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춘 (문서 편집)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중국 헤이룽장성의 도시, rd1=이춘시(헤이룽장성), other2=중국 장시성의 도시, rd2=이춘시(장시성))] [include(틀:조선 추존왕 및 추존령)] ---- ||<#bf14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ffd400 '''도조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조선의 왕자/목조 ~ 연산군)] ---- [include(틀:원의 천호)]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color: #FFD400" '''조선 추존 국왕[br]{{{+1 도조 | 度祖}}}'''}}}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함남함흥 의릉 전경 국립중앙박물관.jpg|width=100%]]}}} || ||<-2> {{{#ffd400 {{{-2 의릉 전경}}} }}} || ||<|2> '''출생''' ||연대 미상 || ||장소 미상|| ||<|2> '''사망''' ||[[1342년]] [[7월 24일]] || ||장소 미상 || || '''능묘''' ||[[의릉#s-2.1]](義陵)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전주 이씨]] || || '''휘''' ||'''[[고려]]''': '''춘(椿)''' ---- '''[[원나라|원]]''': 바얀테무르(孛顔帖木兒) || || '''부모''' ||부왕 [[이행리|익조]][br]모후 [[정숙왕후]] || || '''형제자매''' ||8남 1녀 중 4남 || || '''배우자''' ||[[경순왕후]] || || '''자녀''' ||7남 6녀 || || '''아명''' ||선래(善來) || || '''묘호''' ||[[도조]](度祖) || ||<|3> '''시호''' ||도왕(度王) → 공의성도대왕(恭毅聖度大王) ||}}}}}}}}}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왕조의 추존 국왕으로 태조 [[이성계]]의 [[할아버지|조부]]. 조선 개국 직후에는 시호 '도왕'(度王)만 올렸다가 증손자인 [[태종(조선)|태종]]이 1411년에 묘호 '''도조'''(度祖)를 올리고 시호를 '공의성도대왕'(恭毅聖度大王)으로 바꿨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1104022_001|#]] 이름은 이춘, 아명은 선래(善來), 몽골식 이름은 이바얀테무르(李孛顔帖木兒)였다.[* 제31대 [[공민왕]]과 몽골 이름이 같다.] 묘호 [[도조]](度祖)의 '度'자는 '(헤아릴) 탁'이라는 음도 있기 때문에[* [[구한말]] 오늘날의 [[기획재정부]]([[재무부]])에 해당되는 부서를 '[[탁지부]]'(度支部)라 했다. 또한 《[[삼국지]]》의 [[유도(삼국지)#s-3|유도]]의 이름도 劉'''度'''라서 유'''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탁조'라 부르기도 한다. == 생애 == 익조 [[이행리]]와 2번째 부인이었던 [[정숙왕후]] 최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으로 전체에서는 4남이었다. 익조 [[이행리]]가 죽자 천호 벼슬과 [[다루가치]]직을 세습하여 물려받았다. 아이가 안 생겨서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낙산 관음굴에 가서 정성스럽게 기도를 드리니 낳은 아들이라고 한다. 익조 [[이행리]]의 벼슬이 정실 손씨의 큰아들인 [[함녕대군]] 이규수에게 세습되지 않고, 측실인 [[정숙왕후|최씨]]의 아들인 이춘이 세습한 것은 세력 형성에 [[정숙왕후|최씨]]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원래 터전에서 밀려난 익조 [[이행리]]는 안변의 호족이자 장인인 최기열의 힘에 의해 세력을 재건했고, 그 힘을 기반으로 선대의 천호 벼슬을 다시 찾았기 때문에 [[정숙왕후|최씨]] 사이에서 태어난 이춘을 후계자로 삼았다.[* 어째서 최씨의 장남인 이송이 아니라 이춘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송이 고려 왕조의 숭록대부였다는 기록을 보면 익조 이행리가 충렬왕(제25대)을 알현한 이후, 이송이 고려 조정에 출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이춘은 별 기록은 없으나, 노년에 중풍에 걸려 1342년 7월 24일에 죽었다. 죽기 전에 중풍으로 천호 벼슬을 수행할 수 없어서 정실인 [[경순왕후|박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 [[이자흥]][* 조선에서 내린 봉호는 [[완창대군]].]에게 넘겨줄려고 했지만 역대 쌍성총관을 배출하고 있었던 [[한양 조씨]] 가문 출신의 측실인 조씨는 자기 소생에게 넘겨주기를 바랬다. 그 일로 [[이자흥]]과 측실 조씨 사이에 다툼이 생기자 [[이자흥]]은 [[원나라]]에 직접 가서 자신이 적장자임을 밝히고, 천호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는 2개월도 채 안되어 9월에 죽어버렸다. [[이자흥]]에게는 [[이천계]]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렸다. 이에 측실 [[한양 조씨|조씨]]는 자기 소생에게 물려주길 바랬는데 사실 [[한양 조씨|조씨]]는 당시 [[쌍성총관부]]의 수장인 총관 조양기의 딸이었기에[* 참고로 이 측실 조씨는 조선 중반 중종때 [[기묘사화]]로 죽은 대학자 [[조광조]]의 가문인 [[한양 조씨]] 출신이었다. 위에서 나온 것처럼 천호 벼슬 계승 문제로 [[이성계]]의 [[전주 이씨]]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총관 조양기의 차남인 조돈이 [[이자춘]]을 돕게 되고, 그 와중에 그의 후손만 대가 이어지게 되면서 [[개국공신]] 집안이 되었다. 총관 조양기의 손자인 [[조소생]]은 공민왕(제31대)과 이성계에 대항하다가 멸족당했고, 반역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빽]]으로 밀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이자흥]]의 친동생인 [[이자춘]]이 천호 직을 물려받았다. 화살 하나로 '''[[흑룡]]'''(黒龍)을 잡았다고 한다. [[http://sillok.history.go.kr/id/kaa_000018|#]] == 가계 == * 아버지: 추존 국왕 [[이행리]] * 어머니: 추존 왕후 [[정숙왕후]] 최씨 * 아내: 추존왕후 [[경순왕후]] 박씨 *아들 : [[이자흥|완창대군(完昌大君)]] 이자흥(李子興) / 이타스부카(李塔思不花)[* 뒤에 있는 이름은 [[몽골]]식 이름이다.] * 아들 : [[이자춘|환조(桓祖)]] 이자춘(李子春)/ 이울루스부카(李吾魯思不花) * 아들 : [[완원대군]](完原大君) 이자선(李子宣) / 이올제이부카(李完者不花) * 아들 : [[완천대군]](完川大君) 이평(李平) / 이노하이(李那海) * 아들 : [[완성대군]](完城大君) 이종(李宗) * 딸 : [[문혜공주]](文惠公主) - 대장군 문인영(文仁永)에게 하가 * 딸 : [[문숙공주]](文淑公主) - 다루가치 김마분(金馬粉) 혹은 김방괘(金方卦)[* [[여진]]족이었다.]에게 하가 * 딸 : [[문의공주]](文懿公主) - 허중(許重)에게 하가 * 계실: [[한양 조씨]] - 쌍성총관 조양기(趙良琪)의 딸 * 아들 : 이완자불화(李完者不花) * 아들 : 이나해(李那海) * 딸 3명 도조 이춘은 2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첫 부인은 오동백호를 지낸 박광의 딸 [[경순왕후|박씨]]였으며, 두 번째 부인은 [[경순왕후|박씨]]가 죽고 재혼한 쌍성총관 조양기의 딸 [[한양 조씨|조씨]]였다. 사후에 이춘은 손자인 [[이성계]]가 국왕에 오르자 '도왕'(度王)으로 추존되었고, 증손자인 [[태종(조선)|태종]]이 '[[도조]]'로 재추존했다. [[경순왕후|박씨]]의 아들인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가 [[조선]]을 세웠기에 [[경순왕후|박씨]]가 정비로 인정되어 '경비'(敬妃)로 추존되었고, [[태종(조선)|태종]]이 '[[경순왕후]]'로 재추존했다. [[도조]]는 영녕군 함흥 동쪽 운전사 주변에 마련된 '[[의릉]]'(義陵)에 안장되었다. [[분류:고려의 인물]][[분류:원나라의 인물]][[분류:조선의 추존 왕]][[분류:1342년 사망]][[분류:다루가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