] [[분류:중국의 역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