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싸빅 (문서 편집)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e5e5e5 '''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073/2008/01/11/20080111ab004.jpg|width=100%]]}}} || || {{{#000,#e5e5e5 ''' 이름 ''' }}} || {{{+1 '''이싸빅'''}}}[br]'''{{{-2 Lee Sa-Vik}}}'''[* 귀화전 이름은 야센코 사비토비치(Jasenko Sabitović)] || || '''출생''' ||[[1973년]] [[3월 또는 5월 29일]][* 웹사이트에 따라 3월이라고 하기도 하고 5월이라고 하기도 함.] ([age(1973-03-29)]세)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width=30]]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투즐라|| || '''국적'''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width=30]]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대한민국]][* 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 국적] || || '''포지션''' ||[[센터백]] || || '''신체조건''' ||185cm / 81kg || || '''등번호''' ||15번 - 수원 삼성 || || '''프로입단''' ||[[올랜도 시티 SC]] || || '''소속팀''' ||[[올랜도 시티 SC]] (1994~1997) [br] [[포항 스틸러스]] (1998~2002) [br] [[성남 일화 천마]] (2003~2005) [br]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5~2007) [br] [[전남 드래곤즈]] (2008) [br] NK 카를로바츠 (2009) || || '''국가대표''' ||크로아티아 U-21 대표 || [목차] [clearfix] == 소개 ==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귀화 전 이름은 야센코 사비토비치. 공중볼 및 지상 볼 처리에 매우 능숙한 수비수였으며, 포항 시절부터 수비수들과 많이 대화를 하며 위치 선정에 세심하게 신경 쓴 선수였다.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타점 높은 헤딩으로 상대 수비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능력도 보유했다는 점도 특징. == 경력 == == 클럽 == 크로아티아 리그의 NK자그레브라는 명문 구단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여 1996년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어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한 선수로, 1998년 싸빅이라는 등록명으로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여 비슷한 시기에 전남의 벽으로 버티고 있던 [[마시엘]]과 비교되기도 했고, [[동유럽]] 선수로서 꽤나 유명했던 [[사샤 드라쿨리치|샤샤]]나 [[라디보예 마니치|마니치]]등의 선수와 비교되며 뛰어난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러던 와중 2003년에 당시 K리그에서 [[풋볼 매니저|FM]] 놀이를 하던 [[성남 일화 천마]]에 이적하게 되었다. 즉시전력의 선수를 필요로 하여 데려간 만큼 성남에서도 꾸준히 좋은 활약을 해줬으며, 이때 전 수원 선수이자 성남에 입단한 [[데니스(축구)|데니스]]와 함께 한국 귀화시험을 보게 되었다. 한국 내 활동경력(5년) 및 한국어 시험, 한국사 시험 등을 모두 통과하여 무난하게 [[한국인]]이 되었으며 이 때 이씨 성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자신의 에이전트였던 이영중 씨의 이름에서 따게 되었다고 한다. 2004년 성남의 팀 사정으로 잠시 스트라이커로 뛰기도 했다. 키가 커서 포스트 플레이로 볼을 떨궈주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이 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인도네시아 팀인 [[페르식 케디리]]와의 경기에 출전, 4골을 몰아 넣으며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도 했다(...) [[차경복]] 감독의 말로는 포스트 플레이만큼은 [[사샤 드라쿨리치|샤샤]]보다 좋았다고... 올림픽 대표팀 경력만 있고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은 없어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도 있었지만, 귀화 당시 32세의 나이 및 국민 정서가 걸림돌이 되어 결국 한국 대표팀 출전은 무위로 돌아갔다. 당시 조 본프레레 감독이 진지하게 고려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점. 2005년에 성남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이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게 된다. 나이가 30줄을 훌쩍 넘겨 수비력 및 스피드가 전성기보다 다소 떨어진 상태였기에 마토와 곽희주에 이은 No.3 수비수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불평없이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며 같은 국적의 수비수 [[마토 네레틀랴크|마토]]의 적응을 성심성의껏 도와 팀에 보탬이 되었다. 한국어에 익숙하고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경험을 겪은[* 마토, 이싸빅 모두 유스 시절에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유고 내전]]이 한참 벌어져서 유고 선수들은 가능한한 해외로 나가려는 분위기였다.] 마토와는 금방 친해져 그가 첫 시즌만에 '통곡의 벽'으로 군림하게 된 데 큰 공헌을 했다. 경기 끝나고 마토가 인터뷰를 하게 되면 통역 대신 이싸빅이 옆에 와서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 은퇴 이후 == 2007 시즌이 끝나고 수원에서 방출된 후 난데 없이 아프리카 [[가나]]의 하츠 오브 아크라는 팀으로 이적한다는 기사가 떴었으나 루머였다. K리그에 남아 전남에서 한 시즌 뛰고 방출, 고국에서 커리어를 마감하려고 돌아갔으며 현재는 에이전트 활동을 하고 있다. [[FC 서울]]에서 뛰었던 [[데얀 다미아노비치|데얀]], [[강원 FC]]에서 뛰었던 [[스티페 라피치]] 등의 선수들이 그의 소개로 인하여 K리그에서 활동했던 선수들이다. 2017년 7월 12일, K리그 클래식 20라운드 FC 서울 vs 포항스틸러스와의 경기 방송에 잡혔다. [[파일:2017_7_12_44_556.jpg]] 중계를 맡았던 [[신승대]] 캐스터가 스크린에 잡힌 이싸빅을 [[데얀 다미아노비치|데얀]]으로 잘못 호명했고, [[이상윤(축구인)|이상윤]]이 빵 터지면서 잠시 중계를 못 할 정도였다. 2019년 10월 19일 [[성남 FC]]와 [[인천 유나이티드]] 경기에서 진짜 데얀과 함께 관중석에서 모습이 잡혔다. [[http://naver.me/FQdwsLxV|영상 27초 경.]] 오른쪽이 이싸빅이다. == 여담 == 아직도 한국과 연을 이어가고 있는 귀화 축구인 중 한 명으로, 2012년 들어서는 같이 포항에서 뛰었던 코난과 함께 포항 구단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어]]는 포항, 수원 시절 익혀서 [[동남 방언|경상도 사투리]]와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찬 때 그 사투리로 분위기를 확 휘어잡았다. == 기록 == K리그 커리어 : 총 271경기 출장, 9득점, 518 파울, 41경고, 0퇴장. == 관련 문서 == *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축구]] [각주] [[분류:1973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분류:외국인 선수(축구)]][[분류: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분류:성남 FC/은퇴, 이적]][[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은퇴, 이적]][[분류:전남 드래곤즈/은퇴, 이적]][[분류: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계 한국인]][[분류:유고슬라비아계 한국인]][[분류: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인물]][[분류:백인계 한국인]] [include(틀:포크됨2, title=이싸빅, d=2022-07-08 20:26:3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